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10. 08:39ㆍ지구촌 소식
미국 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 민주당의 상하원 대승의 배경은 무엇일까.
선거 결과는 미국 선거지도를 뒤바꾼 오바마의 압승이지만 격전지 곳곳의 박빙승부, 전체 득표율면에서 여전히 미국은 민주·공화의 만만찮은 세력균형을 보여주고 있다. 선거 구호로 ‘변화’를 외친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는 ‘국가 우선’을 외친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를 이겼다. 흑인 대통령과 민주당 전성시대는 ‘공화당 시대’에 이은 주기적 변화의 결과일 뿐일까, 아니면 미국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보여주는 것일까. 10개의 키워드로 2008 미국 대통령 선거의 배경과 의미를 분석해본다.
◆ 변화
이번 미국 대선은 ‘변화’+‘경제’선거였다. 오바마는 선거유세 기간 내내 ‘변화’라는 단어를 내세워 유권자들에게 분명한 이미지를 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변화’ 구호만으로는 부족했다. 대선 결과를 가른것은 바로 경제였다.
오바마는 경선에서 ‘변화’라는 구호로 워싱턴의 구정치를 비판하며 새로운 미국을 약속했다. 공화당 8년 동안 수렁에 빠진 이라크전, 경제 상황 악화에 실망한 유권자들을 파고들기 위한 것이었지만 정치 신인인 오바마가당내 경쟁자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 차별화될 수 있는 구호이기도 했다. 변화 구호는 민주당 내 경선에서 효과를 발휘했고 실제 11·4선거에서 광범한 젊은 유권자의 표심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선거 출구조사 결과 이번 대선의 승인은 9월 말 터진 금융위기와 경제위기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9월 중순까지는 ‘변화’ 구호가 호소력을 얻었지만 선거 직전 3~4주 동안 유권자의 관심은 경제였다. 3~4주간의 여론조사 동향을 보면 오바마는 매케인보다 경제해결 능력면에서 더 신뢰를 얻었다. 오바마 후보 개인뿐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경제 문제에 관한 한 유권자의 더 많은 신뢰를 얻었다.
특히 10월 주가폭락 이후 연기금에 넣어둔 자산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퇴직연금생활자인 노년층, 그리고 고소득층의 표심도 집권당을 외면했다. 금융위기 초기 ‘경제기초는 튼튼하다’고 말했던 매케인의 발언도 패착이었다.
◆ 민주당 기반 확대
미국에서 민주당 지지땅(블루 스테이츠)은 태평양·대서양 해안지대 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공화당은 미국의 중심부 전부, 남부의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민주당 사람들은 비행기로 양쪽을 넘어다니기 때문에 진짜 미국땅은 모른다는 유머가 있을 정도다. 그런 공화당의 아성(레드 스테이츠)이 이번 선거에서 산산조각 났다. 민주당은 플로리다·노스캐롤라이나를 차지함으로써 대서양 해안을 거의 장악했고 오대호지역, 북서부, 그리고 뉴멕시코·콜로라도 같은 중부지대도 차지했다. 선거인단 지도만 보면 레드 스테이츠의 축소는 처량할 정도다. 공화당은 이제 전통적인 남부(Deep South), 대평원지대, 애팔래치아 산악지대로 움츠러들었다.
◆ 인구구성 대변화
이번 대선은 미국 인구구성의 대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유권자의 8%를 차지하는 히스패닉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오바마 승리를 이끈 연합군은 젊은 유권자, 히스패닉, 흑인, 그리고 소수계인종, 대도시지역의 고등교육을 받은 백인이었다. 오바마가 2004년 박빙으로 패한 케리와 달리 이번에 압승한 것은 흑인·히스패닉·청년 지지라는 것이 출구조사 분석이다. 히스패닉의 67%가 오바마를 지지했으며, 이는 매케인(31%)보다 두 배로 많은 수치다.
오바마가 자유무역협정(FTA)를 반대하고 해외로 공장을 옮기는 미국 기업을 비판하며 득표에 노력을 기울였던 노동조합 가입 유권자들에서도 그의 지지율은 60%였다.
