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 쇼퍼,유통 공룡을 물다

2009. 10. 12. 11:49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거침없는 마우스, 유통 공룡을 물다


인터넷쇼핑몰 올해 매출 20조 예상

《워킹맘(Working Mom)인 이모 씨(35)는 매주 2, 3회 ‘GS리테일’ 웹 사이트에 접속한다. 이곳에서 각종 반찬거리를 주문하면 불과 몇 시간 만에 집으로 ‘신선 배송’된다. 야근이 많아 백화점에 가기 어려운 그는 옷도 온라인쇼핑몰에서 산다. 외국 브랜드 옷은 구매대행 사이트에서 할인 쿠폰을 받으면 백화점의 절반 가격에 살 수 있다. 이 씨는 주말에 가족과 함께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가긴 한다. 물건을 구경하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다. 실질적 쇼핑 행위는 온라인에서 거의 다 한다. 》

경기침체 계기로 “더 싸게”… 오프라인 유통-제조업체들 살기위해 오픈마켓에 입점
전자제품서 쌀까지 품목 확대
중장년층도 ‘모니터 쇼퍼’ 변신
택배물량은 3년새 2배로 늘어





바야흐로 ‘모니터 쇼퍼(Monitor Shopper)’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발품 대신 모니터 앞에서 손가락 품을 파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경기침체 이후 실직자가 증가하고, 절약이 강조되면서 가격비교가 가능한 온라인쇼핑 시장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미국에선 이들 모니터 쇼퍼를 ‘불황(recession) 쇼퍼’, 일본에선 ‘스고모리(もり·둥지족) 쇼퍼’라고도 부른다.

국내 온라인쇼핑몰 시장 규모는 올해 20조 원으로 예상된다. 올해 국내 백화점 시장 규모가 20조4000억 원으로 예상돼 내년에는 백화점과 온라인쇼핑몰의 시장 순위가 역전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국내에서 불과 13년의 역사를 지닌 온라인쇼핑몰이 79년 역사의 백화점 매출을 추월하는 것이다.

○ 부쩍 높아진 온라인쇼핑몰의 위상

국내 최대 온라인쇼핑몰 G마켓의 지난해 매출액(3조9858억 원)은 전통적 오프라인 유통업체인 신세계백화점(3조2000억 원)을 제쳤다. 인터파크(1조3700억 원)도 매출 1조 원 시대를 열었다. 온라인쇼핑몰의 기세에 롯데마트(4조1686억 원)와 현대백화점(4조3800억 원)도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대형마트와 백화점의 전년 대비 매출 신장률은 각각 10.4%와 6.5%였던 데 비해 온라인쇼핑몰은 13.7%였다.

신세계유통산업연구소는 올해 유통 각 부문 예상 신장률을 온라인쇼핑몰 10.5%, 대형마트 6.1%, 백화점 3.1%로 추정했다. 유통산업발전법 시행령에 따르면 온라인쇼핑몰은 컴퓨터 통신망을 이용해 상품을 판매하는 가상의 영업장이다. 백화점은 3000m²(약 900평) 이상 초대형 종합 소매점(전국 85개), 대형마트는 3000m² 이상 규모에서 생활용품을 점원 도움 없이 소매하는 점포(462개)를 기준으로 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인터넷 쇼핑 인구가 중장년층까지 확산돼 온라인쇼핑몰이 백화점을 제치고 (대형마트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유통채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온라인쇼핑몰은 경기 침체의 수혜도 입었다. 각종 경비를 줄이면서 집에서 생활하는 ‘코쿤(cocoon·누에고치)족’이 할인쿠폰 등을 노리는 모니터 쇼퍼로 부상한 것이다.

그러자 이마트 홈플러스 AK몰 등 주요 대형 오프라인 유통업체도 2006∼2008년 G마켓에 입점했다. 생존을 위해 온라인쇼핑몰과 손잡은 것이다. 동원F&B, 오리온, LG생활건강 등 400여 개 제조회사도 이곳에서 물건을 판다.

○ 모니터 쇼퍼,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꾸나

‘모니터 쇼퍼’는 일상생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서울 용산전자상가 상인들은 과거 소비자들에게 “어떤 제품을 찾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요즘엔 “(인터넷에서) 얼마까지 보고 왔느냐”고 묻는다. 소비자들이 이미 인터넷을 통해 상품 정보와 가격을 꼼꼼하게 살펴 전문가 수준의 안목과 정보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쇼핑몰은 택배 산업 규모도 키웠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택배 물량은 2005년 5억6000만 개에서 지난해 10억4100만 개로 3년 만에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택배 시장 규모는 3조 원 정도다. 국내 전자 상거래 거래액도 기업 간 거래를 포함해 2005년 358조4500억 원에서 지난해 630조900억 원으로 3년 만에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모니터 쇼퍼 계층도 변화해왔다. 백화점 1층 화장품 및 잡화 매장이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분수 효과’를 가진다면 초기 온라인쇼핑몰의 분수 효과는 책과 음반에서 나왔다. 1996년 국내 초창기 온라인쇼핑몰인 롯데닷컴과 인터파크의 당시 주 이용자는 전자 제품을 사는 남성이었다. 1990년대 중반 유니텔 등 컴퓨터 통신을 이용했던 지금의 30대 중반∼40대 초반이다. 하지만 지금 온라인쇼핑몰의 분수 효과는 쌀, 라면, 휴지, 기저귀 등 각종 생활필수품이 일으키고 있다. 아기를 둬 외출하기 힘든 젊은 엄마, 맞벌이 부부뿐 아니라 중장년층까지 모니터에서 생필품을 사고 있다. 판매 품목은 초기 전자제품, 책, 음반에서 이젠 생필품, 식품, 패션으로 확대됐다.

