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에 따른 불황으로 저소득층이 식비를 제외한 교육이나 문화생활 관련 비용을 줄이고 있으나 고소득층은 필요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미래 소득과 밀접하게 관련된 교육비 지출액의 격차가 커지면 부의 대물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취학 전까지만이라도 동등한 출발선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부유층 교육·문화에 저소득층의 5배 이상 지출
한국은행과 통계청에 따르면 월 소득수준 상위 20%인 5분위 가구의 학생 학원교육비 지출액은 2분기에 월평균 31만2천535원으로 소득수준 하위 20%인 1분위에 비해 7.6배에 달했다.이 배율은 2007년 4분기 7.3배에서 작년 2분기 6.2배로 줄었지만 금융위기가 터진 작년 3분기 7.2배로 상승했고 금융위기가 정점이었던 올해 1분기에는 8.5배로 확대되기도 했다.
5분위의 서적 지출비는 2분기에 월평균 3만2천741원으로 1분위의 지출비에 비해 5.2배에 달했다.서적지출비 배율은 작년 2분기 3.7배에서 4분기 5.5배로 상승한 뒤 1분기 4.7배로 축소됐지만 2분기 들어 다시 5배를 넘어섰다.
반면 식사와 관련된 채소 지출비 배율은 1.2배로 1분위와 5분위가 비슷했다.
5분위 계층의 자동차구입비는 1분위 계층의 8.5배에 달했다.자동차구입비 차이는 지난 2006년에는 25배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5분위 계층은 머리를 손질하는데 월평균 약 4만3천 원을 지출해 1분위 계층의 2.5배에 달했다.이미용 서비스 지출액은 2.5∼2.7배 비율이 유지돼왔다.
시계와 장신구 지출액은 5분위 계층이 월평균 6천282 원으로 1분위 계층보다 5.9배 더 많았다.이 밖에 오락 문화는 4.2배,문화서비스는 2.6배,복권과 통신비는 각각 2.0배 차이를 나타냈다.
◇불황 거치면서 격차확대
교육,운동,외모 등에서 소득계층별 지출액 차이가 크게 벌어진 것은 불황의 그늘을 벗어나면서 자기계발이나 신체관리에 투자할 여력이 고소득층에서 상대적으로 더 커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분기마다 발표하는 소비자태조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1분기만 해도 교육비 지출을 늘리겠다는 응답자 비율은 연소득 1천만원 이하 계층이 12.6%였고,연소득 5천만원 초과 계층이 27.6%로 나타났다.
하지만 3분기 조사에서는 1천만원 이하 계층이 12.1%로 거의 변화가 없는 반면 5천만원 초과 계층에서는 44.5%로 크게 늘었다.두 계층의 비율 차이는 1분기 15.0%포인트에서 3분기 32.4%포인트로 두 배 넘게 커졌다.
경기가 좋아지면서 부자들의 여윳돈이 상대적으로 더 많아진 게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3분기 삼성경제연구소 조사에서 1년 전에 견줘 자산에서 가계부채를 뺀 순자산 규모가 증가했다는 응답률은 1천만원 이하 계층에서 6.0%에 그쳤지만 5천만원 초과 계층은 이 비율이 43.1%나 됐다.주식과 부동산 쪽에서 자산 규모가 커진 게 주요 원인으로 분석됐다.
LG경제연구원 배민근 연구위원은 “식사와 같이 필수적인 소비를 줄이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저소득층이 금융위기 때 교육비 등을 줄이면서 격차가 많이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반면 여유가 있는 부유층은 미래의 소득과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한 선제 투자인 교육에 시간과 돈을 많이 투입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자기투자 격차로 ‘빈부 대물림’ 우려
경기가 불황에서 벗어나면 고소득층은 저소득층에 비해 소비를 늘릴 여력이 더 커진다.임금 수준이 높고 일자리도 안정적인 데다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이 올라 자산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교육,문화,스포츠,미용 등 자기계발이나 관리에 대한 소비는 단순히 소모되는 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잠재적 투자의 성격이 짙다.지식과 학력,건강,외모,문화생활 경험 등은 스스로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사회에서 경쟁력을 키운다.
반면 저소득층은 기본적인 지출을 유지하기에 빠듯하다.쉽게 말해 책 한 권은 사지 않으면 그만이지만,밥 한 끼를 굶기는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러한 차이는 미래 소득 격차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세대를 뛰어넘으면서 ‘빈부의 대물림’으로 연결될 소지가 있다.
같은 상황을 개선하려면 고용 문제부터 풀어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야 한다고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경제연구본부장은 주문했다.그는 “부의 재분배가 이뤄지거나 기업의 투자 여건을 마련하는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손 연구원은 “누진세를 강화하고 고소득 자영업자의 탈세를 막아 소득 불균형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 연구위원은 “소득 불평등이 심한 미국도 ‘헤드 스타트’ 프로그램 같은 제도로써 취학 전부터 차이가 벌어지는 것을 최소화하려 한다”며 “적어도 영·유아기에 같은 출발선을 보장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