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우치아 프라다,럭셔리마켓팅
2009. 5. 3. 17:38ㆍC.E.O 경영 자료
프라다는 상상력 공작소…역동적인 한국 이미지와 닮아 | |||||||||||||||||||||||||||
명품비즈니스 핵심은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 상대방 배려하는 한국기업 파트너십 돋보여 | |||||||||||||||||||||||||||
◆세계적 명품 `프라다` 파트리조 베르텔리 회장 국내 첫 인터뷰◆
LVMH그룹과 리치몬트그룹 등 거대 명품 그룹들이 득세하고 있는 명품시장에서 프라다는 개별 기업임에도 확고한 고객층을 확보하며 세계시장을 넓혀나가고 있다. 현재 프라다그룹은 78개국에 직영매장 211개를 운영하고 있고, 세컨드 브랜드인 미우미우와 처치스(신발), 카슈(신발) 등 패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총매출 규모는 2007회계연도 기준 16억6100만유로다. 1913년 프라다 집안 가족사업으로 출발한 뒤 정치학도 출신인 패션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가 꽃을 피운 프라다가 오늘날 명성을 얻게 된 데는 숨은 조력자가 있었다. 그의 남편이면서 사업파트너, 영원한 동반자인 파트리조 베르텔리 회장(63)이다. 지난달 말 서울 경희궁 앞에서 열린 `프라다-트랜스포머` 건축 전시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베르텔리 회장을 만났다. 그가 국내 언론과 인터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상당수 명품 회사가 중국을 황금시장으로 보고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벌인 이유가 무엇인가. ▶예전부터 아시아는 중요한 시장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1980년대는 일본, 1990년대는 한국이 중심이었고 중국은 2000년대부터 관심을 받고 성장하고 있다. 아시아 시장에 늘 관심을 갖고 있으며 세계 경제를 발전시키는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은 그 어느 아시아 국가보다 역동적이고 프라다가 가고자 하는 브랜드 방향을 잘 이해해주는 소비자가 많다. 평소 한국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싶었고 그것이 이번에 서울을 행사지로 택한 이유다. -한국 기업인 현대자동차와 제네시스를, LG전자와는 프라다폰을 협력했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다고 보는가. 제품에 대한 느낌은. ▶대단히 만족스럽고, 한국에서 프라다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고 본다. 디자인과 휴대전화 제조는 완전히 다른 활동이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일할 수 있는 기업은 매우 많다. 모토롤라도 우리에게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한국 기업과 다른 나라 기업들에는 차이점이 있다. 한국 기업은 자신들 기업과 함께 일하는 기업을 서로 동등하게 보고 파트너십을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기업들은 자신들 브랜드만 높이고 싶어한다. 이런 기업은 일을 진행하지 못한다. 한국 기업들은 진보적이고 독창적이다. -프라다는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로 매출이 어느 정도 줄었나. ▶전 세계에 직영 매장 211개를 두고 있다. 평균을 내보자면 5%가량 줄었다. 미국은 다소 좋지 않고 유럽은 중간 정도다. 금융위기로 가장 타격을 입은 곳은 이탈리아다. 관광 수입이 줄었기 때문이다. 반면 아시아는 전반적으로 매출이 아주 좋다. 환율 변화로 일본인들이 한국을 많이 찾고 있어 현재 한국 내 영업 상황은 매우 긍정적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한국 매출 상황은 어떤가. 프라다에 한국 시장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전년과 비교해 50% 이상 매출이 늘었다. 한국은 잠재력이 큰 시장이다. 5000만명이 사는 나라가 아닌가. 게다가 한국은 자동차, 전자제품 등 산업이 발달한 나라인 데다 대부분 국민이 일을 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세계 명품업계가 LMVH와 리치몬트 같은 거대 재벌회사 체제로 재편되고 있다. 인수ㆍ합병(M&A) 계획을 갖고 있나. ▶지금까지 회사를 운영하면서 2000년께 질샌더와 펜디 지분을 인수했을 때가 가장 위기였다. 때마침 미국 9ㆍ11테러로 인해 경기 불황까지 겹쳐 고전했다. 결국 인수한 브랜드를 되파는 것으로 해결했다. 또 한 가지, 그때 M&A를 한 회사의 조직문화가 달라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은 사람들을 세심하게 잘 관리하는 게 핵심이다. 브랜드 관리도 중요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사람 관리가 가장 중요하고 또 그만큼 어렵다. 현재 M&A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지금처럼 인수 자금을 대줄 금융회사들이 중장기적으로 보지 않고 단기간 내 상환을 요구한다면 M&A는 앞으로도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매스티지(대중명품) 브랜드를 만들 계획은. ▶전혀 없다. 매스티지 브랜드를 만드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가 지닌 브랜드와 시장을 유지하고 수정하는 것만으로도 힘들다. 