매케인이 앞섰던 유권자는 백인남성(55%), 65세 이상 노년층(53%) 밖에 없었다. 연령별로 18~29세에서는 66%가 오바마를 지지했다. 매케인(32%) 득표율보다 두 배로 높았다. 특히 처음 투표하는 유권자 사이에서 오바마는 68%를 얻어 매케인(31%)을 단연 압도했다.
◆ 슈퍼 정당 등장
민주당은 백악관은 물론이고 상하원에서 확고한 다수의석을 차지해 ‘슈퍼 정당’이 됐다. 2004년 선거에선 공화당이 ‘슈퍼 정당’이었다.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 의회 다수당 재확보를 이끌어냈던 공화당의 전략가 칼 로브는 ‘영구적 공화당 전성시대’가 왔다고 선언했었다. 4년 만에 슈퍼 공화당은 이제 그때보다 훨씬 강력한 슈퍼슈퍼 민주당으로 바뀌었다.
민주당은 이제 상하원에서 거침없이 자기들의 생각대로 입법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민주당이 선거지도를 바꿨다고 환호하고 공화당이 경악하고 있는 것은 수십년 동안 공화당의 아성이었던 주들이 한꺼번에 민주당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버지니아·오하이오·플로리다·노스캐롤라이나·콜로라도·네바다·아이오와·인디애나·뉴멕시코 등 지난 대선에서 공화당을 지지한 9개 주가 모두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예컨대 버지니아는 1964년 이후 민주당이 단 한번도 이긴 적이 없는 곳이다.
◆ 브래들리 효과
흑인 후보를 선택하지 않으면 ‘인종주의자’로 몰릴까봐 응답을 피하거나 진짜 지지 후보를 감추기 때문에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개표 결과에 큰 차이가 난다는 ‘브래들리 효과’는 이번 대선으로 의미를 잃게 됐다. 대신 흑인표의 결집이 오바마의 중요한 승리 요인이었다. 막판 여론조사 예측과 실제 득표율에서 1~2%포인트 정도의 차이가 났고 특히 오하이오·버지니아 같은 격전지의 실제 개표 결과는 여론조사 예측과 부분적으로 달랐지만 전체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었다.
선거 직후 출구조사결과 흑인들의 96%가 오바마를 찍었다. 미국 유권자의 13%를 차지하는 흑인들의 오바마 쏠림현상은 백인들의 매케인 지지 우세를 상쇄할 만했다. 전체 유권자의 75%를 차지하는 백인들의 경우 55%가 매케인을 지지하고 43%가 오바마를 지지해 격차는 12%포인트였다. 출구조사에서 ‘인종이 투표의 중요 기준’이라고 답한 유권자는 10%였지만 이들은 대부분 오바마를 찍었다.
◆ 종교
2004년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몰표를 몰아준 것은 이른바 ‘복음주의’ 신자로 불리는 보수 기독교층이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종교 변수는 여전히 있었다. 전체 유권자의 19%를 차지하는 백인 가톨릭은 오바마 47% 대 매케인 53%로 큰 격차가 없었지만 전체 유권자의 23%를 차지하는 백인 복음주의 개신교 신자의 경우 매케인에게 압도적 지지(74%)를 보냈다.
개신교 전체적으로도 매케인(54%)이 오바마(45%)를 눌렀다. 전체 개신교 신자 중 흑인을 포함한 유색인종 신자들은 압도적으로 오바마를 지지했지만 백인 개신교 신자들의 경우 34%만 오바마를 지지하고 65%는 매케인을 지지했다. 이는 백인 전체 유권자의 55%가 매케인을 지지하고 43%가 오바마를 지지한 것과 비교하면 현격한 격차로, 종교변수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얘기다.
