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원 등록금 시대

2009. 5. 7. 19:22이슈 뉴스스크랩


학비 마련 휴학으로 학업에 영향… 대출이자 못갚아 신용유의자 속출

숙명여대 영어영문학부 3학년 김모씨. 06학번으로 4학년 강의를 들어야 하지만, 아직 3학년 강의를 듣고 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1년 동안 휴학했기 때문이다. 김씨에게 대학은 낭만과 지성의 상아탑이 아니다. 대학생활 내내 어떻게 등록금을 마련할 것이냐는 고민을 안고 지내왔다. 등록금이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한 것은 신입생 때부터다. 대학에 합격했다는 기쁨도 잠시,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서 등록금과 입학금을 마련해야 할 정도로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다. 1학년 1학기를 다닌 후 2학기에는 등록금이 없어 휴학했다. 커피전문점, 레스토랑, 편의점 등에서 '알바'를 하면서 6개월 동안 등록금을 벌었다. 하지만 시간당 4000원을 받아(시급 4000원을 받지 못한 적도 많았다) 생활비·교통비·통신비 등을 충당했지만 등록금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2007년 1학기 때 학자금대출을 받아서 등록했다. 하지만 2학기 때 등록금 때문에 다시 휴학했다. 입학 후 2년 동안 2학기 수업을 한 번도 듣지 못한 것이다. 성적은 떨어졌고 대학 생활은 엉망이었다. 김씨는 지난해 1학기부터 학자금대출을 받아 지금까지 학교를 다니고 있다. 지난해 처음 2학기 수업을 들었을 때 비로소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을 정도였다. 성적도 휴학과 복학을 반복할 때보다 훨씬 좋아졌다.

등록금 때문에 삭막한 대학생활

하지만 김씨가 치러야 할 후유증 역시 만만치 않다. 갚아야 할 빚만 현재 1600만 원이다. 다음 학기에 학자금대출을 받으면 빚은 2000만 원으로 늘어난다. 2학기를 마치고 나면 1년간 휴학해서 등록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남들처럼 어학연수나 배낭여행을 가기 위해서 휴학한 것도 아닌데, 등록금 때문에 2년을 휴학하는 셈이다. 지금도 매달 10만 원 정도 이자를 갚아야 하기 때문에 알바를 그만둘 수 없다.

김씨는 자신의 대학생활이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 대학에 들어왔을 때는 연애도 해보고, 돈을 모아서 배낭여행이나 어학연수도 가고 싶었다. 그런데 내 대학생활은 등록금을 마련하는 일로 얼룩지고 있다. 이렇게 대학생활을 하면 뭐하나 싶고,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학자금대출로 빚이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힘들다." 김씨의 남동생은 재수생인데, 김씨가 등록금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보고 "누나, 나는 대학에 가지 말까"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때마다 김씨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등록금 1000만 원 시대. 등록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등록금 때문에 자살하는 대학생, 학자금대출 이자를 내지 못해 신용유의자(신용불량자로 학자금대출을 받을 수 없다)가 되고 등록금을 내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졸업 후에도 취직하지 못하고 학자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 딱지가 붙은 젊은이도 상당수다. 이렇게 등록금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얼마 전에는 여대생들이 삭발하면서까지 등록금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값 등록금' 공약 말 바꾸기

1990년 전문대학과 기술대학을 포함한 대학 진학률은 33.2%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3년 대학진학률 79.7%를 기점으로 2007년 82.8%, 2008년 83.8% 등 갈수록 진학률은 높아지고 있다. 대다수 고교 졸업생이 대학에 진학하고 있는 것이다. 1989년 대학등록금 자율화 조치 이후 등록금이 뛰면서 물가상승률을 크게 상회하기 시작했다. 소를 팔아서 학교에 다닌다고 해서 붙은 '우골탑'은 언제부턴가 부모의 등골을 뺀다고 해서 '인골탑'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사립대들이 대학 재정의 상당 부분을 등록금에 의존하면서 등록금 문제는 더욱 악화하기 시작했다. 민주노동당 최순영 전 의원이 낸 '대학등록금 재정실태 분석보고서'(2006)를 보면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사립 4년제 대학의 재정 수입 중 등록금 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은 6.8%나 증가했다. 이에 비해 전입금은 0.9% 증가했고, 기부금은 4.9% 감소했다. 국고보조금 비율도 4.4%에서 1.5%로 줄어든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안민석 의원(민주당)이 펴낸 '대학 등록금 경감 방안에 대한 정책 연구'를 살펴보면 2007년 147개 사립대학에서 등록금 수입은 전체 운영 수입 중 64%나 차지했다.

하지만 각 대학은 등록금 인하 대신 이월·적립금만 높이고 있어 비판받고 있다. 2008년 국정감사를 통해 사립대들의 적립금이 매년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2005년 특정기금 적립액은 8712여억 원이었지만, 2006년 1조 원을 돌파했고, 2007년에는 1조3462여억 원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사립대학이 학교 발전을 내세워 '묻지마' 식으로 이월·적립금을 축적해온 것을 알 수 있다.