기존에 있는 것을 발전시키는 것보다 새로 시작하는 것이 더 힘들기 때문에 현재 하고 있는 브랜드에만 힘쓸 생각이다. -유럽 최고급 명품들이 중국 등 제3국에서 생산하는 것에 대한 견해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는 이탈리아 국가적 정체성에 대한 방어라는 의미를 지닌다. 즉 `메이드 인 이탈리아`가 단순히 제품을 이탈리아에서 생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라는 나라 특성도 함께 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20~30년 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 만약에 이탈리아에서 중국 사람들이 `메이드 인 이탈리아`를 생산한다면 그것은 이탈리아 제품이 아닐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해결 방법은 짧은 시간 내에 찾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선두 명품 기업 CEO로서 본인의 리더십은. ▶명품 기업와 다른 기업 CEO가 다른 것은 전혀 없다. 나는 다만 일을 매우 빠르게 처리하는 편이다. 의사결정이 됐으면 성사될 수 있도록 밀어붙여야 한다. -명품 비즈니스에서 핵심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한다. 이익을 위해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대고객 커뮤니케이션을 게을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가장 큰 실수다. 이는 어느 비즈니스에든 해당된다. 물론 커뮤니케이션을 안 하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이익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브랜드 정체성에 혼란을 줄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을 그만두는 것보다 비용을 절감하는 편이 낫다. 코스요리를 먹지 않고 빵만 먹더라도 커뮤니케이션을 계속해야 한다. -부인 미우치아 프라다에 대한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파트너로서 어떻게 협력하는가. ▶간단하다. 우리는 함께 일한다. 항상 같이 있는 사람이며 쉼 없이 함께하는 관계다. -요즘 가장 관심을 갖고 추진하는 일은 무엇인가. ▶제일 신경 쓰고 힘을 쏟는 일은 당연히 매장 개발이다. 2009~2010년에 전 세계적으로 프라다와 미우미우 매장을 50여 개 오픈할 예정이다. 모두 직영이다.
-현대미술을 지원하고 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가. ▶동시대 많은 예술가를 지원하고 같이 일을 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며 많은 영감을 가져다 준다. 예술의 미적 측면에서 보는 인간의 생각과 철학의 변혁은 다르다. (산업 관점에서)이런 것들은 미의 본질적인 부분에서부터 철학이 생성이 되는데 (이전)산업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예전의 예술은 시각적 측면에 중점을 많이 두지 않아 패션 영역으로 확장하기 쉽지 않았으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어 예술을 패션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다. 서울이 디자인 도시로 선정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디자인 도시가 된 것이지 예술의 도시가 된 것은 아니다. 이 부분이 많은 논쟁거리를 던져준다. 왜냐하면 디자인은 옷을 만드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디자이너가 예술을 하는 것인지, 예술가가 디자인을 하는 것인지 혼란이 오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점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결국은 동일한 본질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건축적인 측면이 아니라 패션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
1946년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소도시 아레초의 법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볼로냐대학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했고, 2000년 피렌체대학에서 명예 경영학 학위를 받았다. 22세부터 고향 아레초에서 벨트와 핸드백을 생산하는 작은 회사를 운영하다 1977년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그 이듬해 내놓은 프라다의 나일론 백(테스토 벨라)은 전 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하며 `프라다` 브랜드를 알리는 계기가 됐고, 지금까지 프라다의 아이콘이자 상징이 됐다. 이후 프라다의 여성구두 컬렉션을 론칭했고 여성복 컬렉션과 세컨드 브랜드인 `미우미우`, 남성복까지 내며 1980년대와 1990년대 사업을 빠르게 확장시켜 나갔다. 처음에는 단순한 사업파트너였지만 프라다와 연인으로 발전해 1986년 결혼했다. 럭셔리 마케팅으로 지금의 프라다그룹을 일궈냈다. 워커홀릭이며 유일한 취미가 요트다. 요트는 스스로 즐기기도 하지만 `루나로사`라는 팀을 결성해 아메리카컵 등 요트대회에 출전시키고 있다. [김지미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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