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11. 04:19ㆍ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만물상] 한국의 성범죄 量刑
조선일보 이명진 논설위원
입력 2020.07.09 03:18
법원 100년사에 소개된 옛 판결 가운데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이 있다. 성추행범의 혀를 깨문 열여덟 여성이 상해죄로 처벌받고 추행범은 풀려난 사건이다. 법적으론 '정당방위'가 쟁점이었지만 성범죄에 대한 당시 법원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순결을 지키려고 젊은 청년을 일생 불구로" "범행 장소까지 따라간 것은 이성에 대한 호기심의 소치" "키스 충동을 불러일으킨 도의적 책임"…. 판사가 성추행범을 변호하며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었다. 법원 흑역사라 할 만하다.
▶수십년 세월이 흘러 '성적 자기 결정권'이 강조되고 '성인지 감수성' 판결이 내려지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 판사들의 '가해자 변호'는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다. 초범이라고 깎아주고 반성한다고 풀어준다. "돌볼 식구가 있는 가장(家長)"이라서 집행유예, 심지어 "앞날이 창창하다"며 감형을 해준다. '피해자와 합의하라'면서 성폭력상담소에 돈을 기부했다고 또 깎아준다. 성범죄는 재범률이 가장 높은 범죄다. 가해자에 대한 온정적 판결 때문일 것이다.
▶성범죄 법정형은 갈수록 올라가고 있다. 미성년 성폭행, 동영상 제작, 성인 상대 강간 치상죄는 '무기징역 또는 징역 5년 이상'으로 처벌하라고 돼 있다. 살인죄와 비슷하다. 지하철 몰카도 최고 징역 5년까지 내릴 수 있다. 성범죄에 가장 엄격하다는 미국과 비교해도 크게 낮지 않다. 그런데 막상 법원에만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재작년 미성년 상대 성범죄자의 48.9%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14.4%는 벌금형이었다. 법 따로 재판 따로다.
▶엊그제 법원이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를 운영한 손정우씨의 미국 송환을 불허했다. 지난해 그에게 징역 1년 6개월 솜방망이 판결을 선고한 일까지 알려지면서 국민 분노가 치솟는다. 6개월 영아까지 유린했지만 '어릴 적 어렵게 살았다' '부양가족이 있다'며 터무니없이 형을 깎아줬다. 판결 2주 전 손씨가 낸 혼인신고서가 위조라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미국이라면 무기징역이나 30년 넘는 징역이라고 한다.
▶성폭력 당한 아동의 뇌는 정상인보다 15% 작고, 특히 기억과 감정을 조절하는 해마 부위 손상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살인과 다르지 않다. 성범죄는 피해자 개인에 국한된 범죄가 아니라 사회 안전과 불특정 다수를 위협하는 사회적 범죄이기도 하다. 이춘재의 연쇄살인도 성범죄와 함께 저질러졌다. 더 이상 "가해자 인생도 감안해야 한다"는 식으로 넘길 수 없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08/202007080484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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