◆ 선거자금
‘부자 정당’ 이미지의 공화당은 선거자금면에서도 민주당에 뒤졌다. 오바마의 선거자금 모금액수는 6억3917만4281달러였던 반면 매케인은 절반수준인 3억6016만7823억이었다. 특히 선거 막판 오바마는 넘치는 선거자금으로 미국 주요 텔레비전 방송의 황금시간대에 30분 동안 유료광고를 내보냈지만, 매케인은 토요일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가 스스로를 희화화해가며 유권자의 시선을 끌려고 했었다.
전국 수준의 TV광고비는 오바마가 2억9276만달러였고 매케인은 1억3172만달러였다. 이번 선거 최대 승부처였던 오하이오, 플로리다, 버지니아, 펜실베이니아 등에서 오바마는 단연 앞섰다. 오하이오의 득표율 차이는 오바마가 매케인에 비해 4%포인트 앞섰지만 광고비용면에서는 10배나 차이가 났다. 한마디로 전파전쟁에서 공화당은 완전히 패배했다. 선거자금에 이처럼 차이가 난 것은 오바마의 인터넷 모금이 효력을 발휘하기도 했지만 오바마가 공영선거자금을 거절하고 무제한 선거자금 모금을 한 데 반해 매케인은 제도에 묶였기 때문이다.
◆ 페일린 효과
세라 페일린은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한동안 바람을 몰고 다닐 정도였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부정적 요소였음이 드러났다.
매케인이 승부수로 선택한 페일린에 대해 선거 당일 출구조사 응답자들의 60%가 ‘자격 없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한 것. 정책 현안에 대한 미숙한 답변, 알래스카 주지사 재직 시 여러 문제점에 대한 언론의 집중 공격이 중간 성향 유권자들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여성 후보를 선택함으로써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지지했던 민주당 성향 여성표를 끌어당기려는 전략도 실패했다.
출구조사 결과 남성 투표자 사이에선 오바마와 매케인의 득표율(49%)이 똑같았던 반면 여성 투표자는 55%가 오바마를 찍었다. 금융위기 등 경제 문제에 여성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이 “매케인이 페일린을 부통령 후보로 선택한 것에 실망해 오바마를 지지하기로 했다”고 밝혀 큰 파장을 일으켰다.
◆ 공화당 재기 가능성
지금과 같은 공화당의 절망적인 상황을 4년 전 민주당도 비슷하게 겪었다. 미국 정치사는 양당의 부침을 주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의 대승과 공화당의 패배는 기본적으로 4년 전 부시 대통령이 이겼던 주들에서 공화당이 근소하게 패했기 때문이다.
승자 독식의 선거인단 선거 방식 때문에 50개주와 수도 워싱턴에서 치러지는 51개 선거에서 각각 한 표라도 이기는 후보는 각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하게 된다.(네브래스카·메인주의 경우에만 각각 3석·2석을 하원선거구별 승자가 나눠가짐) 그래서 실제 오바마와 매케인의 전국 득표율은 53% 대 46%였지만 선거인단은 349명 대 163명으로 큰 격차가 났던 것이다. 실제 인디애나주의 경우 오바마는 2만6163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이겼고 득표율상으로는 모두 49%였다. 오바마는 노스캐롤라이나에서 0.4%포인트, 플로리다에서는 2.5%포인트 차이로 매케인을 힘들게 이겼다.
따라서 역대 대통령 사상 가장 낮은 지지율의 부시 대통령 그늘에서 고전해야 했던 매케인은 차라리 공화당의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 세계적 관심
미국 대통령 선거는 전 세계가 함께 치른 선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북한까지 오바마를 지지할 정도였다. 부시 대통령과 코드를 맞춰온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해 이란,팔레스타인, 베네수엘라 등 이른바 반미 성향 국가 지도자들도 오바마의 당선을 축하하는 반응을 나타냈다.
이민자 사회인 미국에서 유권자들은 세계인의 인식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인들은 악화된 세계 여론에 당혹스러워했다. 선거 취재 과정에서 만났던 미국 젊은이들은 ‘미국의 이미지를 망친 부시 행정부’에 흥분했다. 오바마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 ‘세계와 보다 협력하는 미국’을 내걸었다.
워싱턴 = 최형두 특파원 choihd@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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