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or 패션

2008. 9. 29. 09:00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1. LA에서 열린 프라다 스커트 전시회 '웨이스트 다운' 작품.
2,3. 일본의 애니메이션 아티스트 다카시 무라카미와 루이비통의 수석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가 함께 작업한 루이비통 모노그램 멀티컬러 앞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
4. 문화예술 전시공간으로 꾸민 쌈지 매장에 아티스트 박진우 씨의 작품이 제품과 함께 선보였다.
5. 데미안 허스트가 작업한 프라다 뉴욕 소호매장의 월페이퍼

패션과 아트의 만남이 21세기 패션계 최고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패션과 아트의 만남은 패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계속돼 온 것으로 새삼스러울 게 없다.

하지만 최근 들어 만남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패션과 아트의 관계가 과거 어느 때보다 긴밀해진 것이다.

오죽하면 아트와 패션의 '애정행각' 또는 '스캔들'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 아티스트가 만드는 명품 - 명품이 창의력을 입다

패션과 아트의 관계는 과거로부터 명품 브랜드와 가장 밀접하다.

샤넬이 당대 유명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기능주의 건축과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받은 실루엣 의상을, 이브생 로랑이 몬드리안의 그림 속 격자무늬 드레스를 선보인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전에 없던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홍익대 패션디자인학과 간호섭 교수는 "과거엔 패션 디자이너들이 예술작품으로부터 모티프나 색상 등을 차용해 오는 정도였다면 최근엔 패션을 통째로 아티스트에게 맡겨버리는 형태가 됐다"고 말했다.

처음 아티스트와 함께 공동 작업을 시작한 것은 루이비통이었다. 루이비통은 2001년 일본의 애니메이션 아티스트 다카시 무라카미에게 모노그램 멀티컬러, 모노그램 체리가방 컬렉션 제작을 의뢰했다.

무라카미와의 협업은 미술과 패션이 멋진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훌륭하게 증명한 예로 손꼽히고 있다. 이밖에도 야누스카 헴벨과 함께 만든 필기구 컬렉션, 일러스트 아티스트와 함께 만든 여행 스크랩 북, 제프리 플비마리 스카프, 스테판 스프라우스의 모노그램 그래피티 가방 컬렉션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들이 있다.

'아이러브 모노그램 라인', '체리백' 등 아티스트와 공동작업을 통해 태어난 형형색색의 독특한 디자인의 제품들은 모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변신으로 루이비통은 패션업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을 뿐 아니라, 엄청난 매출증대와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명품업체 중 선두의 위치를 지키게 된다.

루이비통을 시작으로 명품 브랜드들의 아트와의 연애행각이 점차 두드러지고 있다.

프라다는 2008 봄/여름 컬렉션에서 미국계 아시아인인 젊은 일러스트레이터 제임스 진과 함께 매우 독특한 일러스트레이션이 프린트 된 의상과 백, 슈즈를 선보였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진에게 여성이 꿈꿀 수 있는 자유로운 모든 것을 표현해 달라고 주문했다.

2005년 가을/겨울 시즌에는 독일, 일본, 미국 등 세계 각지의 젊고 재능 있는 그래피티 아티스트들과 함께 ‘Unspoken Dialogue’라는 티셔츠를 제작했다. 프라다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프랑스 출신 맘보, HNT, 미국 브룩클린 출신의 비니 레이 등 촉망 받는 젊은 예술가들과 공동 작업을 진행했다. 아티스트의 관점에서 프라다 브랜드를 재해석하게 했다는 게 프라다 관계자의 설명이다.

전통을 고수하는 고상한 명품 브랜드의 취향이 강렬하고 도발적인 현대예술과 만나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명품 브랜드들은 개성이 강한 소비자들의 욕구에 부합하고 있다.

'창조'에 목마른 브랜드들은 예술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밖에 없다. 아티스트와 공동 작업 외에 예술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제품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많이 쏟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럭셔리 브랜드 치고 예술작품과의 접목을 시도하지 않는 곳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르메스는 20세기 기하추상 회화의 대가 조셉 알버스의 작품을 그대로 재현한 '사각형에 대한 경의'라는 실크 스카프를 출시했다.

질 샌더는 마크 로스코의 회화에서 영감을 받은 의상을, 돌체&가바나는 비주얼 아티스트 줄리앙 슈나벨로부터 영감을 받은 의상을 출시해 눈길을 끌었다. 또, 셀린느는 일본의 사진작가 미카 니나와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강렬한 색상의 프린트를 입힌 제품을, 마크 제이콥스는 들로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화려한 프린트를 의상에 도입했다.

간 교수는 "오늘날 럭셔리 브랜드는 예술과 관계를 맺지 않고는 생명력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다.

6. 루이비통의 모노그램 체리백
7. 무라카미가 작업한 루이비통의 '체리 블로섬' 가방
8,10 쌈지 최정화 아트티셔츠 라인
9.아티스트 HNT가 작업한 프라다의 'Unspoken Dialogue' 티셔츠

■ 대중 브랜드도 아트와의 결합

최근 아트-패션의 관계가 보이는 또 다른 특징은 전통적으로 최고급 브랜드에 한정되었던 이들 관계가 대중 브랜드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갭은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들이 디자인한 '갭 아티스트 에디션스 티셔츠'를 한정 판매하고 있다. H&M, 자라 등도 아티스트와의 공동 작업으로 만든 제품을 한정 판매하고 있다.