대학생들을 더욱 화나게 한 것은 '반값 등록금' 공약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다. 한나라당이 반값 등록금 공약을 꺼내든 것은 2006년 지방선거 때다. 당시 반값 등록금 공약을 다듬었다고 알려진 인물이 이주호교육과학기술부 1차관(당시 정조위원장)이다. 4월 13일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서 안민석 의원은 이 차관을 상대로 "반값 등록금이 자신 없으면,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사과하라"고 맹공했고, 이에 이 차관은 "반값 등록금 공약은 등록금 자체를 반으로 줄이자는 것이 아니라 등록금 부담을 반으로 줄이겠다는 것"이라고 설전을 벌였다. 이 차관의 발언에 대해 대학생들은 허탈하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지역대학생연합(서울대련) 박해선 의장은 "표를 받기 위해서 그런 공약을 내놓았는데, 지금 와서는 말을 바꾸고 있다"면서 "지난 대선에서 대학생들에게 먹혀들었던 공약이 반값 등록금이었고, 적지 않은 학생이 혹시나 하면서 기대했는데 너무 황당하다"고 질타했다.

등록금 부담이 늘어나면서 학자금대출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2005년 2학기부터 학자금대출이 정부보증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5년 2학기 당시 18만1983명이 5223억 원의 대출을 받았는데, 2007년 1학기에는 30만8545명이 1조957억 원, 2008년 1학기에는 32만7261명이 1조2451억 원의 대출을 받은 것이다.

또 학자금대출의 높은 금리 때문에 이자를 제때 납부하지 못해 신용유의자가 늘어나는 것도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2006년 12월 말 756명에 불과했던 신용유의자가 2008년 8월 말 현재 7454명으로 10배 정도 증가했다. 연체 건수도 2006년 12월 말 2만1984건이었지만, 2008년 8월 말에는 4만2893건으로 2배 정도 증가했다.

등록금 문제가 사회 문제로 비화하면서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은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력행사를 벌이고 있다. 전국 500여 시민·사회·학생·학부모 단체가 함께하고 있는 등록금넷이 대표적이다. 등록금넷은 서울시를 상대로 '학자금 지원 기금 설치 및 운용 조례'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등록금넷이 요구하는 것은 학자금대출 이자 지원이다. 등록금넷 조민경 간사는 "현재 소득별로 이자 혜택을 받는데, 1분위에서 7분위까지 무이자 형태로 하고, 나머지 이자 혜택이 전혀 없는 8·9·10분위에도 일부 지원해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간사는 "우선 이자 문제부터 해결해서 신용불량자가 나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자 지원제도'호응 높아

전북도에서는 '자녀학자금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지난해 12월 25일 통과시켰고, 올해 2학기부터 실질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김연근 도의원이 대표 발의를 했는데, 전북에 주소지를 가지고 있는 전북 내 대학생이 대상이다. 김연근 의원은 "재정이 빈약해서 무이자 혜택까지는 하지 못하고, 이자를 조금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면서 "현재 2억 정도 재정으로 1만 명 정도의 학생에게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전북과 비슷한 학자금지원 조례를 추진하고 있는 지자체는 경남, 제주도, 울산시, 충북, 경기 성남시, 부산시, 광주·전남, 대전시, 인천시, 충남, 강원도 등이다. 대부분 지자체에서는 주민발의를 통해 조례를 제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학생에게 이자를 지원하고 있는 대학도 있다. 성균관대, 연세대, 건국대, 덕성여대, 세종대, 한국외대, 한성대, 중앙대 등이 실시하고 있다. 중앙대의 경우 '이자 지원 장학금'을 3년째 운영 중이다. 한 학기에 800명 정도의 학생에게 한 학기 분 이자를 지원해주고 있다. 학자금대출을 받는 중앙대생 중 60% 정도가 혜택을 받고 있는 셈이다. 중앙대 학생지원팀 노상철 팀장은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이자율이 달라져서 학생마다 받는 금액이 다른데, 대략 한 학기에 5만~10만 원 정도 된다"면서 "한 학기에 8000만 원 정도 예산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만일 학자금대출을 받은 서울 캠퍼스의 학생을 모두 지원하려면 한 학기에 3억5000만 원 정도 예산이 필요하다. 이자 지원을 받는 것만으로도 신용유의자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호응이 높다. 이 제도가 없는 대학의 총학생회에서도 이 제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시민단체의 움직임과 별도로 정치권에서도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대학 기부금 세액 공제 제도 ▲등록금 상한제 ▲국가 차원의 장학제도 구축을 내세우고 있다. 민주당은 ▲등록금 상한제 ▲등록금 후불제 ▲등록금 공제제도 등을 마련했고, 민주노동당은 ▲등록금 상한제 ▲등록금 후불제 ▲등록금 차등 부과제 ▲재단적립금 규제법 등을 요구하고 있다.

각 정당에서 공통으로 요구하는 ▲등록금 상한제의 가장 큰 논란은 등록금 조정을 정부가 나서서 했을 때 대학 자율성 침해로 볼 수 있느냐다. 특히 대학자율화를 내세우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서 등록금 상한제를 도입하면 사립대학이 거세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등록금 후불제는 각 정당 및 사회단체에서 공통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대책으로, 정부가 학생의 등록금을 미리 대납하고 학생이 졸업한 후 상환하는 제도다. 그만큼 국가교육 재정의 규모도 늘어나야 하고, 정부가 등록금 정책에 적극 개입하지 않으면 무차별적인 등록금 인상을 불러올 수 있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한국대학연구소 박거용 소장은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런 제도와 함께 ▲과도한 등록금 인상 억제 법제화 ▲전액 무상장학금 확대 ▲학자금대출 제도 개선 ▲국가 재정 확충 방안 마련 등을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 대한민국 20대 절망의 트라이앵글을 넘어 > 라는 책을 쓴 조성주씨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 보좌관)는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자 지원이라도 해야 한다"면서 "등록금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식을 사회 전체가 함께 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라고 조언했다.

<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