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아이스박스에 태워 살리고 아버지는 끝내 실종

2009. 9. 7. 06:03이슈 뉴스스크랩

아들 아이스박스에 태워 살리고 아버지는 끝내 실종
 
[쿠키뉴스] 2009년 09월 06일(일) 오후 10:30   가| 이메일| 프린트
 
[쿠키 사회] 들뜬 마음으로 아버지와 캠핑에 나섰던 서모(12)군은 눈 앞에서 흙탕물 속으로 사라져 버린 아버지를 생각하며 할말을 잃고 몸만 떨었다.

"아빠가 날 구하고 그렇게 됐어. 무서워." 간간이 아버지를 허망하게 보내버린 자신을 책망하는 듯한 신음을 토해낼 뿐이었다.

서군과 아버지 서강일(41)씨를 비롯한 일행 7명은 5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임진강 임진교에서 하류 방향으로 3㎞가량 떨어진 곳에 텐트 2개를 쳤다. 야영 장소는 강 중간의 모래섬으로 평상시 같으면 물이 차지 않는 곳이었다.

6일 새벽 안심하고 잠을 청한 일행 중 찰랑거리는 물소리에 가장 먼저 잠에서 깬 사람은 김모(37)씨였다. 밖을 확인하는 순간 이미 강물이 텐트 바로 앞까지 차올랐다. 김씨는 동료들을 서둘러 깨운 뒤 119구조대에 신고했다. 구조대가 오기만을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한 일행은 헤엄쳐 강 밖으로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물이 차오르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아버지 서씨는 서군을 태운 아이스박스를 밀며 30m가량을 헤엄쳤다. 서씨는 강가에 거의 도착할 무렵 거센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급속도로 힘이 빠졌다. 마지막 힘을 다해 서군을 강 밖으로 밀어낸 뒤 자신은 급류에 휩쓸렸다.

서군이 물속으로 사라지는 아버지를 애타게 불렀지만 아버지의 모습은 순식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일행 가운데 김씨와 서군만 목숨을 건졌다. 나머지 실종자 가운데 이경주(39)씨는 초등학생 아들(8)을 동반했다가 변을 당했다.

사고 후 서군은 왕징면 주민복지센터에 마련된 실종자 가족 대기실에서 한동안 몸을 떨며 누워 있기만 했다. 다른 실종자 가족은 "아이가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몸을 심하게 떨어 간호도 해보고 보건소에 가서 치료도 받게 했는데 소용이 없었다"고 전했다.

서군의 어머니 한모씨는 기운이 없는 목소리로 "아들은 괴로워하는 데다 몸이 아프다고 해서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말하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한씨는 갑작스럽게 남편을 여읜 탓에 두 눈동자는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졸지에 아들을 잃은 서군의 할머니는 "아이구, 아이구, 내 아들 어디 갔어. 어떻게 먼저 사라져"라며 오열했다. 한씨는 울면서 숨진 아들을 위해 울부짖는 시어머니를 위로했다.

대기실에 모여 있던 실종자 가족들은 관계 당국의 늑장대처에 불만을 쏟아냈다. "재난 방송도 없었어요. 분명히 인재예요." "수색작업도 어찌 그리 늦게 시작했던지…."
오전 10시에 수색작업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들은 실종자 가족들은 "다 떠내려 갔는데 뭐!"라며 당국을 성토했고, 한 남자는 물을 방류한 북한을 욕하기도 했다. 실종자의 한 가족은 "임진강이 바다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리느냐. 내일(7일) 2만명을 동원해 수색해도 소용없다"고 울부짖었다.

김규배 연천군수는 거세게 항의하는 가족들에게 "야간에는 헬기의 시야 확보도 어렵고 임진강과 한탄강은 전문 잠수부도 괴로워할 정도로 물이 탁하다"는 말만 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창욱 이경원 기자, 연천=김칠호 기자 seven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