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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류 신타로는 "일본인은 해수욕을 가더라도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해변으로만 몰려간다"고 지적했다. 이는 마음의 균형을 잡는데 남들과의 어울림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
이 주의 명작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의 즐거움’
“참다운 삶을 바라는 사람은 주저하지 말고 나서라. 싫으면 그뿐이지만, 그럼 묏자리나 보러 다니든가.”
위스턴 고든의 시의 한 구절처럼 삶은 노력 없이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고든은 단음절 낱말을 많이 써서 조롱이 섞인 경시와 모멸을 덧붙인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 낸 시인이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원제 Finding Flow, 해냄 펴냄)’은 고든의 이 시구절을 인용하면서 책을 시작한다. 제목과 달리 이 책은 좀 무겁다. 첫 페이지부터 삶의 고단함이 묻어 나온다.
① 톡·톡·톡= 타인들은 자꾸 나를 누르고 주도권을 쥐려고 한다. 나야 어떻게 되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삶의 길은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
칙센트미하이는 그동안 대기업 총수, 노벨상 수상자처럼 자기 분야에서 한가락 한다는 인물을 수없이 만났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기관차 공장의 용접공 조라고 소개한다. 기관차 공장은 격납고처럼 거대한 먼지가 많고 시끄럽기 짝이 없는 곳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용접공들의 대다수는 자기가 하는 일에 애정이 없었고 시계만 보면서 빨리 퇴근 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일단 공장 문을 나서면 근처 술집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는 조라는 이름의 60대 초반 남자였다. 조는 크레인이면 크레인, 컴퓨터 모니터면 모니터, 그 공장 안에 있는 기계 설비의 구조를 모조리 독학으로 꿰뚫은 사람이었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희한한 양반이라고 혀를 차면서도 모두 조를 존경했다. 문제가 생기면 누구나 조에게 먼저 달려갔다. 직원들은 그가 없으면 공장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조의 경우처럼
자신이 하는 일이 가치 있고 보람되고 성취감을 느낀다면 절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된다.
② 톡·톡·톡= 불행하게도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가정에서 설상가상으로 선천성 장애를 안고 태어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어마어마한 재산을 가진 집에서 준수한 외모에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태어난다.
여기서 저자는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강조한다. 만사가 인간 공통의 조건, 사회적·문화적 범주라든가 우연성에 의해 결정된다면 삶을 개선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성찰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③ 톡·톡·톡= 다행히 개인이 주도적으로 선택해 현실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운명의 굴레를 박차고 나설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은 바로 이런 믿음을 가진 이들이다.
저자는 자신의 운명의 굴레를 박차고 감동적인 삶을 산 사람으로 안토니오 그람시를 든다. 그람시는 금세기 유럽 사회사상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레닌주의와 스탈린주의의 궁극적 소멸에도 공헌한 사상가다. 1891년 이탈리아 사르디니아 섬의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람시는 척추 장애로 어린 시절을 줄곧 병마와 싸우며 보내야 했다. 아버지가 무고죄로 형무소에 갇히는 바람에 가족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그람시의 성격이 증오와 원한으로 똘똘 뭉쳐 비뚤어지는 것이 오히려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그람시는 탁월한 문필가와 이론가로 성장해 억압받는 사람들을 돕는데 일생을 바쳤다. 무솔리니에 의해 중세 감옥에 유폐된 상황에서도 그람시는 밝고 희망에 넘치는 편지와 에세이를 줄기차게 썼다. 그람시를 보면 가난과 장애, 외부적인 조건은 몰입 체험에 아무런 방해를 주지 못한다.
④ 톡·톡·톡= “그저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일만 해 왔을 따름이다.”
1954년에 노벨 화학상과 1962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라이너스 폴링은 자신의 성공 비결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아홉 살 때 아버지의 죽음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 대학에서는 구내식당 청소를 했고 산악지대에 아스팔트 까는 인부로도 일했다. 하지만 그는 독서광에다 광물과 식물, 곤충을 수집하는 등 탐구심이 남달랐다. 아흔 살의 고령에도 어린아이와 같은 열정과 호기심을 간직하고 있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계급의 대물림’이 고착화된다고 말하곤 하는데, 그람시나 폴링의 사례를 보면 누구나 장벽을 깨고 운명을 개척할 수 있지 않을까.
⑤ 톡·톡·톡= 선뜻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힘겨운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은 결국 우리에게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덧없고 지루하며 스트레스 덩어리로 받아들여진다고 해서 가족을, 사회를, 역사를 욕할 수는 없다.
⑥ 톡·톡·톡= 인생을 길게 보면, 물질적으로는 편해도 마음은 편하지 못한 일을 하는 것보다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백 번 낫고 또 의당 그래야 옳다. 그러한 결정을 내리기란 참으로 힘들며 자신에게 무서울 만큼 정직해야 한다.
저자는
몰입이란 삶이 고조되는 순간에 물 흐르듯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느낌이라고 표현한다. 몰입은 또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텔레비전을 보거나 휴식을 취할 때처럼 수동적으로 임하는 여가 활동에서는 좀처럼 몰입 체험이 보고되지 않는다. 명확한 목표가 주어져 있고, 활동의 효과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으며 과제와
실력이 균형을 이루면 사람은 정신을 체계적으로 집중할 수 있다. 몰입 경험은 이때 나타난다.
⑦ 톡·톡·톡= 그러므로 몰입 경험은 배움으로 이끄는 힘이다. 새로운 수준의 과제와 실력으로 올라가게 만드는 힘이다.
⑧ 톡·톡·톡=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 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깊이 빠져드는 몰입이다. (그러나)몰입해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행복을 느끼려면 내면의 상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그러다 보면 정작 눈앞의 일을 소홀히 다루기 때문이다. 예컨대 암벽을 타는 산악인이 고난도의 동작을 하면서 행복감에 젖는다면 추락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몰입에 뒤이어 오는 행복감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든 것이어서 우리의 의식을 그만큼 고양시키고 성숙시킨다.
끝으로 흔히 몰입은 홀로 체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몰입은 ‘혼자’가 아닌 ‘어울림’을 통해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람끼리 어울리다 보면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게 마련이므로 어떤 합치점을 발견하기란 원칙적으로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을 기울이면 대부분의 경우 아주 작은 합치점이라도 찾아낼 수 있다.
성공적인 어울림을 가능하게 하는 또 하나의 조건은 다른 사람의 목표에 관심을 기울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조건들이 충족되면 다른 사람과 같이 있으면서 긍정적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고 적절한 어울림에서 맛볼 수 있는 몰입 경험을 하게 된다.
남들과의 어울림은 ‘마음의 균형’을 잡는데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류 신타로는 이렇게 말한다.
⑨ 톡·톡·톡= 보통 일본인은 다른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묻어서 간다. 해수욕을 가더라도 한적한 해변은 피하고 그야말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해변으로만 몰려간다.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떨어져 있으면 인간이든 동물이든 오래 버티지 못한다. 동물은 먹이사슬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리를 지어 다니며 사회적 동물인 사람은 단지
보호받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생활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도 무리를 이루어 살아야 한다.
⑩ 톡·톡·톡= 만사가 그렇듯이 인간관계도 공짜로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관계에서 득을 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최효찬·자녀경영연구소장 / 문학박사 roma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