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된 386
한상진 교수 ‘정치권 386’ 비판
16년 전엔 “핵심 에너지” 극찬
기득권 구축 후 독점구조 만들어
운동권 특징은 군대식 상명하복
자기반성적 태도 부족한 게 사실
사회학자인 한상진(74)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금의 386세대 정치인들을 “기득권·실권층의 하수인”이라고 분석했다. 그가 2003년 저서 『386세대, 그 빛과 그늘』에서 386세대를 “21세기를 이끌어갈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에너지”라고 극찬했던 것과 정반대의 평가다. 한 교수는 특히 80년대 학번 중에서도 유독 정치권의 386세대에 대한 실망감이 크다고 평가했다. 386세대가 촉망받는 ‘차기 리더’에서 ‘권력의 예하 부대’로 전락하기까지 지난 16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당초 한 교수가 386세대에게 기대를 걸었던 이유는 그들이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고 ▶탈인습적 가치관을 지향했으며 ▶이념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한 거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386세대는 권력을 손에 쥐고 기득권을 구축한 이후 급속도로 변해갔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권력화된 386그룹과 일반 386세대는 분리해서 봐야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386세대 정치인들에 대해 “정당에 편입된 학생운동 지도층들은 당 안팎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실권층의 이익에 봉사하는 예하 부대 하수인과 같이 됐다”며 “그런 모습이 대중들의 눈에 보일 정도로 심각해지면서 이제는 386세대 전체에 대한 비판과 환멸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지난달 27일 한 교수의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의 일문일답.
"별 거 아니네, 결국 다 똑같네"
“기대가 컸는데 시간이 지나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별거 아니네, 결국 다 똑같네’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거다. 겉으론 굉장히 멋잇고 탈인습적 인물로 보였지만 속을 캐고 들어가니까 기득권 집단하고 차이가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다들 분노하는 게 아닌가 싶다.”
Q. 일부 인사들의 문제일 뿐 386세대 전체를 싸잡아서 비판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운동권 출신 386과 단순 80년대 대학을 다녀 386세대로 묶인 이들이 얼만큼 동질적 가치관과 지향점을 공유하는지는 많은 논쟁이 필요한 사안이다. 386이라고 하면 가장 좁은 개념으로는 운동권 80년대 학번 중에서도 정치권에 발을 담근 인사를 지칭하지만, 개념을 확장시키면 훨씬 광범위할 뿐 아니라 이들을 동질적인 하나의 집단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Q. 한때 악습·구태·적폐에 맞서 싸웠던 이들이 왜 이렇게 된 건가.
“운동권 세력은 당시 고도로 조직화됐고 상명하복의 군대식 문화를 지향했다. 과거 군부독재라는 ‘악의 축’에 대항하는 과정에선 이같은 문제들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사회가 아니지 않나. 그들이 변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안고 있던 만성적 문제들이 이제야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386세대의 빛과 그늘
“386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굉장히 급진적이고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는 데 공격적이란 것이다. 이같은 특성은 권력과 결합했을 때 너무 쉽게 타락한다. 또 학생운동권 지도부의 경우 위계질서가 강해 열린 마음으로 토론하거나 자기반성적 태도가 부족한 것 역시 사실이다.”
Q. 386세대가 한국 사회에 끼친 긍정적 영향도 있지 않나.
“386세대에 대한 비판과 쓴소리는 전체의 이야기는 아니고 특히 정치권 386세대의 문제인 것은 맞다. 그들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권력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그 방향을 이탈해 독점적인 구조를 만든 것이 문제다.”
Q. 386세대가 정치·경제·사회 등 전 분야에 걸쳐 지나치게 장기집권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들에게서 장기집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문재인 정부 들어 이제야 주도 집단이 돼 수면 위로 올라왔다. 연령 집단으로서 50대가 한 사회의 중추적인 위치에 도달하는 것은 역사상 어느 시대나 동일하다.”
'포스트386' 가뭄 현상 극심
“일부 그런 인물이 있겠지만 이를 전체로 확장해 평가할 순 없다. 386세대가 그들의 정치력과 잠재력을 인정받고 태동하기 시작한 계기는 2002년 노사모다. 당시 정치권의 일부 386이 아니라 대규모의 60년대생, 80년대 학번이 노무현 후보를 지원하고 자발적으로 후원을 내며 정치 성향을 표출했다. 이 시기부터 386세대가 정치적 주체로 등장했고, 이 중에서도 386세대 정치인이 전반적으로 주요 역할을 맡은 건 채 5년도 되지 않았다.”
Q. ‘포스트 386세대’라고 할 만한 그룹이 없는 것도 문제다.
“386세대가 이후의 X세대, 밀레니얼 세대를 경계하냐 하면 그건 아니다. 과거엔 기성 정치인들이 새로운 피를 수혈한다는 명목으로 ‘운동권’이라는 저수지에서 인물을 뽑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저수지 자체가 없다.”
탐사보도팀=김태윤·최현주·현일훈·손국희·정진우·문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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