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프를 창조한 사나이

2007. 10. 26. 08:18C.E.O 경영 자료

하야카와 도쿠지(早川德次).

그의 이름은 샤프펜슬을 발명한 이로 널리 알려져 있고, 기업가로서는 하야카와전기공업(지금의 SHARP)을 설립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1893년 11월생으로 1980년 6월에 죽을 때까지 일본의 발명가들에게 입지전적인 인물(일본의 에디슨이라는 호칭으로 불릴 정도)로 평가 받았으며 오늘날 일본의 첨단기술 분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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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본의 많은 자수성가형 기업인들 중에서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는데요. 집안이 불우하여 남의 집에 양자로 들어갔지만 그 집안에서도 그렇게 좋은 생활을 보내지 못했던 하야카와는 1911년 18살 때 허리 벨트에 구멍을 뚫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형태의 버클을 발명합니다.

이때를 기회로 잡은 그는 독립하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이 양자였고 진짜 부모가 이미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때 친형을 만나게 되어 그와 함께 ‘하야카와형제사’를 설립했는데 '샤프(SHARP)’로 개명된 그룹을 가지고 있는 지금도 이 하야카와형제사가 설립한 날을 창립기념일로 쓰고 있다고 합니다.

하야카와 도쿠지는 제품개발을, 형인 마사시가 판매를 담당하면서 독립자본 50엔 중 40엔을 빚으로 해서 시작한 사업이라고 합니다. 그가 발명한 구멍을 뚫지 않고 쓰는 허리벨트는 히트상품이 되어 사업은 확대되었고 그의 발명품에 주목이 쏠렸을 때 그는 샤프펜슬의 특허를 출원하게 됩니다.

사실 그가 발명하기 이전에 이미 독립된 형태의 샤프펜슬이 있었지만 그것은 망가지기 쉬운 형태의 것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 원형을 하야카와는 독자적으로 개량, 연구하여 실용성이 높은 지금의 샤프펜슬의 원형인 ‘하야카와식 조출연필(早川式繰出鉛筆)’을 1915년, 특허를 냅니다.

처음에는 프로펠링펜슬로, 이후 에버펜슬, 레디펜슬이라는 이름을 거쳐서 샤프펜슬(약칭 샤프)로 정착되었고 현재는 중고생들이 사용하는 필기구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는데, 당시에는 '일본 고전복장과 어울리지 않는다', '금속제품이라서 차가운 느낌이 싫다'는 등의 이유로 평이 좋지 않아 거의 팔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꾸준히 긴자의 문방구점에 시제품을 놓아두는 형태로 정성을 기울여 선전을 해갔고, 의외로 이 제품이 미국지역에서 인정받아 팔리면서 일본에서도 팔리는 시장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대량생산형태로까지 발전하게 된 회사의 규모를 위해서 당시로서는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분리작업형태의 제조과정을 도입해서 화제를 모은 하야카와형제사는 1923년에 들어서 종업원이 200명을 넘는 회사로 사세를 확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22년 과로 때문에 하야카와 도쿠지는 쓰러지고 다행히 치료를 받아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이듬해인 1923년, 관동대지진이 일어나 아내와 자식 둘을 잃고 맙니다. 공장도 다 타버려서 남아있는 빚을 값기 위해서 그는 샤프펜슬의 특허를 ‘일본문방구’에 매각하고 거의 알거지와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하야카와 도쿠지는 마음을 다잡고 오오사카로 이사, 1924년에 하야카와금속공업연구소를 설립, 지금의 SHARP 그룹의 전신을 만들어 냅니다.

처음에는 일본문방구의 하청업을 주로 했지만 오오사카에 들어온 미국제 라디오를 보고 일본에서도 라디오가 퍼질 것이라는 것을 예감한 하야카와는 라디오의 제품화를 위해서 연구를 시작, 1925년에는 일본에서 최초로 자국산 라디오를 개발하는데 성공 합니다. 같은 해 6월 1일부터 시작된 오오사카 라디오방송과 더불어 이 라디오는 ‘샤프’라는 브랜드명을 달고서 불티나게 팔려나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1929년에 진공관을 이용한 라디오를 개발, 판매하기 시작한 그는 라디오의 보급과 실적을 인정받아 많은 금액을 투자받을 수 있었고 하야카와전기공업으로 1942년에 개명, 새로운 출발을 꿈꾸게 됩니다.

그러나 2차대전 후 물품부족으로 경영이 악화되어 위기를 맞은 그는 자금확보를 위해서 1949년 주식을 공개하지만 오히려 1950년에는 큰 적자를 내어 도산의 위치게 봉착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한국에서 벌어진 6.25 전쟁으로 특수가 발생. 간신히 회사를 다시 세울 수 있게 된 이후 그는 다각적인 방향의 상품을 개발하여 자신의 회사가 주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존립할 수 있게하는 것에 만전을 기합니다.

그 결과 1951년 일본 최초로 TV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하고, 1962년 일본 최초 전자 레인지, 1966년 세계 최초 집적회로 기반의 전자계산기를 발명하는 등 오늘날 전자 왕국 일본의 초석을 다지며 종합 가전 메이커로 성장해 나갑니다.

1970년 회장으로서 직업전선에서 물러선 그는 하야카와공업을 SHARP로 개명하고 1971년 오오사카문화상을 수상합니다.

그의 발명좌우명은 ‘다른 사람이 따라 하고 싶은 것을 만들어라’로서 언제나 독자적인 기술개발에 열심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 자신이 많은 고생을 하면서 성장했던 경험 때문에 사업의 가장 첫번째 목표는 사회에 대한 봉사라는 이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전후에는 실명 장애자를 위한 회사만을 따로 설립(지금의 샤프특선공업)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근로자를 위해서 보육원 운영을 직접 했고 그곳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의 이념이 통한 형태의 복지관이 1962년 오오사카에 설립되었는데, 이곳은 그의 생각에 따라 오오사카 내에서도 2곳 밖에 없는 점자도서관이 세워져 있는 곳 중 하나라고 합니다.

샤프 주식회사(SHARP CORPORATION)는 현재 액정부분을 비롯하여 휴대전화, 컴퓨터, 가전, 워드프로세서, 전자사전 등의 분야에 있어서 독창적인 시장개척을 한 업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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