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운용의 최고 미덕은 '인내'입니다. 회사에서도 6개월 수익률 안 좋은 건 '괜찮다'고 하죠."
1999년 1월 설정돼 올해 10주년을 맞은 '템플턴그로스펀드'는 국내 공모형 주식형펀드 중 최장수펀드다. 하나UBS자산운용이 1970년 설정한 펀드가 있긴 하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운용이 중단됐다 재개됐다. 10년 동안 거쳐간 매니저도 4명에 불과하다. 국내 자산운용업계에서 '그로스펀드'를 '천연기념물' 같은 존재로 꼽는 이유다.
25일 현재 10년간 누적 수익률은 414.19%로,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 123.67%의 3배가 넘는 성과다. 가장 먼저 설정된 5호 펀드의 설정액이 652억원이며, 이후 만들어진 1~4호까지 전체 설정액은 4021억원이다.

김태홍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 포트폴리오매니저(39. 사진)는 오랜 기간 모범적인 성과를 낸 비결로 개인적 역량보다는 회사의 굳건한 장기투자철학을 꼽았다. "좋은 기업의 주식을 싼 가격에 산다는 건 다른 운용사에서도 말할 수 있는 전략입니다. 문제는 이 전략을 얼마나 철저하게 고수하느냐에 있죠"

10년 넘게 펀드를 유지하기 위해선 트랙레코드(실적)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게 최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선 운용사의 운용 원칙에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단기 성과에 연연하는 국내 운용사와 달리 장기투자 원칙에 따라 3년, 5년 성과로 매니저를 평가하는 회사 문화가 '뚝심있는 투자'를 가능케 했다는 설명이다.
물론 10년 동안 항상 성과가 좋았던 건 아니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지난 해 4분기 증시가 폭락하면서 그로스펀드 수익률도 하위 25% 수준으로 떨어졌다. 당시 그로스펀드의 주식편입비중은 90%로 높은 상태였고, 대표적인 방어주인 통신주 비중도 적었다.
이런 중에도 '그로스펀드'는 과거 수년간의 행적을 그대로 유지했다. 김 매니저는 "매니저들이 투매에 나설 때도 저평가된 양질의 주식을 매수해 기다리라는 원칙을 고수했고 이런 원칙은 올들어 상승장에서 높은 수익으로 보답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종목이 효성(주가,차트)과 기아차(주가,차트)다. 효성(주가,차트)은 미국 본사와 예정된 컨퍼런스 콜이 정전 때문에 지연되면서 발굴된 사례다. 김 매니저는 "미국 전력망 설비가 굉장히 노화돼 정전이 잦고 3년 전부터 전선 교체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아시아 내 초고압선 부문 강자인 효성(주가,차트)의 비중을 지난 해 하반기부터 늘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효성(주가,차트)의 해외 물주가 급증하면서 현재 주가는 지난 해 저점대비 2.5배 상승한 상태다.
기아차(주가,차트)는 지난 해 적자를 내자 매물이 쏟아졌던 종목이다. 김 매니저는 그러나 기아차(주가,차트)가 해외 재고를 처리하는데 주력해 매출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데 주목했다. 판매대수만 늘어나면 바로 이익이 발생할 사업구조로, 시스템이 잘 갖춰진 회사를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철저한 종목 분석을 기반으로 한 역발상 투자 덕에 연초 이후 '그로스펀드'의 수익률은 34.33%로, 코스피 상승률을 9.5%포인트 웃돈다. 특히 김 매니저가 운용을 맡기 시작한 2007년 5월 이후 '그로스펀드' 성과는 코스피지수대비 14%포인트 앞서고 있다.
'그로스펀드'는 최근 투자 종목이 80개 정도로 늘었다. 요즘 세계 각국 투자가 이뤄지는 풍력이나 발광다이오드(LED) 등 녹색 관련 성장주 투자에 나섰기 때문이다. 김 매니저는 전세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의 65%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SDI(주가,차트) 등을 장기 유망주로 꼽았다.
또 중국의 높은 저축률이 소비로 전환될 것이라는 관측 속에 중국 내 시장 점유율이 높은 현대차(주가,차트)나 성장 잠재력이 큰 높은 오리온(주가,차트)도 관심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