캐주얼웨어 55DSL은 2008년 겨울시즌부터 세계 5명의 톱 아티스트를 선정해 그들이 직접 디자인한 독창적인 그래픽 티셔츠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를 시작으로 매 시즌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제작한 옷을 공급할 예정이다.

라코스테는 지난 7월 1일, 브랜드 탄생 75주년 기념으로 12명의 유명 아티스트들이 작업한 티셔츠를 전 세계적으로 4,000세트 한정 판매하는 '비저네어(Visuraire)' 이벤트를 실시했다.

국내의 경우 쌈지는 매 시즌마다 낸시 랭, 최정화, 컴퍼니 등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아티스트들과 공동 작업을 통해 차별화 된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유럽에서 활동 중인 아티스트 컴퍼니는 올해 쌈지와 함께 반찬 백, 비빔 백, 국수 신발 등의 아트 상품라인을 출시했다. 최정화, 이다, 노준, 한만영 등 19명의 작가들이 특유의 작업세계를 티셔츠에 녹인 '아트티셔츠 라인'도 매 시즌마다 내놓고 있다.

이제 아트와 결합한 패션은 소수의 계층만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쌈지의 한 관계자는 "21세기엔 상품에 예술가들의 작품을 접목시킨 제품을 소비하는 것을 선호하는 '아티젠(Artygen)'이 등장해 초고가의 브랜드는 물론 대중 브랜드들도 다양한 아트상품을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 예술과의 결합, 제품에서 매장 꾸미기, 영화제작에까지 형태도 다각화

과거에 패션-아트의 만남이 주로 제품에 한정되었다면 최근 들어 협업의 범위가 제품에서 패션 매장, 패션 회사의 영화제작, 전시회 등으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

요즘 패션 매장에 가보면 '갤러리'에 왔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에비뉴엘 매장은 국내 최초로 매월 전체 매장을 갤러리로 이용해 유명 작가들의 아트 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오픈 이래 세이지 후지시로, 로버트 실버스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34회 열었다. 특히, 올해 3월에는 전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동시대 작가들의 대표작들을 에비뉴엘 전관에 걸쳐 선보여 화제가 됐다.

프라다는 또, 2001년을 시작으로 세계적인 건축가와 함께 진행하는 '에피센터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매장은 이제 쇼핑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져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취지 하에 기획됐다.

이 중, 뉴욕 소호매장에서 오픈 이래 계속해온 것이 '월페이퍼' 작업이다. 소호매장은 거대한 벽면의 벽지를 수시로 교체할 수 있도록 건축돼 매년 혹은 매시즌 다양한 아티스트와 함께 벽면 작업을 시행하고 있다. 최근엔 데미안 허스트의 월페이퍼가 선보여 많은 눈길을 끌었다.

쌈지 매장은 지난 7월, 롯데백화점 영플라자, 대전, 광주, 안양점에 동시 입점해 낸시랭, 더잭, 이완, 강영민 등의 아티스트 작품들을 전시하며 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패션업체는 아트와 결합한 매장뿐 아니라 복합문화단지나 건물을 짓고 있다.

프라다는 올해 4월, 이탈리아 밀라노 남부 지역에 있는 공장 지대를 매입해 프라다의 새로운 아트 센터와 아트 단지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이 프로젝트는 세계적인 건축가 렘 쿨하스와 함께 진행한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2001년 건축가 타다오 안도에게 패션쇼, 쇼룸 프리젠테이션, 미술 설치까지 가능한 아르마니 극장 설계를 부탁했다.

패션과 아트의 결합 범위가 넓어져 영화제작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프라다는 2008년 봄/여름 패션쇼에서 매우 독특한 프린트의 일러스트레이션이 프린트 되거나 패치되는 의상을 선보였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제임스 진에게 원하는 컨셉트의 작품을 주문했고, 이에 그가 만들어낸 작품은 의상, 백, 슈즈는 물론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까지 시즌 내내 이슈가 됐다.

패션업체의 예술가 후원도 보다 적극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에르메스 재단의 미술상이다. 에르메스는 한국 문화예술계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취지 하에 2000년부터 에르메스 미술상을 제정해 역량 있는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있다.

패션이 예술작품처럼 전시회를 갖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올해 초 까르띠에와 티파니가 예술의 전당과 덕수궁 미술관에서 각각 전시회를 열었고, 에르메스는 올 여름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에서 비디오 아트 전시회를 열었다.

프라다는 유명한 크리에이티브 디자인 그룹 ‘2X4’와 프라다 스커트 전시회 ‘웨이스트 다운(Waist Down)’을 진행했다. 여성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스커트'에만 촛점을 맞춰 진행된 이 전시회는 2005년 중국 상하이를 시작으로 2006년 일본 도쿄, 2007년 뉴욕과 LA에서 열렸다.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2년 동안 이동 전시회를 기획했다. 건축가 자하 하이드(Zaha Hadid)가 건축한 이동 갤러리가 2년 동안 홍콩, 도쿄, 뉴욕, 로스엔젤레스, 런던, 모스크바, 파리를 순회한다. 하디드 이동 갤러리 컨셉트는 조개의 유기적인 모양으로, 샤넬의 유명한 누비 가방에서도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러시아 가스도입  (0) 2008.09.29
소규묘창업 현실  (0) 2008.09.29
현대건축의 단면  (0) 2008.09.28
고가미술품 세금폭탄  (0) 2008.09.28
지하보도 썰렁  (0) 2008.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