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24. 22:43ㆍC.E.O 경영 자료
‘채상병 특검법’이 위헌? ‘박근혜 특검팀’ 윤석열 팀장은 뭐라고 답할까

윤석열 대통령. 왼쪽 사진은 2017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팀장 시절. 오른쪽은 지난 4월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단독회담 중인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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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은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과정에서 순직한 해병대 채아무개 상병의 1주기였습니다. 1년 전 그날의 신문을 들춰봤습니다. 숨진 뒤 상병으로 추서된 ‘채 일병’의 참담한 사고 소식에 2023년 7월20일 조간 신문은 진영 논리를 떠나 한목소리로 분노했습니다. 구명조끼조차 지급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밀어붙인 수색 작업의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는 일은 일사천리로 이뤄질 것처럼 보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시 “사고 원인을 조사해 재발을 막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뒤 1년이 지났고, 숨진 채 상병의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과정은 엉망이 됐습니다. 책임있는 이가 ‘면죄부’를 받고, 조사에 나선 이가 ‘항명’의 멍에를 쓰는, 기가 막힌 상황이 전국민에게 중계됐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윤 대통령의 ‘격노설’로부터 촉발된 만큼, 특검을 도입하지 않고선 진상을 규명하기 어렵다는 게 야당의 판단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지난 3일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은 ‘채 상병 특검법’이 위헌적이라고 주장하며 법안을 국회로 돌려보냈습니다. 채 상병 특검법은 과거 특검팀 출범으로 이어졌던 다른 특검법안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를 가졌는데도요. 이는 특히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검팀’의 스타 검사로 대중들에게 처음 각인됐던 윤 대통령의 정치적 궤적을 고려하면, 이율배반적인 태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펼쳐봤습니다. 윤 대통령이 수사팀장을 맡았던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팀은 2018년 5월 335쪽 분량의 ‘국정농단 특검법 해설’을 펴냈습니다. 이 책은 1999년 특검제 도입 이후 가장 강력한 권한을 부여받고, 국민으로부터 가장 높은 지지를 얻었던 특검팀이 바라보는 특검제도의 한계와 위상에 대해 짚고 있습니다. 비교해 봤습니다. 윤 대통령이 지난 9일 채 상병 특검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회에 보낸 ‘재의요구서’ 속 주장과 윤석열 수사팀장이 총괄 지휘했던 최순실 특검팀의 생각은 어떻게 다른지 말입니다. “상설특검법 및 향후 있을 수도 있는 개별 특검법의 제·개정 및 그 운영에 도움이 되고자” 펴낸 책이 ‘국정농단 특검법 해설’이라고 하니 대통령실에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참고로 법률안의 재의요구서를 국회에 보내는 주체는 대통령실이지만, 문서상 ‘제출자’는 대통령입니다. 이에 따라, 기사에선 ‘대통령실’을 주어로 쓰지 않고 윤 대통령을 주어로 쓰겠습니다.
①야당의 특검 추천권은 대통령의 임명권 침해인가?
채 상병 특검법 재의요구서에서 윤 대통령은 “특검 임명권은 대통령의 핵심적 권한”이라며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대통령은 정부의 수반으로서 행정권을 담당하며 국정을 운영하는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고 있고, 따라서 행정권을 행사하는 기구는 행정부의 소속으로 구성되어야 하며, 행정부 공무원에 대한 임명권을 행사하는 것은 행정권의 담당자인 대통령의 핵심적 권한입니다. 중립적이고 공정한 사람이 특검으로 임명될 수 있도록 임명 절차가 보장되어야 하고 대통령의 특검 임명권이 실질적으로 침해되어서는 안 됩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당에만 2명의 특검 후보자를 추천하도록 한 야당의 특검법안이 위헌적이라는 취지입니다.
‘국정농단 특검법 해설’을 참조하면, 윤석열 수사팀장이 속한 최순실 특검팀은 윤 대통령에게 이렇게 답할 듯 합니다. “대통령과 그 관련자들이 수사 대상인 경우에 대통령이 특검을 임명하는 것이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되고, 독립해 그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특검제의 취지에 부합하는지에 대하여는 의문이 있다.”(66쪽) 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의 추천으로 출범한 최순실 특검팀은 ‘야당 추천’을 문제삼긴커녕 ‘대통령이 수사 대상인 경우 대통령이 특검을 임명하는 것도 문제’라고 본 것입니다. 채 상병 특검법 역시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겨누고 있습니다. 최순실 특검팀은 이렇게 지적합니다. “특검은 국가공무원법이나 지방공무원법에 의한 공무원이 아니고,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사인에 불과하다. 특검제도의 존재 근거인 이해충돌 회피의 원칙에 비추어 대통령이 아닌 제3의 헌법기관으로 하여금 특별검사를 임명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②특검은 보충적이고 예외적으로만 도입되어야 하는가?
