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패닉'에 수출·내수 모두 붕괴 위기...기업들 '비상경영'

2020. 3. 13. 14:40C.E.O 경영 자료

'팬데믹 패닉'에 수출·내수 모두 붕괴 위기...기업들 '비상경영'

입력 2020.03.13 12:50

코로나 사태에 세계 금융시장 붕괴하는 ‘경제 쇼크’
기업들, 올해 경영계획 전면 수정해야 하는 상황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덮치며 코로나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공포로 세계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등 경제에 '쇼크'가 가시화되자 국내 기업들이 비상경영활동에 돌입했다. 수출과 내수가 모두 붕괴하면서 올해 경영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기업들 사이에서는 "코로나 사태로 경제가 패닉에 가까운 상황에 이르고 있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미 경기 부진이 장기화된 상황에서 코로나 사태로 내수, 수출할 것 없이 모든 경영 환경이 더 악화됐다"며 "기업들은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올해 1분기 기업 실적은 물론 신용도도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내수 침체에 수출길도 막혀 경영 환경 ‘최악’

지난달 중국산 부품 공급에 차질을 빚으며 한동안 생산라인을 멈췄던 현대자동차 (89,800원▼ 5,200 -5.47%)는 지난달 판매량이 급감했다. 지난달 현대차의 국내 판매량은 3만9290대로, 지난해 2월(5만3406대)보다 26.4% 감소했다.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인기 차종의 출고가 지연됐고, 코로나 사태로 소비 심리마저 위축되며 판매가 감소한 것이다.

코로나 여파로 중국산 부품 공급이 차질을 빚으며 지난달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한 현대차 울산 공장./연합뉴스
수출 전망은 더 암울하다. 전세계가 팬데믹 공포로 무역에서도 빗장을 채우기 시작하면서 수출 감소가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사업이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대차 임원은 지난달 아람코와 사업 협력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지만,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해 귀국했다.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 만도 (21,500원▼ 2,800 -11.52%)는 경영난이 심화되면서 전체 생산직 근로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순환휴직도 추진하기로 했다. 자동차 판매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자 구조조정에 들어간 것이다.

세계적인 수요 감소에 과잉 공급에 이중고를 겪던 석유화학 업계는 최근 국제 유가 폭락으로 세계 금융위기보다 더 큰 위기에 봉착했다. 특히 정유업체들은 올해 1분기 대규모 적자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지난해 말부터 정유사의 정제 마진(석유 제품 가격에서 비용을 제외한 것으로, 정유사의 수익 지표)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가운데 코로나 사태로 여객, 운송 수요가 급감하고 각국 공장 가동률도 하락해 실적은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항공·해운 업체는 여객, 물동량 급감으로 고사 위기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국적 항공사 여객기 10대 중 8대가 공항에 멈춰서 있다. 한국발 입국 제한 국가가 늘면서 지난달 인천공항의 국제 여객 수송객은 전년 동기 대비 41.5% 감소했다. 지난 12일에는 김포공항에서 뜨고 내린 국제선이 하루 ‘0’편을 기록하는 초유의 사태도 발생했다.

이번 사태로 운항을 80% 감축한 대한항공은 2년 이상 근속한 객실 승무원을 대상으로 1~3개월 단기 휴직 신청을 받고 외국인 조종사를 대상으로 무급휴가 신청을 받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은 "회사 역사상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던 외환위기 때도 운항을 약 18% 정도만 감축했던 것과 비교해보면 이번 코로나 19로 인한 위기의 심각성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운업계의 어려움도 심화되고 있다. 국내 5위 해운사인 흥아해운 (278원▲ 46 19.83%)은 한중 노선 물동량 감소로 최근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했다. 지난해 미중 무역분쟁에 이어 올해 코로나19 확산으로 해운 물동량이 급감한 영향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현대상선의 경우 지난달 중국의 공장 가동률이 급감하면서 해운 물동량이 전년 대비 50% 이하로 떨어졌다.

코로나 사태에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 한산한 경남 창원의 한 백화점./연합뉴스
감염을 우려한 사람들이 외출을 꺼리면서 백화점, 할인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기간 이어진 내수침체에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자 롯데그룹은 올해 200개 유통매장을 폐쇄하는 등 사상 최대 규모의 구조조정을 예고한 상태다.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롯데하이마트 (16,850원▼ 1,150 -6.39%)는 창사 20년 만에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기로 했다. 영화 관람객이 급감하면서 국내 영화관 1위 업체인 CJ CGV는 매각설에 휩싸이기도 했다.

유통업계의 실적 악화는 지표로도 드러났다. 온라인쇼핑을 제외한 백화점·할인점 매출이 큰 폭 하락한 것이다. 지난달 백화점 매출액은 전년 대비 30.6% 급감했고, 대형마트 등 할인점 매출액도 19.6% 줄었다.

◇코로나 사태로 韓 기업 신용등급 ‘무더기 강등’ 우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손실은 더 커질 전망이다. 팬데믹이 진정되지 않으면 수출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고, 정부 대응책으로 내수를 회복시키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심각한 실적 악화가 신용도 저하로 이어지면 기업의 재무 위험도 커질 수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코로나 사태 여파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실적이 나빠지면서, 취약 기업 위주로 무더기 신용등급 강등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
다. S&P는 특히 글로벌 공급망 의존도가 높은 자동차 산업의 타격이 예상되고, 항공산업이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 활동에서 가장 큰 리스크가 불경기와 불확실성인데, 이 둘이 한꺼번에 겹쳐 위축된 기업들의 활동이 풀릴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코로나 사태로 1분기 기업들의 매출이 10~20%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