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묻혀… 文정부 실정은 안 보이는 총선

2020. 4. 12. 06:53C.E.O 경영 자료

코로나에 묻혀… 文정부 실정은 안 보이는 총선

박혁진·이성진 기자

입력 2020.04.12 01:30

[주간조선]

지난 3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19 진단시약 긴급사용 승인을 받은 기업 대표들과의 간담회 자리에 참석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12일 취임 첫 공식 외부 일정으로 인천공항을 찾았다. 당시 인천공항공사는 회사 내 비정규직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문 대통령은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저는 제 임기 중에 비정규직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우선 공공부문부터 임기 내에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 이렇게 약속을 드리겠습니다”라고 밝혔다. 당시 문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 재계뿐만 아니라 노동계에서도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 채 선심성 정책을 쏟아낸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이로부터 약 3년이 다 되어가는 2020년 4월 현재 공사 내 정규직 전환 비율은 49%에 불과하다.

수치만 보면 임기 절반을 돈 시점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보였다고 할 수도 있지만 속사정을 뜯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이들 중 대부분은 공사에 직접 고용되지 않고 공사가 설립한 자회사에 고용됐다. 처우가 불안할 수밖에 없는 고용형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문 정부가 공약했던 ‘나쁜 일자리’에서 ‘좋은 일자리’로의 전환이 아닌 셈이다. 지난해 12월 공사는 제1자회사(인천공항시설관리), 제2자회사(인천공항운영서비스)에 이어 제3자회사(인천공항경비)까지 일방적으로 추가 설립한다고 밝히면서 노조의 반발을 사기까지 했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된 사례들

김포공항 등을 운영하는 한국공항공사의 경우 지난 1월 인천공항공사처럼 자회사 설립을 통한 고용을 이어가다 보안요원 80여명이 집단 반발, 퇴사한 일도 발생했다. 한국공항공사 한 관계자는 “직원들이 대거 나간 자리는 알바생들로 채워졌다. 보안 직무는 3개월간의 교육이 필요한데 이들 알바생은 그런 과정 없이 그대로 현장에 투입됐다”고 귀띔했다. 바꿔 말하면 문 정부의 공약 추진이 현장의 안전, 전문성까지 떨어뜨렸다는 말이다.

한 전직 공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만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이 담고 있는 전환 기준 등이 모호하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공기업들이 별다른 평가 기준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정규직 전환을 강행하면서 진짜 전환돼야 할 직원이 전환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현장에선 문 대통령 공약에 공감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공공부문 기관 853곳에서 정규직 전환이 완료된 인원은 17만4000명인데 이 중 23.6%가 자회사 설립을 통한 고용 방식으로 전환됐다. 양과 질 두 가지 측면에서 대통령의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된 셈이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된 건 이것만이 아니다. 2017년 5월 24일에는 문 대통령이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한 일자리 상황판 모니터를 보며 일자리 현황을 기자들에게 직접 설명했다. 당선되면 일자리 상황판을 두어 고용 현안을 직접 매일 점검하겠다던 후보 시절의 공약을 이행한 것이다. 이날 오전 집무실에 설치된 상황판은 ‘일자리 양은 늘리고, 격차는 줄이고, 질을 높인다’는 정책 방향에 따라 일자리지표 14개, 노동시장과 밀접한 경제지표 4개 등 총 18개 지표로 구성됐다. 당시 청와대 측은 “향후 일자리 상황판을 고용 관련 전산망과 연계해 각종 지표들이 실시간 자동 업데이트가 되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며 “시스템이 정착되면 일반 국민들도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대통령 집무실의 상황판을 함께 볼 수 있도록 개방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라고 전했다.

