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부탁해!”
경제 불황 속에 소설가 신경숙씨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필두로 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한 엄마 신드롬에 이어 아버지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문화 텍스트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 시대의 아버지를 조명한 연극 ‘아버지 열전’시리즈가 오르고, 이번 달에만 아버지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 책들 4, 5권이 연이어 나왔다.
시대의 정서를 빠르게 담아내는 광고에서도 아이들 학원비를 걱정하는 아빠, 아들 전화를 받고 얼굴이 환해지는 기러기 아빠를 등장시켰고, 신장암에 걸린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부성애를 그린 영화‘부산’도 한창 촬영중이다. 경제 불황에 시달리고, 갈수록 개인화되는 사회속에서 외롭고 상처입은 사람들이 자신을 지탱해줄 수 있는 든든한 아버지를 다시 찾고 있는 것.
◆ 아버지가 사라졌다 = 지난 몇 해동안 문화 전반에서 아버지는 실종됐었다. 소설에서 아버지는 1990년대 이후 가부장적 질서의 상징으로 여주인공들은 남편(혹은 아버지)으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려 했고, 소설가 공지영씨의 아빠 없는 행복한 가족 이야기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드라마쪽을 보면 ‘아내의 유혹’의 민 여사(정애리), ‘하얀 거짓말’의 신 사장(김해숙)처럼 강한 홀어머니들이 기존의 아버지 영역이던 경제력까지 장악하면서 가모장(家母長)이라는 말까지 만들었다. 23일 개봉한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속 가족은 아버지가 다른 두 자매와 엄마, 이모, 손녀로, 가족중 남자는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 아버지가 돌아왔다 = 이같은 ‘아버지 부재’를 딛고 등장한 ‘아버지 텍스트’들은 지친 아버지에 대한 연민 어린 시선을 통해 아버지 세대를 위로하는 동시에 아버지와 진심 어린 소통을 통해 그들 자신이 위안과 힘을 얻도록 이뤄져 있다.
지난달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시작된 ‘아버지 열전 시리즈’도 그렇다. 현재 공연중인 2탄 ‘굿바이 마이 대디’는 아버지가 갑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해가는 아들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버지를 이해함으로써 자기 삶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것.
시리즈를 기획한 허정 라이프시어터 대표는 “어느 때보다 힘겨워하는 아버지를 위로하기 위한 무대”라면서도 “최근의 아버지 이야기들은 어느 누구나 아버지의 아들(딸)인 외로운 현대인들이 잊고 있던 아버지를 이해하고 포옹함으로써 삶의 힘을 얻게 한다”고 말했다.
이번주에 출간된 ‘아버지란 무엇인가’(르네상스)의 저자인 미국 심리학자 루지이 조야도 “오늘날 아버지는 시대적 한계와 가족과의 단절 때문에 방황하고 있다. 인류는 오랜 진화과정을 통해 ‘아버지’라는 존재를 바탕으로 한 정신적 결속력 때문에 가족과 사회를 형성했다”며 “아버지를 비판하고 가정 바깥으로 내쫓기보다는 적극적으로 감싸주고 고민을 들어주면서 우리 모두를 위해 진정한 아버지의 역할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써내려갔다.
최현미기자 chm@munhw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