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사실상의 비례대표용 연합정당 참여 수순에 돌입했다. 민주당이 지난해 강행한 선거법 개정의 원칙을 훼손하고 안팎의 거센 역풍을 감수하면서까지 입장을 급선회하게 된 데엔 친여(親與) 성향 진보 진영 원로들의 제안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특히 함세웅 신부 등이 최근 정치개혁연합 창당 준비위 설립을 신고하면서 범여권에 비례연합정당 참여 논의의 판을 깔아줬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별도로 좌파의 총선 승리를 위한 ‘전략적 분할투표’를 전격 제안했다. 이들 중 일부는 과거 진보 진영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정치 전면에 나서 좌파 역량을 극대화하고 생존의 방식을 제시해온 ‘원탁회의’ 인사들이다. 한동안 공식적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원탁회의는 지금도 여전히 문재인 정권의 배후세력이자 숨은 권력집단인 ‘딥 스테이트(deep state)’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들의 목적은 좌파 체제의 온존·유지, 그리고 진보 장기 집권 기반 마련이다. 원탁회의 멤버들의 정치 개입은 2015년 4월 ‘세월호 사건’ 때 이후 근 5년 만의 일이다. 민주당 실세 의원 5인이 지난달 26일 ‘마포 회동’에서 정의당을 배제한 독자 비례대표 정당 창당 불가피성을 논의하고, 이에 정의당이 강력 반발하면서 총선을 40여 일 앞두고 좌파 분열이 가시화하자 전격 개입하게 된 것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지난 1일 ‘대통령 탄핵’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민주당 주장을 반박하면서 “탄핵 위기가 오면 민주당이 (의석) 과반을 가진다고 해도 막을 수 없다”고 반발했다. 정의당이 이렇게 나오는 데엔 이유가 있다. 참을 만큼 참았다는 것이다. 정의당은 지난해 말 ‘패스트 트랙’ 정국에서 소수정당에 유리한 선거법 개정을 얻어내기 위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비리 의혹을 엄호하고, 심지어는 민주당 2중대 소리를 들으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안 통과에 협력했다. 오로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원내 의석수를 늘리려는 것이었다. 심 대표는 당시 사석에서 “정치를 한 이후 이렇게까지 망가진 적은 없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평판이 흔들렸고, 사람도 잃었다. 평생 동지였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정의당에 등을 돌렸다. 이렇게 선거제도 하나만 보고 정부 여당의 국정 운영에 협력해왔는데 민주당이 자신들의 의석수를 늘리기 위해 독자 비례대표 정당 설립을 추진하자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원탁회의 핵심 인사들의 귀환은 이처럼 진보 진영의 내부갈등이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원탁회의 중심 인사들은 21대 국회 원 구성을 가를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 과거 원탁회의의 구성원이었던 한 인사는 “범여권의 제 분파가 진보의 승리에 필요한 연합정치의 새로운 방안을 내놓지 못할 경우 원로들이 선제적으로 지혜를 모으고 압력을 가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원탁회의의 재등장은 좌파 연합을 통한 진보 장기 집권 플랜의 실현이라는 일관된 맥락 위에 있다고 봐야 한다. 즉 입법권력을 놓치면 좌파의 장기 집권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원내 과반은커녕 제1당을 빼앗기고 국회의장 자리마저 보수정당에 뺏기면 문재인 대통령 탄핵을 막지 못한다는 위기감이 작용했을 법하다. 과거 원탁회의에 참여했던 또 다른 원로 인사는 “함 신부 등이 원칙의 무시라는 정치권과 시민사회 안팎의 강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비례연합정당 설립을 주도하고 백 교수가 전략적 분할투표를 주장하고 나선 것은 좌파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생존방식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일모도원(日暮途遠), 해는 저물어가고 갈 길은 먼 상황에서 내린 긴급 처방이라는 것이다. 