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두 달 전 청와대 말대로 코로나 대응했더라면

2020. 4. 11. 10:45C.E.O 경영 자료

[터치! 코리아] 두 달 전 청와대 말대로 코로나 대응했더라면

정우상 정치부 차장

조선일보 입력 2020.04.11 03:16

靑, 2월엔 "일본 대응 차분하다" 회식 장려, 마스크 사용 자제 요청

첫 사망자 나온 날 짜파구리 파티… 靑·與, 지금은 총선 축배 준비

정우상 정치부 차장

전 세계가 한국의 코로나 방역을 '모범'으로 칭찬하니 청와대와 정부·여당의 '코로나 선방론'이 터무니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 두고 "정부가 잘했네" "민간이 잘했네" 다툼을 하는 것은 네이버와 다음의 댓글 몫으로 남겨 두자. 다만 누구 말대로 우리가 지금 '지옥문' 앞에 있는지, '코로나 방역 선진국'으로 국운(國運) 상승의 기운을 탔는지 판가름 나는 것은 총선 후 몇 달이 지난 후가 될 것이다.

하지만 대구, 경북 시민들이 피눈물 속에 '자발적 격리'로 대한민국 전체에 방호복을 입힐 때, 자영업자들과 근로자들이 엄격한 '방역 수칙'을 지키며 영업과 일자리 손실을 감수하던 그때. 청와대와 정부 인사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돌아볼 필요는 있다. 불과 두 달 전 일이지만 기록을 남겨 둬야 할 것 같다.

2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방역과 경제 모두를 잡겠다고 했지만 4월 총선을 두 달 앞둔 청와대의 마음은 다급했다. 야당의 '경제실정론'이 코로나를 만나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그날 남대문 시장을 방문했던 문 대통령에게 상인들은 "살려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총선 악재가 분명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일본은 우리와 상황이 비슷한데 과도한 불안이 사회적 비용을 낳는다고 해서 차분하게 대응한다"며 한국 언론 탓을 했다. 김 실장이 그렇게 칭찬했던 '차분한' 일본이 지금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는 더 말하지 않겠다.

문 대통령은 이틀 뒤인 14일 재벌 그룹 회장들을 불러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며 "방역 관리는 어느 정도 안정적 단계"라고 했다. 청와대 대변인은 "일상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판단에서 한 말"이라고 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대통령부터 재벌 회장들까지 어느 누구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한 재벌 그룹 회장은 청와대의 내수 활성화 주문에 "저녁 회식을 활성화할 테니 주 52시간에 저촉될지 우려를 해결해 달라"고 했다. 청와대는 며칠 뒤 "자율적 회식은 주 52시간제와 무관하다"며 전폭 수용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역주행을 청와대가 장려한 꼴이었다. 당시 청와대 발표가 얼마나 위험천만하고 안일한 대응이었는지 식은땀이 날 지경이다.

당시 정부는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외에 중국발 여행객 입국 금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요구했던 코로나 위기 경보의 '경계'에서 '심각' 단계의 격상도, 정부는 "전국 확산은 아니다"라며 외면했다.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 때문이었다. 그래서 2월 20일,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참석했던 청와대의 '짜파구리' 축하연이 예정대로 진행됐다. 점심 이후 문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통화에서 "중국 어려움은 우리의 어려움"이라고 말했다. 그날 국내 코로나 확진자는 하루에 55명 늘어난 106명이 됐고, 첫 사망자가 나왔다. 여기까지가 세계적 '코로나 선방론'을 주장하는 2월까지의 기록이다. 결국 정부의 이런 낙관론과 방심, 총선을 앞둔 정치적 조바심 속에 모든 비난의 표적이 되는 '신천지 사태'가 터졌다. 정부는 2월 23일에야 전문가 요구대로 '심각 단계'로 격상했다.

그다음이라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마스크 대란'에 김상조 정책실장은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 사용을 자제해 달라"며 모범 사례로 마스크를 꺼리는 미국과 유럽 사례를 들었다. 하지만 국민은 꽃샘추위에 줄 서 가며 마스크를 구입해 남을 배려하고 자기를 지켰다. 국민이 청와대 말대로 마스크 없이 거리를 활보했다면 뉴욕과 런던의 비극이 서울에서 벌어졌을지 모른다. 이랬던 정부·여당이 '코로나 선방론'으로 며칠 뒤 총선 축배를 준비하고 있다.

조선일보 A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