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고수 삶의지혜

2008. 11. 10. 17:40생활의 지혜



성공|인생 고수들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

 

 

 

당신은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한 작가가 있었습니다.
화창한 금요일 아침, 그의 친구들이 찾아와 주말에 바람을 쐬러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새 작품을 쓰느라 시간이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일요일 저녁 친구들이 돌아왔을 때 작가는 일을 많이 해서 기분이 무척 좋다며 뿌듯해 했습니다.
친구들은 작품이 많이 진척 되었으리라 생각하고 원고를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원고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금요일 아침에 본 미완성 문장에 쉼표가 찍힌 마지막 줄에서 한 줄도 더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느냐고 친구들이 묻자 작가는 이렇게 대답 했습니다.
“어제 쉼표를 쌍반점으로 바꿨다가 오늘 다시 쉼표로 바꿨다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알겠나?”

글쓰기에서처럼 인생에서도 작은 일이 중요합니다.


인생이란 내가 아무리 크고 거창한 뜻을 품어도 결국 날마다 일어나는 작고 사소한 일들로 채워지고 끝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런 작은 일들을 무시하면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을 프랑스의 작가 플로베르도 알고 있었나 봅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1821~1880년) 사물이나 인간의 감정을 얼마나 세밀하고 정확하게 묘사할수 있는지 알고 싶은가? 그럼 플로베르의 소설을 읽으면 된다. 파리 대학에 다니던 중 히스테리에 걸린 것이 계기가 되어 문학에 전념했다. 독특한 문체와 긴밀한 구성을 가진 <보부아르 부인>을 발표해 프랑스 당대 최고 작가라는 명성을 얻었다. <감정 교육>, <세 가지 이야기> 등의 작품을 남겼다.




 

 


당신도 습관을 경계하고 있습니까?

유명한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짓궂은 친구들이 여자가 있는 퇴폐적인 술자리에 그를 대했습니다.
철학자는 친구들과 어울려 밤새도록 논 뒤 즐거웠다고 말하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다음 날 그 친구들이 철학자를 또다시 술자리에 초대 했습니다.
그러자 철학자는 이렇게 말하면서 거절했습니다.
“그런 일을 한번하면 철학자라고 할수있지만, 두번하면 변태가 된다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남의 비난을 받을 만한 일을 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두번 세번 계속된다면 본인이 좋아서 한다고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는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볼테르(Voltaire·1694~1778년) 프랑스인이면서 프랑스에서는 박해를 받았고, 그래서 늘 영국을 동경한 불행한 지성인이다. 비극 <오이디푸스>가 성공해 작가로 이름을 얻은 뒤부터 ‘볼테르’라는 명으로 활동했다. 어느 귀족과의 다툼으로 부당하게 옥에 갇혔으나 외국으로 망명한다는 조건으로 석방되었다. 영국을 이상화하고 프랑스 사회를 비판한 <철학 서간> 외에 <풍습론>, <캉디드> 등의 작품이 있다.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배려하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기차를 타다가 신발 한짝을 승강장에 떨어뜨렸습니다.
기차는 이미 움직이고 있어서 신발을 주울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신발을 떨어뜨린 사람은 자신이 신고 있던 남은 신발 한 짝을 마저 벗어 떨어진 신발이 있는곳으로

던졌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그 이유를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누군가 가난한 사람이 저걸 줍는다면 짝이 맞아야 신을 것 아닙니까?” 사람들은 대부분 한짝밖에 남지 않아

쓸모없게 된 신발을 보며 자기형편을 먼저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신발 한짝만 주울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간디처럼 말이지요. 

모한다스 간디(Mohandas Gandhi·1869~1948년)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마하트마’, 즉 ‘위대한 영혼’이라고 부른 인도의 독립 운동가다. 영국 런던 유학 후 인도로 돌아와 변호사로 일했다. 1893년 남아프리카에서 인도인이 백인에게 박해받는 것을 보고 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인도로 돌아와서도 납세거부와 상품불매 같은 비폭력 저항 운동을 펼쳤으며, 여러차례 투옥됐다.




 

 

 

 


당신은 떠날 날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어떤 시인이 있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인정받아 남부러울것 없는 명성과 부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자신의 침대 옆에 그림 한점을 늘 걸어놓았습니다.
흰옷을 입고 두손을 앞으로 모은채 시신처럼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그 그림을 걸어놓은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살기 위해서입니다.” 영국의 시인 존 던의 이야기입니다.
참 비관적인 사람이라고요? 다르게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유한함에 대해 깊이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살아 있음의 소중함과 기쁨은 더 커질수도 있으니까요. 

