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팬데믹 국면에 접어든 코로나19 사태에서도 결국 정치가 문제였다. 검진·차단·치료의 전 과정에서 과학적 사고를 우선시한 국가, 반대로 정치 논리와 이념이 앞선 국가의 양상은 판이하게 전개됐다. 사태 초기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만을 생각하고 인간 안보(human security) 차원에서 접근한 국가는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반면, 정권 안보(regime security)에 집착해 멀리 보지 못한 국가는 실로 참혹한 상황을 맞았다. 처음부터 과학의 순리에 따랐으면 대책도 쉬웠다. 바이러스 슈퍼 전파자를 막았으면 됐다. 과학자와 보건 전문가들은 “피해가 큰 나라들의 공통점은 조기에 중국인 입국금지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쉬운 답을 놔두고 엉뚱한 접근을 하니 꼼수만 남발되고 해법은 꼬였고,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며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위기에 봉착했다. 이탈리아, 이란, 그리고 한국이 대표적이다.
이탈리아는 초기 돈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중국인 입국을 전면 차단하는 조치 대신 제3국을 통한 우회로를 열어뒀다. 외형상 경제와 외교를 핑계로 한 정권 차원의 결정이었다. 이탈리아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통해 항만 인프라 중심의 북부 개발, 나아가 경제 재건을 꾀할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밀라노 무역업체의 13%를 중국인 이민자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도 잘못된 판단으로 이끈 요인이 됐다. 이란 역시 경제적으로 국제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다 보니 쉬운 답을 놓쳤다.
유럽과 중동에서 팬데믹을 주도하고 있는 이탈리아와 이란의 첫 슈퍼 전파자는 모두 중국에서 들어온 감염자로 추정된다. 두 나라는 2월 말에야 중국인 입국을 전면 금지했는데 결국 당초 꾀했던 눈앞의 이익도 놓치고, 명분과 신뢰도 잃은 뒤였다. 급기야 주세페 콘테 총리는 10일을 기해 6000만 국민을 상대로 전국 이동제한령이라는 초강수를 둬야 했다. 사망률, 전파율 모두 1위인 상황에서 15개 지역 봉쇄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국가 경제를 위해서라는 변명은 멀리 내다보는 판단 능력이 없었다는 자인과 다름없다. 가뜩이나 침체된 이탈리아 경제는 급속히 마비되고 있다. 국채 발행이 불가피해 또다시 재정위기를 촉발할 가능성도 커졌다.
이란의 대가는 보다 혹독했다. 능력도 안 되면서 섣부른 결정을 내렸다가 고위층 감염, 사망이 잇따르면서 집권층부터 쑥대밭이 됐다. 정권 안위부터 걱정할 판이다. 모하마드 알리 라마자니 다스타크 국회 부의장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최측근들이 줄줄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하메네이의 감염 우려도 커졌다. 의료시스템과 감염확산 방지를 위한 물적 자원도 턱없이 부족해 최악의 위기를 맞을지 모른다. 반면 러시아, 대만, 몽골, 카자흐스탄, 베트남의 선택은 달랐다. 최대 관건인 초기 대응에서 냉정하고 단호한 결단을 내려 중국발(發) 전파자 유입을 차단했다. 이들 국가 경제의 중국 의존도는 이탈리아, 이란보다 결코 낮지 않다. 특히 러시아는 경제뿐 아니라 정치·외교·군사 측면에서도 거부할 수 없는 제1의 우방인 중국과의 국경을 차단하는 과감한 조치를 내렸다.
문재인 정부 역시 과학이 알려주는 정도(正道)를 외면했다. 당연한 길을 피하려니 설명이 구차하게 길어졌다. 해명은 정권의 이데올로기로 포장됐다. 중국과 ‘글로벌 가치 사슬’에 얽혀 있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는가. 다른 방법으로 대처할 일이다. 남북관계의 교착을 푸는 해법도 국민을 지켜낸 뒤에나 할 일이다. 재난이 터졌는데 컨트롤타워가 안이하기 짝이 없는 결단을 내리면 누구보다 고통당하는 이는 국민이다. “안정 단계로 들어간다면 한국은 방역 모범 사례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문 대통령의 자화자찬을 듣기에는 이미 희생이 너무 크다.
마스크 대란 40일 만에 나온 대책은 난수표 같고, 현장의 고통은 여전하다. 외교 당국도 한심하다. 어쭙잖은 인도주의, 실리도 못 챙기는 저자세, 코리아포비아 확산을 자초한 무능, 꼬리를 무는 말 바꾸기는 국민의 심리 방역도 무너뜨렸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 속 국내 거의 모든 분야 산업이 무너질 위기다. 준비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머릿속엔 총선만 맴돌고, 마음속으론 편 가르기 주판알만 튕기고 있다면 비극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