윤 대통령은 재의요구서에서 “특검 제도는 본질적으로 수사기관의 실체적 진실 규명 의지가 부족한 경우 등 수사가 미진해 국민적 의혹이 해소되지 못했거나, 수사의 공정성·객관성이 의심되는 사안에 한정해 보충적·예외적으로 도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도 주장합니다. 채 상병 순직 사건은 이미 경찰이 1차 수사를 마쳤고, ‘외압 의혹’ 등에 대해서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찰과 공수처가 수사하고 있고 검찰의 후속 수사가 예정되어 있는 사건에 대해 특별검사를 도입한 전례는 없다”는 게 윤 대통령의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2017년의 윤석열 수사팀장이라면, 간명하게 답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국정농단 특검법 해설’ 13쪽에선 “대통령의 가족·친인척·법무부장관·검찰총장·대통령의 비서진과 각료 및 주요한 고위 공직자 등 그 본인과 그의 가족 및 친인척들의 사건을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고 그 업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 또는 그들의 영향권 안에 있는 검사가 처리하는 것은 사실상 대통령이나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이 자기의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대통령이나 그 가족의 사건을 대통령이 임명한 검사 등이 수사하는 건 대통령이 자기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특검팀은 덧붙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상의 검사의 양심이나 정의감, 도덕성과 같은 주관적인 요소에만 의지하여 사건의 공정한 처리를 기대하는 것은 제도의 속성과 그 작동 현실을 도외시한 태도이다.” 현직 대통령이나 고위 공직자가 연루된 사건은, 반드시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는 취지겠지요?

국정농단 특검법 해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③언론브리핑은 여론재판의 수단인가?
윤 대통령은 재의요구서에서 특검의 ‘실시간 언론 브리핑’ 권한에 대해서도 문제 삼습니다. 다음과 같은 주장입니다. “실시간 언론 브리핑 과정에서 실질적인 피의사실이 공개됨으로 인해 수사 대상자의 명예가 훼손되거나 사생활이 침해될 수 있고, 특별검사 제도가 정략적 차원에서 정치적 여론재판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습니다.”
이는 ‘국정농단 특검법 해설’ 95쪽에서 최순실 특검팀이 자랑하는 ‘사건의 대국민보고권’과 정면충돌합니다. 특검팀의 주장을 읽어볼까요. “특별검사가 처리하는 사건은 기본적으로 국민들이 의혹을 가지고 있어 공정하게 처리됨으로써 의혹을 해소할 것을 기대하는 것인데, 이러한 의혹 사건의 수사 진행 상황을 공표할 수 없게 하는 것은 특검 수사의 공정성을 국민이 알 수 없게 하는 것이므로 타당하지 않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이미 형법상의 피의사실 공표죄로 규율되고 있으므로 이러한 것을 애매하게 정할 이유가 없다.”
국민의 알 권리를 넘어, 특검팀이 논거로 제시하는 것은 권력형 범죄를 수사하는 특검의 성격상 수사 방해 가능성이 늘 존재한단 사실입니다. 특검팀은 책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행위와 방법으로 특검의 수사를 방해하는지는 언제나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최순실 특검팀은 준비기간 20일, 수사기간 70일 동안 80여 차례 언론 브리핑을 실시했다고 자랑합니다. “국정농단 특검의 경우 특검의 명에 의해 대변인을 맡은 특검보가 매일매일 수사진행 상황에 대해 언론 브리핑을 실시해 국민 모두가 특검의 수사상황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해 수사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함과 동시에 특검 수사에 대한 국민 대다수의 신뢰를 확보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채 상병 순직 사건과 외압 의혹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최순실 특검 당시에 필적합니다. 사건을 은폐하려는 ‘권력’의 의지는 당시를 넘어서는 듯 합니다. 마침 ‘채 상병 특검법 발의’를 공언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취임으로, 여권 내부 그리고 여야 간에 대안 토론이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2017년의 윤석열 수사팀장이 2024년의 윤석열 대통령을 흔들어 깨울 수 있을까요.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한겨레 2024.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