‘총선은 정권 중간평가’ 의미 실종

청와대는 이후 ‘일자리 상황판’이라는 웹페이지를 만들어 일반에 공개했다. 그런데 이 일자리 상황판은 이후 단 한 번도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언론이 기사화하기에는 상황판의 수치들이란 것이 별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이 지난해 12월 31일 한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일자리 상황판이 여전히 집무실에 있다”고 말한 것이 전부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도 이 문제를 꼬집었다. 그는 지난 4월 8일 충남 공주·부여·청양 지역에서 열린 정진석 후보 지원 유세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잘못된 정책이 소득주도성장 경제정책이다”라며 “일자리 창출을 한다며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만들어 일자리 늘어나는 것을 자랑하려고 했는데, 두 번 하더니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4월 15일 21대 총선은 정권 3년 차 종반에 치러진다는 점에서 중간평가 성격이 강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같은 대통령의 공약 이행률도 다른 때 같으면 노동계에서 당장 들고일어나 문제를 제기할 만한 이슈들이지만, 이 시국에 자칫 이 문제를 언급하면 당장 역풍이 불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초유의 국가적 재난 상황이 정작 국민의 일상과 연관한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고 있는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현 정부의 지지율이 오르고 있는 것은 코로나19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전 세계적 찬사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밌는 현상이 있다. 이탈리아나 영국, 미국과 같이 방역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 국가의 지도자들 역시 지지율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방역 실패로 한때 유럽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이탈리아의 주세페 콘테 총리 지지율은 3월 말 기준 71%를 기록했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 지지율은 72%를 나타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불과 1~2개월 만에 20%포인트 이상씩 급등한 수치들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 2월 여론조사에서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7%포인트의 지지율 격차를 보였지만 지난 3월 이를 2%포인트로 좁히며 지지율 상승세를 보였다. 국가 위기사태 등에서 정권 지지율이 오르는 이른바 ‘국기 아래 결집’ 효과가 적지 않게 작용한 것이다.

국가적 재난 사태에 대한 정권의 대응 역시 여러 가지 평가 요소에 속하지만, 이것이 정권의 모든 것을 평가할 수는 없다. 매 선거마다 정당 등의 공약을 분석해온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최근 선거 판도를 이렇게 평가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모든 이슈가 여기로 빨려들고 있다. 지난 정책 등에 대한 비판이나 검증은 없다. 프레임 만들어서 각기 구호만 외친다. 정당이나 후보들이 내세우는 공약 모두 제자리걸음일 수밖에 없다. 총선은 정권을 심판하는 자리다. 지난 공약, 정책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선거가 정권에 대한 올바른 중간평가로 치러지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비정규직 문제처럼 지난 대선 때 대통령이 내세웠던 공약들이 집권 기간의 60%가 지난 지금 얼마나 착실하게 이행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기 위해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 ‘함께하는 대한민국’ ‘안전한 대한민국’ ‘활기찬 대한민국’이라는 4대 비전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12대 약속과 함께 30개 영역 내 201개 분야에서 총 1169개의 공약을 공표했다. 대표 공약으론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한 일자리 확대, 적폐청산 및 권력기관 개혁, 재벌개혁, 청년·여성·노인 복지 신장, 탈원전, 소득증대를 통한 경제 활성화 등이 있었다.

여기서 이행, 실천한 공약은 얼마나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200개를 겨우 넘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해 말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이들 세부 공약 이행 여부를 조사한 결과 완전이행한 공약은 전체 1167개 중 18.3%(214개)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부분이행은 55.9%(660개), 후퇴이행 2.7%(32개), 미이행 21.3%(249개), 판단불가 1.5%(12개)였다. 경실련 측은 “남은 임기를 고려할 때 매우 낮은 이행률”이라며 “공약을 이행하려는 의지와 정치력의 부족, 지키기 어렵거나 구체적이지 못한 내용이 저조한 공약 이행의 원인”이라고 평가했다. 각 정책이 띠고 있는 포괄성이나 실효성 등을 고려하면 실제 국민들이 체감하는 공약 이행 정도는 더 낮을 수밖에 없다.

2018년 5월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추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photo 뉴시스

공허한 약속 ‘비정규직 처우 개선’

대통령의 공약은 경제적으로는 소득주도성장, 정치·사회적으로는 적폐청산으로 요약할 수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나 최저임금 1만원, 주 52시간제 등은 모두 소득주도성장의 일환이다. 소득주도성장의 경우 취임 2년 차에 들어서면서 “사실상 좌초됐다”는 평이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적지 않게 제기된다. 김광수경제연구소의 김광수 소장은 “정부지출은 대폭 확대됐는데 경제지표는 반대다. 명목·실질 GDP 성장률은 모두 하락하고 가계와 기업, 수출입 등 민간 부문에서의 소득은 급감했다”며 “좋지 않은 경기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의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게 원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문 대통령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공약했지만 지난 3월 31일부터 시작된 2021년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선 ‘최저임금 동결’ 필요성이 언급되고 있다. 총선을 앞둔 민주당 10대 공약에서도 소득주도성장은 보이지 않는다. 야권으로부터 ‘실직주도몰락’이란 오명만 듣고 있는 실정이다.