존 던(John Donne·1572~1631년) “모든 사람은 섬이 아니다”라는 시구절로 유명한 영국의 시인. 1591년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해 법률학을 공부했으나 두번에 걸쳐 스페인원정에 참여하면서 스페인문학을 비롯한 각국의 문학에 흥미를 느껴 풍자시와 서정시를 쓰기 시작했다. 특히 형이상학적이고 종교적인 시를 많이 남겼는데, 대표작으로는 <노래와 소네트>, <자랑이 될 수 없는 죽음> 등이 있다.



 

 

 


당신은 부당한 비난에 어떻게 대응하십니까?

어떤 사람이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남자가 나타나 그 앞에서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설교를 하던 사람은 남자가 욕을 끝낼 때까지 잠자코 듣기만 했습니다.
마침내 남자가 욕을 멈추자 설교하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선물을 주었는데 당신이 받지 않았다면 그것은 당신의 것입니까,

아니면 선물을 준 사람의 것입니까?” 남자가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당연히 선물을 준 사람의 것이겠지.” 그러자 설교를 하던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당신의 욕을 받지 않을테니 당신이 한 욕은 모두 다시 가져가시오.” 살다 보면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 때문에 상처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럴때는 대부분 혼자 괴로워하거나 비난한 사람에게 화를 내지요.
그러나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내가 받지 않은 모욕은 나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1483~1546년) 개신교 신자라면 무척 고맙게 생각해야 할 종교개혁의 주인공이다. 비텐베르크 대학의 신학교수로 재직하던 1517년, 로마 교황청이 성 베드로 대성당 건립을 위해 면죄부를 판매하자 유명한 ‘95개 논제’를 발표해 교황청과 대립했는데 이것이 종교개혁의 발단이 됐다. 그 일로 추방당한 루터는 숨어살면서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 독일어를 통일하는데 기여했다.




 

당신에게는 진실을 말해줄 친구가 있습니까?

함께 대화하기를 즐기던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의견이 다를때도 있었고 같을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서로에게 좋은 대화 상대였습니다.
하루는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돈을 빌렸습니다.
그 뒤 돈을 빌려준 친구는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돈을 빌린 친구가 자기가 내놓는 의견마다 무조건 동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친구는 어떤 문제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전에는 그 문제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갖고 있었지만, 돈을 빌린 친구가 그날은 돈을 빌려준 친구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이었습니다.
돈을 빌려준 친구가 말했습니다.
“이보게 친구, 돈을 빨리 갚든지 아니면 제발 내 의견에 반대를 하게.” 나의 잘못된 생각이나 행동까지도 감싸주고 덮어주는 사람을 친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친구는 친구가 아니라 공범에 가깝지요.
자기 생각에 반대하는 친구를 소중하게 생각한 영국의 작가 조지프 애디슨의 이야기입니다. 

조지프 애디슨(Joseph Addison·1672~1719년)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뒤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써서 유명해진 영국작가. 문학사 최초의 ‘여행전문작가’로 손꼽힌다. 또 문학 단체인 킷캣(Kit-cat) 클럽을 만들었으며, 유명한 문예·시사 평론지 <스펙테이터(Spectator)>를 창간하기도 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카토>, <북 치는 사람>, <전투> 등이 있다.




 

 


설사 좋은 기억력을 갖고 있더라도 거짓말은 삼가는 것이 좋겠지요.

오랫동안 하원의장을 지낸 정치인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의 친구가 물었습니다.
“자네는 매일 사람을 1백명 넘게 만나서 온갖 이야기를 하는데 적는걸 한번도 본적이 없네. 그 많은 사람에게 한 말이나 약속을 어떻게 다 기억하나?” 그러자 정치인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처음부터 진실을 말한다면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다네.” 거짓말은 때때로 삶을 편하게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기억력이 거짓말쟁이의 필수 요소라고도 하지요.
미국의 하원의장을 지낸 레이번은 평소에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남들에게 한 말을 일일이 기억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새뮤얼 레이번(Samuel Rayburn·1882~1961년) 지금도 그의 이름을 딴 건물이 워싱턴에 있을만큼 유명한 미국의 정치인이다. 17년 동안 미국의 하원의장을 지냈으며, 미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하원의장으로 기록됐다. 1937년 민주당 원내총무, 1940년 9월 하원의장에 취임한 그는 신랄한 논평과 불굴의 애국심 등으로 유명했으며 루스벨트와 그 뒤를 이은 3명의 대통령에게 진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도 당신의 권력을 내세우시겠습니까?

