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뉴스] 세계 최대 FTA ‘RCEP’, 정말 ‘타결’된 거 맞나요?

2019. 11. 6. 18:10C.E.O 경영 자료

[정리뉴스] 세계 최대 FTA ‘RCEP’, 정말 ‘타결’된 거 맞나요?
수정2019-11-06 17:38입력시간 보기

“오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15개국 간 타결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남은 시장개방 협상이 완료되고 인도도 참여해 내년에 16개국 모두 함께 서명하기를 기대합니다.”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참석차 태국을 방문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RCEP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페이스북에 이 같은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RCEP 타결’이 이번 정상외교의 성과물이라는 점을 알리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RCEP은 아세안 10개국과 한국·중국·호주·뉴질랜드·인도·일본 6개국이 참여하는 아시아·태평양지역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세계 총생산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 FTA입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도 이날 ‘RCEP 15개국 간 협정문 타결 선언’이라는 제목의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RCEP 참여국 정상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인도를 제외한 15개국이 20개 챕터의 모든 협정문을 타결하였음을 선언하였으며, 2020년 최종 서명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시 말해 문재인 정부는 20개 챕터로 구성된 RCEP ‘협정문 협상’이 마무리됐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15개국 간 타결” “15개국 간 협정문 타결 선언”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일(현지시각) 태국 방콕 임팩트 포럼에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정상회의에서 다른 나라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일(현지시각) 태국 방콕 임팩트 포럼에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정상회의에서 다른 나라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하지만 외신들은 연내 타결이 물 건너갔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외신들이 뽑은 기사 제목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인도가 중국에 맞서면서 RCEP이 지연되고 있다”(가디언), “연내 타결 희망이 사라졌다”(방콕 포스트), “세계 최대 규모의 무역협상 타결이 2020년으로 연기됐다”(AFP) 등입니다.

이런 온도 차를 두고 시민사회에선 정부가 어떻게든 ‘타결’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으려고 무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지식연구소 공방 소장인 남희섭 변리사는 지난 5일 발표한 논평에서 “공동성명의 ‘concluded text-based negotiations’을 근거로 산업부는 ‘협정문 타결’이라고 발표했는데, 협상 타결도 아니고 협정문 타결이란 말은 처음 들어본다. 이런 식의 조약 타결 방식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산업부는 그간 전반적으로 합의가 이뤄졌지만 일부 잔여 쟁점이 남아 있는 경우 ‘실질 타결’이라는 표현을 써왔습니다. 협정문 타결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산업부는 2014년 7월 ‘한·터키 FTA 서비스, 투자협정 실질 타결’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에서 “양측은 서비스·투자 분야 협정문의 잔여 쟁점과 서비스 양허 및 투자 유보 협상에 전반적으로 합의함으로써 실질적 타결에 도달했다”고 밝혔습니다. 2016년 11월 한·중미 FTA의 경우에도 산업부는 “니카라과·엘살바도르·온두라스·코스타리카·파나마 등 5개국은 모든 협정 24개 챕터에 합의했고, 과테말라는 시장접근·원산지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 실질 타결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산업부가 RCEP 정상회의 뒤 실질 타결 대신 협정문 타결이라는 낯선 표현을 사용한 것은 핵심 회원국인 인도가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현재의 RCEP 협정문에는 (협정의) 기본 정신이나 합의된 원칙 그리고 인도의 해결되지 않은 이슈와 우려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는데요, 중국과의 무역에서 수년간 대규모 적자에 시달려 온 인도가 RCEP에 가입할 경우 값싼 중국산 농산물과 산업제품이 더 밀려들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산업부는 상품·서비스·투자 시장개방 협상에서 잔여 쟁점이 일부 남아 있는 것도 고려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분명한 점은 RCEP 협상에서 상당한 진전이 이뤄졌지만 인도를 참여시키는 문제 등 갈 길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일각에선 내년에도 최종 서명이 이뤄지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기도 합니다.

남 변리사는 “이제 정부가 할 일은 일방적인 홍보와 치적 내세우기가 아니라 협정문안과 협상자료의 공개다. 이걸 공개해야 RCEP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 객관적인 검증과 평가가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