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환율 전쟁

2009. 10. 21. 17:56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글로벌 환율 전쟁

버냉키 Fed의장, 원화 지목 추가절상 우회 압박
유럽은“弱달러로 경기회복 지연” 對美공세
브라질, 외국인자금 유입에 세금부과 초강수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약한 통화’를 사수하기 위한 국가간 대립이 점점 더 심화하고 있다. 가히 통화전쟁, 환율전쟁이다.

겉으론 각국이 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공조’를 얘기하고 있지만, 적어도 환율에 관한 한 한치의 양보도 없는 대결구도다. 자칫 자국 통화가치가 높아질 경우(환율이 낮아질 경우) 경기회복에 치명적 부담이 될 수도 있는 만큼, 모든 국가들이 ‘약한 통화’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각국 최고 당국자들이 노골적으로 상대방의 환율정책을 간섭하고 나선 가운데, 마침내 미국은 우리나라 원화환율에 대해서도 공세적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은 1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바라에서 열린

국제금융위기 관련 컨퍼런스에서 “세계경제가 회복하고 무역량이 다시 늘고 있지만 국제무역 불균형이 또 다시 심화될 수 있다”며 아시아 국가들의 국제 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한 내수 진작 노력을 주문했다. 무역적자와 경기침체탈출이 시급한 미국으로선 ‘약한 달러’가 필요한 만큼, 버냉키 의장의 발언은 중국 일본 한국 등 아시아 경상수지 흑자국들을 향해서 “달러 약세를 용인하라”고 압박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버냉키 의장은 이날 한국의 환율정책을 직접 언급하며, 사실상 추가적인 원화절상(원ㆍ달러환율 하락)을 요구했다. 그는 “한국 원화는 작년 초에서 올 3월까지 미 달러화 대비 40%나 가치가 하락했다”며 “외화자금 조달시장이 안정을 찾은 지금도 한국의 원화는 부분적으로만 회복된 상태”라고 밝혔다. 서울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버냉키 의장의 발언을 보면 미국이 한국에 대해 원화절상을 요구한 것이 분명하다”면서 “아무리 선언적 발언이라해도 우리 외환당국으로선 환율 추가 하락을 저지하는데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은 미국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 16개국 재무장관회의 의장인 장 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유로존은 국제 외환시장에서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는 데 대해 우려한다”고 말했다.

유로존을 대표하는 최고위 당국자의 입에서 공식적으로 ‘약 달러’ 기조에 대한 우려 발언이 나온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 그만큼 유럽 역시 달러약세(유로화 강세)가 심화될 경우 경기회복이 지연될 수 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다는 방증이다.

환율전쟁은 개도국과 신흥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브라질은 20일부터 헤알화 표시 채권주식에 대한 외국인 투자에 2%의 거래세를 물리기로 했다. 기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과도한 글로벌 유동성 때문에 헤알화가 지나치게 절상되고 있다”면서 ‘약한 헤알화’를 위해 세금까지 부과하는 초강수를 뒀다.

미국의 환율공세에 직접적 타깃은 중국. 하지만 중국은 미국의 거센 절상 요구에도 불구, 위안화 환율을 달러당 6.82~6.83위안으로 묶어놓은 채 요지부동이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전쟁의 두 축인 미국과 중국이 과거 플라자합의 같은 공존의 해법을 모색하기 전엔 환율전쟁이 끝나기 쉽지 않다”며 “글로벌 위기가 벗어나는 과정에서 환율을 둘러싼 국가간, 지역간 전선이 더 확대되고 충돌도 잦아질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환율정책 입지도 점점 더 좁아지는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