2004년 이후 온라인쇼핑 업계는 ‘오픈마켓’을 모색했다. 오픈마켓은 말 그대로 모든 판매자가 온라인에서 자유롭게 ‘좌판’을 벌일 수 있는 곳이다. 가격경쟁력을 내세운 직거래 방식이 특징으로, 옥션과 G마켓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2월엔 SK텔레콤이 운영하는 오픈마켓인 ‘11번가’도 등장했다.

○ 백화점과 마트들도 온라인으로…

온라인쇼핑몰엔 ‘보이지 않는 손’을 주장한 18세기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재림했다. 소비자들의 ‘집단 지성’은 그동안 업체들이 터무니없이 높게 매겼던 가격을 철저히 외면하기 시작했다. 특히 ‘공동구매(공구)’라는 방식으로 생산자에 비해 미약했던 소비자의 힘을 키웠다. 온라인에서 성공한 공동구매 방식은 거꾸로 오프라인으로 확대됐다. 현대백화점은 온라인 ‘공구’를 벤치마킹해 올 4월 ‘제1회 가정용품 공동구매’ 행사를 열었다.

이 같은 소비자 혁명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대형마트다. 백화점은 꼼꼼한 품질 확인이 필요한 고가() 제품이 많지만 대형마트는 온라인쇼핑몰과 판매 상품군이 많이 겹친다. 최근 옥션이 선보이는 광고 카피도 ‘마트 대신 옥션’이다.

위기감을 느낀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바빠졌다. H몰, 신세계몰 등 백화점이 운영하는 온라인쇼핑몰들은 오프라인 점포와 동일한 상품을 10% 이상 할인해 준다. 이월 재고상품도 많이 구비해 남성 정장 한 벌이 10만 원 정도다.

이동일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그동안 온라인쇼핑몰은 중개 기능과 기술적 요소에만 치중한 감이 있다”며 “앞으로는 차별화된 상품을 개발하는 능력을 키워야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물 흐리는 ‘미꾸라지 쇼핑몰’

짝퉁-직거래 사기 기승… 환불-반품 등 AS 부실

성희종(가명·41) 씨는 7월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골프채를 140만 원에 구입했다. 원래 200만 원 안팎인 물건인데 가격이 싸게 나와 제품 설명서를 꼼꼼히 읽었다. 어딜 봐도 ‘메이드 인 저팬’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제품을 구입한 뒤 한 달이 지나서 친구의 제품과 비교하다가 속은 사실을 알게 됐다. 정품 라벨 밑에 ‘메이드 인 차이나’ 문구가 숨어 있었다. 화가 난 성 씨가 쇼핑몰에 항의하자 쇼핑몰은 “골프채 판매자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판매자인 ‘○○골프’는 “중국 재료를 가져다가 일본에서 조립한 것이므로 ‘메이드 인 저팬’”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올해 상반기 명품·위조상품 민원을 접수한 결과, ‘진품인지 의심스럽다’는 민원 104건 가운데 70% 이상이 인터넷에서 구매한 것이었다. 인터넷 구매는 물건을 직접 보고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충분한 상품 설명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상품 설명만 봐서는 진품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가짜가 의심될 때도 소비자가 이를 직접 밝혀내야 하며, 어렵게 증거를 제시해도 반품이나 환불에 신경 쓰지 않는 오픈마켓이 적지 않다. 오픈마켓은 일종의 ‘중개 사이트’로 환불 여부 등 판매에 따른 책임이 인터넷 쇼핑몰이 아닌 판매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G마켓 관계자는 “위조품 판매를 막으려고 본인 인증, 물건 인증 절차를 거치지만 수십만 종의 물품을 일일이 사전에 모니터링하기는 힘들다”고 주장했다. 또 떠돌아다니는 주민번호로 명의 개설 후 직거래 방식으로 돈을 가로채는 판매자는 잡기가 힘들다고도 했다.

애프터서비스(AS)가 부실하다는 불만 신고도 잇따른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전자상거래 관련 소비자 피해 현황을 집계한 결과 ‘계약 해제·해지(반품 포함)’와 ‘품질’에 불만을 제기한 것이 1949건 중 66.8%인 1302건에 달했다.

유통 전문가들은 ‘에스크로’ 제도를 확산시키고, 오픈마켓이라도 매매 관리 책임을 무겁게 물을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에스크로 제도는 구매자가 물건을 받아 본 후 ‘OK’ 해야 판매자에게 대금이 지급되는 제도다. 현재 영세한 쇼핑몰은 에스크로를 도입하지 않은 곳이 많다.

오픈마켓은 판매자와 물건에 대한 검증을 더 철저히 해야 한다는 주문도 많다. 이정희 한국유통학회장은 “오픈마켓이 위조품 판매 적발이 힘들다고 하는 것은 책임 회피”라며 “판매자 인증, 물건 인증을 철저히 했는지 따져 법적 제재도 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경영학과 오세조 교수는 “온라인 마켓이 지금껏 양적 팽창에 성공했다면 앞으로의 성패는 질적 서비스에서 가려질 것”이라며 “신뢰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