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칼럼] '박근혜 판결문'이 문재인 선거 농단을 겨누다

2020. 2. 13. 16:47이슈 뉴스스크랩

[김창균 칼럼] '박근혜 판결문'이 문재인 선거 농단을 겨누다

입력 2020.02.13 03:20

野 후보 낙인찍기 수사 지시는 경선 여론조사보다 죄질 나빠
본선 승부 조작한 文 청와대, 朴은 유권자 선택엔 개입 안 해
'朴 2년형' 잣대 그대로 적용 땐 울산 선거 개입 重刑 못 피할 것

김창균 논설주간
김창균 논설주간

보통 사람들은 어떤 죄를 지었을 때 어느 정도 벌을 받게 되는지 짐작이 어렵다. 그래서 울산시장 선거 개입이 정말 죄가 되는 것인지, 죄가 된다면 누가 어느 정도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6년 총선에 개입한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은 판결문을 읽어 볼 것을 권한다. 이 판결문과 울산시장 선거 개입 검찰 공소장은 대칭 구조를 이룬다. 판결문은 '친박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청와대 참모들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것이고 공소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친구 송철호 후보 당선을 위해 청와대 참모들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전·현 청와대의 범죄 행위는 3가지씩이다. 서로 짝을 이루는 양쪽 혐의를 각각 저울에 올려 경중을 가린 뒤 박근혜 판결문의 선고 형량을 대입해보면 문재인 청와대가 치러야 할 죗값을 예상해 볼 수 있다.

박근혜 청와대의 핵심 혐의는 선거 출마 후보들에 대한 지지율 조사를 했다는 것이다. '지지율 조사가 왜 죄가 되나' 고개를 갸웃하게 되고, 박 전 대통령 측도 '선거 판세 예측을 위한 일상적인 조사'라고 변론했다. 재판부는 "경쟁력이 높은 친박 후보를 골라내 선거에 내보내려는 감별용"이기 때문에 선거 개입이라고 판단했다.

문재인 청와대의 대표 혐의는 송철호 후보의 맞상대인 김기현 야당 후보에 대한 경찰 수사를 지시한 점이다. 민정비서관실이 김 후보의 비리 첩보를 수집한 뒤 반부패비서관실을 통해 경찰에 내려보냈다. 지시받은 수사팀이 "과거 수사에서 무혐의로 판명 난 사안"이라고 주저하자 그들을 좌천시킨 뒤 수사를 밀어붙였고, 검찰이 기소 감이 안 된다고 퇴짜를 놨는데도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다. 애초 목적이 사법 처리가 아니라 야당 후보 흠집 내기였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그런 수사의 진행 상황을 18차례나 경찰에서 보고받았다.

박근혜 청와대가 친박 후보에게 공천을 주기 위해 경쟁 후보를 다른 선거구에 출마하도록 종용한 것과 문재인 청와대가 송철호와 경합하려는 임동호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에게 다른 공직을 제안하며 불출마를 유도한 것이 짝을 이룬다. 또 박근혜 청와대가 '친박 후보에게 유리한 경선 규칙을 여당에 권유한 것'과 문재인 청와대가 '야당 후보 대표 공약의 예비 타당성 조사 탈락 사실을 선거 직전 발표하도록 기획재정부와 조율한 것'을 엇비슷한 혐의로 묶을 만하다.

일반인의 상식으로 죄질을 맞비교해 봐도 문재인 청와대 쪽으로 저울이 기운다고 느낄 것이다. 더구나 박근혜 청와대는 집권 세력 내부인 여당에 영향력을 행사한 반면, 문재인 청와대는 경찰·기획재정부 같은 국가기관을 개입시켰다는 점에서 책임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차이는 박근혜 청와대는 본선 전 단계인 경선에 개입한 것이고, 문재인 청와대는 야당 후보와 본선에서 승부를 조작했다는 점이다. 박 전 대통령의 판결문은 "새누리당 공천 단계에서 개입했을 뿐, 실제 총선에서 유권자 투표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했다. 이 점을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해야 한다면서도 2년 형을 선고했다. 본선 선거 개입은 훨씬 더 중벌로 다스려야 한다는 취지다.

판결문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피고인으로 하고 있는 반면, 공소장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등장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이 송철호 후보 당선을 도우라고 지시한 증거가 없으니 당연하지 않으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 역시 직접 지시한 증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판결문은 '친박 인물을 당선시키려는 박 전 대통령의 의지가 뚜렷했다'는 점과 대통령의 묵인이 없었다면 복수의 범행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대통령의 공모를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송철호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 문 대통령 발언은 친박 당선을 바라는 박 전 대통령의 의지와 무슨 차이점이 있나. 문재인 청와대 7개 조직이 송철호 당선을 위해 움직인 것을 대통령의 의중 말고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나.

울산시장 선거 개입 공소장은 수사 중인 검찰 라인을 권력의 힘으로 공중분해시킨 가운데 나온 것이다. 수사가 중단될 것을 우려해 지금까지 확인된 혐의만 기록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쫓겨나고 구속된 뒤 무방비 상태에서 받은 판결문보다 훨씬 심각한 범죄 혐의를 담고 있다. 이 정권이 '적폐'라는 이름 아래 박 전 대통령을 옭아맸던 그 잣대가 울산시장 선거 농단에 대한 중형을 예고하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2/12/20200212039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