이와 때를 맞춰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원장 양정철)이 4·15 총선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해 총선 승리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A4 용지 7쪽 분량으로 이뤄진 ‘21대 총선 비례정당 관련 상황 전망, 민주당 대응전략 제언’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에서는 민주당과 정의당이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할 경우 22석가량 비례 의석을 가져갈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보수정당인 미래통합당의 비례정당인 미래한국당의 의석은 18석이라고 전망했다. 좌파 원로들이 제안한 내용을 민주당이 데이터로 뒷받침하면서 받아들이는 형국이다. 원탁회의의 정치권 개입 방식은 진보 제 분파와 세력을 한울타리에 몰아넣고 이탈을 막으며 좌파 연대를 압박해 성사시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들이 현실 정치에 전면 개입한 첫 사안은 2010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때 곽노현 후보와 박명기 후보의 단일화를 중재한 것이었다. 백 교수, 함 신부 등 21명은 2011년 7월 26일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를 구성하면서 처음으로 원탁회의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이후 정국의 변동이 생길 때마다, 진보 진영 내부의 갈등이 있을 때마다 장외(場外)에서 장내(場內)로 진입해 ‘훈수’를 뒀다. 원탁회의에 참여했던 문재인·이해찬 등 당시 민주당 고문은 ‘혁신과 통합’을 만들어 정치권으로 돌아갔고, 백 교수 등 남은 사람들은 정책을 만드는 것으로 역할을 나눴다. 즉 원탁회의는 탄생 때부터 문 대통령과 한몸이었고,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로는 권력의 뒷배 역할을 하는 셈이다. 원탁회의는 19대 총선을 앞둔 2012년 3월 10일 민주당 한명숙 대표와 통합진보당(정의당의 전신) 이정희·유시민·심상정 공동대표를 만나 야권 연대를 압박했고 급기야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20개의 약속’이라는 공동 정책 합의문을 냈다. 통진당은 원탁회의를 지렛대 삼아 민주당으로부터 여러 곳의 단일후보를 따냈고, 총선에서 두 자릿수 의석(13석)을 얻었다. 원탁회의가 통진당 내 주사파 세력의 국회 진입을 도운 것이다. 조갑제닷컴이 발행한 ‘종북백과사전’(2012년)에 따르면 원탁회의에는 종북 좌파 배후가 포진돼 있다.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가 통진당 해산 결정을 내렸을 때도 원탁회의가 해산 반대 운동을 주도했다. 원탁회의의 훈수 정치는 2012년 대선에서도 계속됐다. 그해 여름부터 안철수의 대선 출마를 공식 요구했던 원탁회의는 가을 들어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를 촉구했다. 전형적인 원탁회의의 정치 개입 방식이었다. 원탁회의는 그해 대선 패배 이후 해산했지만, 2014년 12월 통진당 해산 반대 운동과 2015년 4월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고문단 참여 등으로 정치권 귀환 태세를 유지해 왔다. 원탁회의는 진보 진영이 위기에 몰릴 때, 혹은 선거판만 되면 시민사회의 담장을 넘어 직접 현실 정치에 개입해 훈수를 해왔다. 총선 연대를 압박하는가 하면 대선 경선 후보를 조정하고, 진보 진영의 이익을 위한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강력한 비판 여론과 정치적 역풍 가능성에도 불구, 비례연합정당 창당을 주도했다. 그런 점에서 원탁회의는 지금도 문재인 정권의 배후이자 숨은 권력 즉 ‘deep state’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한 평론가는 SNS에 “이들은 좌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현실 정치판을 떠나지 못하는 지박령(地縛靈)들”이라고 평가했다. 좌파 원로의 훈수 정치 : 진보 시민사회 원로들로 구성된 원탁회의는 2011년 탄생 때부터 문재인 대통령과 한몸이었고, 문 정권 출범 이후 뒷배 역할을 해옴. 원탁회의는 지난 10년간 좌파 총선 연대를 유도하고 대선 후보 단일화를 압박하며 훈수 정치를 함. 원탁회의의 귀환 : 진보 시민사회 인사들이 중심이 돼 범여권을 아우르는 비례연합정당 창당 준비위 설립 신고가 이뤄짐. 이는 ‘원탁회의’의 귀환임. 이들은 진보의 위기 때마다 좌파 역량 극대화를 위해 정치에 개입하면서 진보 장기 집권 기반 마련을 꾀함. 文 정권의 ‘딥 스테이트’ : 원탁회의의 정치권 개입 방식은 좌파 제 분파·제 세력을 한울타리에 몰아넣고 연대를 압박하는 것으로 요약됨. 원탁회의의 후예들은 문재인 정권을 배후에서 좌지우지하는 숨은 권력집단이자 ‘딥 스테이트(deep state)’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