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으로 산다는 것

2009. 6. 11. 17:41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전지현’으로 산다는 것

CF퀸… 할리우드 진출… 연기력 논란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

배우 전지현(29)은 11일부터 며칠간 숨도 못 쉬고 가슴을 졸일 것이다. 그가 주연한 영화 ‘블러드’가 이날 국내에서 개봉했기 때문. 그는 “오랫동안 흥행에 저조했기 때문에 관객들의 사랑에 너무나 목 말라 있다”며 이번 영화의 흥행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로 그가 2003년 이후 주연을 맡은 영화 중 3개가 관객 동원에 실패했다. 영화 평단의 작품 평가가 나쁜 것은 아니었으나, 일반 관객들은 웬일인지 많이 찾지 않았다.

영화판의 일부 호사가들은 “전지현만 나오면 작품을 말아먹는다”는 말을 퍼트리기도 했다. 물론 전지현이 영화를 말아먹기만 한 게 아니다. 2001년 ‘엽기적인 그녀’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엽기’라는 말을 21세기 벽두의 상징어로 유행시켰다.

이 영화는 아시아 각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어 전지현은 한국을 대표하는 한류 스타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그는 만 18세이던 1997년 한 패션 잡지의 표지 모델로 데뷔, 이듬해 TV 드라마 ‘내 마음을 뺏어봐’를 통해 연기 활동에 나섰다. 방송사 연말 연기대상에서 신인연기자상을 받으며 나름대로 인정을 받았으나 시청자들은 조연급인 그에게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그가 일반인들에게 전지현이란 이름 석자를 각인시킨 것은 역시 CF에서였다. 청순하면서도 상큼한 느낌을 주는 얼굴과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를 지닌 소녀가 굴곡이 선명한 S라인 몸매로 낭창낭창 허리를 흔들자 시청자들은 신선한 충격과 매력을 느꼈다. 이후 10년 넘게 전지현은 CF 퀸으로 부동의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CF에서 성가를 높이면 높일수록 톱 배우로서의 연기력에 대한 기대치도 커졌다. 그는 각 작품마다 연기 변신을 시도했으나, 그의 노력들은 시끄러운 비판의 입방아에 묻혔다. 설상가상으로 2008년에는 소속사의 휴대전화 복제 사건까지 터져 그의 연기 생명이 끝나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추측마저 나돌았다.

하지만 전지현은 주저앉지 않았다. 홍콩에서 제작하고 프랑스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 ‘블러드’의 단독 주연 제의를 덥석 받아들였다. 와이어에 몸을 의지해 훨훨 날아다니며 모두 영어와 일어로 말하는 연기에 처음으로 도전한 것. “대학에서 영어 공부를 했지만, 모두 까먹었지요. 영어 과외공부를 받고도 대사를 모두 100번 넘게 암송했어요. 그러고도 처음에 대사할 때는 몸이 벌벌 떨려 무어라고 말했는지 모를 정도였어요.”

그는 지난 4일 ‘블러드’ 시사회 직후에 문화일보 기자를 만났을 때, “젊은 여자가 와이어에 매달려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흔들리며 여기저기 부딪칠 때의 심정을 짐작하시겠느냐”고 뜬금없이 물었다. 한국에서는 지난 10여년간 톱 클래스의 배우였던 그가 외국 스태프들에게 둘러싸여 영어 대사와 액션을 할 때마다 “양처럼 떨며 자존심이 상해서”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역시 “한국 배우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촬영했다.

전지현은 액션을 하면서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해 보겠다는 욕심이 있었으나, 완성된 작품을 보고 난 후 역부족이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고백했다. 영화를 보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다. 그의 영어 대사는 예상보다도 훨씬 자연스럽지만, 액션은 원작인 일본 애니메이션에 비해 과장된 느낌을 준다. 이 영화의 제작을 ‘와호장룡(臥虎藏龍)’을 만들었던 팀이 맡았다는데, 액션과 컴퓨터 그래픽으로만 보면 용이나 호랑이는커녕 뱀 꼬리를 그린 수준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엽기적인 그녀’가 해외 자본이 만든 영화에 단독 주연으로 출연해서 속으로 피를 흘리며 만든 작품이 어떤 수준인지 확인하는 재미도 한 이유가 될 수 있을 듯싶다.

전지현은 요즘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가슴에 와 닿는다. 지난 10여년간 스타로서만 달려온 삶에 대한 외로움이 사무친 탓이다. 남모르는 고독을 견디며 연기 생활을 해 왔지만, CF스타 이미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외로움을 더 깊게 만든다. 때문에 그는 8번째로 주연한 영화 ‘블러드’를 국내 팬들이 많이 찾아주기를 갈망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물론 흥행이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해외 진출의 첫발을 내디딘 것은 참 소중히 간직할 거예요. 이제 길을 알았으니, 계속 도전해야죠. 국내의 다른 배우들도 함께 노력해 나갔으면 해요.”

장재선·이동현기자 jeijei@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9-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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