많은 영화에 출연해 제법 얼굴이 알려진 배우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친구와 함께 사람들로 북적대는 고급식당에 갔습니다.
그런데 예약을 하지 않아서 오랫동안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기다림에 지친 친구가 투덜거렸습니다.
“자네가 누군지 말하면 금방 자리를 내줄텐데 왜 가만히 있나?” 그러자 배우가 말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해야 한다면 그건 내가 별로 유명하지 않다는 증거라네.” 어떤 사람은 말을 통해, 그것도 자기 입으로 자신이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자신의 지식이 얼마나 대단한지, 자신이 가진 권력이 얼마나 큰지를 남에게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미국 영화배우 그레고리 펙은 꼭 말을 해야 남들이 안다면 실상은 그 말에 들어맞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레고리 펙(Gregory Peck·1916~2003년) 의학 공부를 포기하고 브로드웨이의 연극 무대를 통해 데뷔한 미국배우. <앵무새 죽이기>로 1962년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베트남전에 자신의 아들을 참전시켰지만, 한편으로는 반전시위에 앞장섰는데 “국민의 도리는 하지만 잘못한 일은 지적해야 한다”는 신념을 내비쳤다. 말년에는 각종 자선단체와 비영리 단체에서 사회활동을 맹렬히 전개했다.




번돈을 잘쓰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잘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어떤 젊은이가 주식 투자를 해서 한꺼번에 큰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그는 흥분해서 아버지에게 달려가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별로 기뻐하는 기색이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 아직 서른도 되지 안았는데 10억원이 넘는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도 기쁘지 않으신가요?”

그 말에 아버지는 아들을 넌지시 타이르며 말했습니다.
“글쎄, 별로 기쁠 것도 놀랄 것도 없구나. 난 오히려 네가 그 돈을 잘 쓴다면 더 놀랄것 같다.”

돈 벌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돈 벌기가 쉽다면 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고민하지는 않을 테지요.
하지만 미국의 금융 전문가였던 버나드 바루크의 아버지는 돈을 버는 것보다 유용하게 쓰는것을 인식 하였습니다.

 버나드 바루크(Bernard Baruch·1870~1965년) 증권 브로커로 출발해 백만장자가 된 미국의 금융전문가. ‘월 스트리트의 외로운 늑대’로 불린 그는 특히 워싱턴 백악관 앞 라파예트 공원에서 평범한 사람들과 정부정책에 대해 토론하기를 즐겼다. 이런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고, 그가 늘 앉던 공원벤치는 그의 ‘사무실’로 일컬어졌다. 이 벤치는 바루크에게 헌정한 기념물이 됐다.



 

 

 


당신은 필요 이상으로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말을 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말을 하지 않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부모의 걱정은 이루 말할수가 없었지요.
그런데 어느날, 저녁밥을 먹다가 아이가 말문을 열었습니다.
“국이 너무 뜨거워요.” 부모는 아이가 벙어리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하면서 왜 이제까지 말을 하지 않았는지

 물었습니다.
아이의 대답은 간단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모든 일이 정상이어서 말할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적게 말해서 후회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말이 많으면 대개는 후환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아는 사람은 많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드문 지혜지요.
벙어리로 오해받은 독일 출신의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아마 어린시절부터 그런 지혜를 터득하고 있었던

모양 입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1879~1955년) 이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몇명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을정도로 난해한 상대성이론의 창시자다. 독일 울름에서 태어나 스위스 국립공과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1905년에 광양자설과 특수상대성이론을, 1916년 일반 상대성이론을 발표해 주목받았다. 광전효과 연구와 이론물리학에 기여한 업적으로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음.

'생활의 지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격자가 부자된다.  (0) 2008.11.24
특허문서작성기 개발 보급  (0) 2008.11.23
편리한 생활상식  (0) 2008.11.10
커뮤니케이션 변화  (0) 2008.11.10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  (0) 2008.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