적폐청산의 정점에는 선거법 개편이나 검찰 개혁, 국가정보원 개혁 등이 있다. 하지만 적폐청산으로 명명한 정치 사법 개혁이 여당 주도로 이뤄지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청와대 인사들이 총동원돼 대통령의 친구를 광역시장으로 만들려는 작업이 이뤄진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올 2월 언론에 의해 공개된 검찰의 공소장 내용에 따르면 청와대 8개 비서실은 문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송철호 울산시장의 당선을 위해 조직적으로 지원했고, 그의 경쟁 후보자에 대해선 경찰조직을 동원해 범죄첩보서를 작성하는 등 낙선을 도왔다는 혐의를 사고 있다. 이 과정에서 법무부는 이례적으로 공소장 비공개 결정을 해 청와대를 비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정치권에선 이와 관련한 특검, 국정조사 추진 필요성이 언급되면서 이번 총선 구도를 뒤흔들 의제로 부상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이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실종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은 과연 현 정부가 적폐청산을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까지 들게 만들었다.

탈원전 정책도 그 실효성과 적합성을 떠나 임기 절반 동안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공약 중 하나다. 핵폐기물 최종 처분 방안 논의 등 구체적인 로드맵 제시나 원전 인근 주민 의견수렴 등에서 여전히 진척을 보이지 못해 박근혜 정부의 원전정책을 되풀이한다는 지적이 많다. 대선 당시 민주당 측에선 10대 공약으로 ‘설계 수명 만료되는 원전부터 해체 추진’ ‘신규 원전 중단 및 40년 후 원전 제로 국가로의 탈원전 로드맵 마련’ 등을 포함했다. 하지만 현재 민주당의 10대 총선 공약엔 ‘석탄발전을 보다 과감하게 감축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지속 확대’한다는 내용만 언급됐을 뿐 이렇다 할 탈원전 계획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탈원전·탈석탄 정책으로 최근 두산중공업 등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감행하는 등 경영난을 겪고 있는데 정부가 정책만 내놓고 무책임하게 방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제기된다.

민생개혁 역시 대통령의 약속과는 전혀 다르다는 비판이 진보 진영 내부에서 강하게 제기됐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이런 부분들이 전혀 도마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이강훈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부본부장은 “경기 침체로 2017~2018년 추진하던 노동개혁과 경제력 집중 억제 등의 재벌개혁, 하도급·가맹·대리·유통 등의 거래구조 개선과 수직적 전속거래구조 타파 등의 이른바 갑을 개혁, 주택 가격 안정과 공시가격 현실화 등의 민생정책이 일정 정도 진행되다가 둔화, 일부 후퇴하고 있다”며 “혁신성장 등은 지난 정부의 창조경제처럼 대기업에 의존하는 실정이다”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정국이 끌어올린 정부 지지율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9년 5월 8034명의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57.5%가 집권 2년 차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부정’ 평가를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긍정’ 평가는 전체의 36.7%, ‘모름·무응답’은 5.8%를 기록했다. 당시의 여론을 고려하면 지금 상승세를 탄 정부 지지율은 공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시선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가 코로나19에 대한 정부의 대응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대한 평가와 심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정권심판론보다 야당심판론이 더 힘을 받거나 민주당, 정부 지지율이 높게 나타나는 데엔 코로나19 여파를 배제할 수 없다. 유권자들마다 관심의 총량이란 게 있는데, 관심의 대부분이 현재 코로나19로 쏠려 있다. 지난 대선 공약 이행 등에 대해선 관심을 갖기가 어렵다. 그리고 코로나19는 방역을 잘하든 못하든 정권 지지율을 높이는 정치적 특수를 가져온다”고 분석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10/202004100352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