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원 택배기사 한계

2009. 5. 20. 07:38이슈 뉴스스크랩

» 지난 16일의 전국노동자대회에서 폭력시위를 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19일 오후 대전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대전 법동 동부경찰서에서 경찰 버스에 오르고 있다. 대전/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죽음 부른 택배 노동자 현실

‘운송수수료 30원 때문에 사람이 죽었습니다.’ 화물연대 파업 결의, 노동자 457명 연행 등 최근 번지고 있는 극렬한 노-정 충돌의 불씨는 택배 운송수수료 ‘30원’이었다. 대한통운과 택배운송 계약을 맺고 있는 ‘택배노동자’ 76명은 운송수수료를 상자 1건당 920원에서 950원으로 올려달라고 회사에 요구했다가 계약해지 당했다. 이들을 돕던 화물연대 박종태 광주지부 제1지회장은 “끝까지 싸워서 이깁시다”란 글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택배업계 관계자들은 “포화상태인 택배시장의 ‘단가 낮추기’ 경쟁이 결국 화를 불렀다”고 입을 모은다. 흔히 홈쇼핑이나 인터넷쇼핑으로 물건을 주문할 때 개인소비자들이 지불하는 택배비 2500원. 대체 그 뒤에 어떤 비밀이 숨어있기에, ‘30원’ 때문에 사람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것일까? 왜곡된 택배시장과 택배노동자들의 현실을 들여다봤다.

 

‘배송비 무료!’

요즘 온라인 오픈마켓에선 1000원짜리 물건을 부산에서 주문해도 배송비가 무료다. 많이 받는 데라도 2500원을 넘지 않는다. 국내 택배업체들끼리 제 살 깎기 식으로 단가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택배업체들이 받는 운송단가는 2004년 건당 3638원에서 지난해 2350원까지 곤두박질했다. 업체들의 이런 출혈경쟁으로, 피해는 고스란히 ‘택배운송 개인사업자’로 불리는 택배노동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 ‘택배비 2500원’의 비밀 택배 단가 2500원이 배분되는 구조를 보면, 택배노동자들이 왜 열악한 지경으로 몰리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일단 대리점이 수수료로 50%가량을 떼어간다. 이 가운데 800~900원가량이 물건을 직접 배송하는 노동자(사업자)의 몫이다. 하루 100상자를 날라도 겨우 8만~9만원 번다는 뜻이다. 기름값, 각종 보험료 등도 본인이 내야 한다. 더 많이 벌려고 하루 150상자를 배송하다 보면, 서비스 품질이 떨어져 나중에 일감이 줄어든다.

2500원의 나머지 절반엔 터미널간 운송에 들어가는 간선비용과 화물 분류작업, 터미널·대리점 임차료 등이다. 간선운송과 화물 분류작업에도 인건비가 들어간다. 때로는 택배업체들이 많은 물량을 따내기 위해, 단가의 30~40%를 화주에게 다시 주기도 한다. 이런 리베이트 관행까지 포함하면 단가가 크게 낮아진다.

박찬석 미래물류컨설팅 대표는 “10년 전엔 건당 운송수수료가 1000원이었다면 지금은 800~900원대로 낮아졌다”며 “업체들은 이런 단가인하 경쟁으로 인한 수익 악화를 힘없는 택배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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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맷집 좋은 놈만 살아남는다? 무리한 단가 경쟁에 발목 잡히기는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대형 유통업체와 전자상거래의 급성장을 등에 업고 2000년대 초 200여곳에 이르렀던 택배업체는 최근 30곳 안팎으로 줄었다. 대형 택배업체조차 영업이익률 1~2%짜리 초라한 성적표를 내고 있다.

국내 택배시장이 급팽창한 것은 1997년 이후다. 정부가 규제완화 차원에서 택배업 진입에 대한 법적 장벽을 허물면서, 중소업체들이 대거 택배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업체 난립에 따른 단가인하 경쟁이 결정적이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오래 버티는 회사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 택배시장 규모는 약 2조6천억원(매출액 기준)으로 추정된다. 택배업 종사자는 약 2만9천명이다. 1인당 연간 매출이 1억원도 되지 않는 구조인 셈이다. 택배업체들은 휴일배송, 철도·편의점과의 연계 등 서비스 차별화로 생존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적자를 메우기엔 역부족이다.

결국 지난해 동원그룹이 택배업 진출 1년여 만에 철수하는 등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대한통운이 금호아시아나그룹에 팔리고, 신세계그룹의 세덱스가 한진택배와 통합되는 등 택배시장은 대기업 중심의 ‘빅5 체제’로 재편됐다. 현재 택배시장의 절반가량은 대한통운, 한진택배, 현대택배, 씨제이 지엘에스(CJ GLS), 우체국택배 등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단가인하 경쟁의 ‘덫’에 걸린 것은,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 똑같다. 윤영삼 부경대 교수(경영학)는 “표준운임비를 도입해 택배비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