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공간 인프라 확충

2008. 12. 11. 09:27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CBS사회부 윤지나 기자


노인들은 욕구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라는 '오래된 편견'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기대수명이 80세에 육박하는 등 향후 50년 안에 세계 최고령국이 될 전망인 한국사회에서, 노인들은 젊은이들에게만 허락됐던 욕구에 '다시' 눈뜨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인프라와 인식이 이런 고령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충족되지 못한 욕구는 비뚤린 형태로 나타나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 CBS 노컷뉴스는 노인들의 삶과 욕망, 그 현주소를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해보는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11일은 시리즈 두번째 순서로 젊은이 못지 않게 '사회적 관계'를 욕망하는 노인들의 실상을 짚어본다.[편집자 주]

흥겨운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노인들 사이로 '부킹' 명찰을 달고 만남을 주선하는 노인들이 보인다. 화려한 스카프에 총천연색 브로치로 멋지게 꾸민 할머니와 말끔한 양복에 중절모까지 쓴 할아버지가 쑥쓰러운 듯 마주 보더니 이내 두 손을 잡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한 켠에서는 도수 높은 안경을 쓴 할아버지들이 정중하게 서로를 소개한 뒤 장기를 두기 시작한다.

‘새로운 관계’를 꿈꾸며 한껏 차려입은 노인들이 하루에도 수백 명이 드나드는 종로구의 한 노인 전용 콜라텍의 모습이다. 댄스홀에 장기판, 식당까지 철저히 '노인만남의 장'이다.

노인인구 4백만 시대, 더 이상 '뒷방 늙은이'로 남고 싶지 않은 노인들은 사람을 사귀거나 외모를 가꾸는 등 '사회적 관계맺기'에 점점 관심을 쏟고 있다. 젊은 시절의 욕망에 '다시' 눈 뜨고 있는 것이다.

금융일을 하다 20년 전 퇴직했다는 김모(70) 씨는 "나이 든 사람들끼리 편하게 교제할 만한 곳 중 하나가 콜라텍"이라며 "하루 천원 입장료에 잘 차려입기만 하면, 동네 노인정에서 매일 보는 사람 말고도 새로운 친구들을 맘껏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노인들은 혼자서 외롭게 지내는 게 아니라 드러내고 관계 맺는, 이른바 '관계'를 욕망하는 데 솔직한 모습을 보인다고 말한다 .

실제로 이들 '욕망하는 노인'은 과거 식비에만 돈을 쓰던 노인들과 달리 차량유지비나 외식비, 경조사비 등 이른바 ‘관계성’ 소비를 늘리고 있다.

통계청의 가구주 연령별 가계수지를 보면, 가구주가 60세 이상인 세대의 월 평균 외식비용은 2003년 37만 원에서 2007년 54만 원으로 점차 증가했고, 차량유지비 역시 2003년 30만 원에서 2007년 37만 원으로 증가했다.

외모에 기울이는 관심이 증가한 것 역시, 관계 맺기에 대한 노인들의 욕망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준다.

서울 강남의 BK동양성형외과가 2001년과 2006년 수술환자 200명을 무작위로 추출해 연령대를 조사한 결과, 60대 이상 노년층은 이 기간 동안 3배 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종로구의 한 노인센터 관계자는 "주위 분들과 어울리기 좋아하시는 분일수록 외모에도 관심이 많고 옷도 화려하게 입으시는 경향이 있다"며 “70대 후반 노인들이 단화에 수수한 차림인데 반해 요즘 60대 노인들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예쁜 구두를 신고 옷도 갖춰 입으신다” 고 말했다.

하지만 노인들이 이 같은 욕망을 해소할 공간은 한정돼 있다는 지적이 많다. 노인들의 대표적 '놀이터'라고 할 수 있는 노인복지관부터 시군구 당 1개가 채 되지 않는다. 노인을 위한 유흥시설도 전용 콜라텍을 제외하면 꼽을 만한 것이 없는 실정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소 고령사회정책팀 이소정 연구원은 "인구의 10%에 이르는 노인들의 욕구를 방치하면 사회적 문제까지 연결될 것"이라며 "이들의 경제능력여부와는 무관하게 사회와 국가가 나서서 노인들을 위한 공간 등 인프라 확충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jina13@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