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행복은 ‘넘침’ 아닌 ‘모자람’에 있다

2009. 10. 23. 10:24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행복은 ‘넘침’ 아닌 ‘모자람’에 있다
여행
 법정의 ‘홀로 사는 즐거움’

법정은 "화사한 봄의 꽃도 좋지만 늦가을 서리가 내릴 무렵에 피는 국화의 향기는 그 어느 꽃보다 귀하다"고 말한다.
지난 주말 올해 아흔인 할머니의 병문안을 다녀왔다. 나이가 들면 아이의 얼굴이 된다는 말처럼 할머니는 몇 년 새 주름살 얼굴이 되셨는데 그만 할머니를 보는 순간 해맑은 아이의 얼굴과 겹쳐졌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반찬이 든 냄비를 들고 이웃 동네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가곤 했다. 어머니가 유행성 독감으로 달포 동안 투병 중일 때 할머니는 나를 손수 키우셨다. 지금 그 할머니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소풍을 가는 것처럼 병상에서 지난날들을 언뜻언뜻 기억해 내고 계신다.

지난해에는 외할머니가 이맘때쯤 돌아가셨다.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도 오늘내일 미루다 결국 장지에서 할머니의 초상화를 마주했다. 그때 얼마나 죄스러웠는지….

할머니와 외할머니. 그분들이 이제 이 세상에서 멀어지고 있다.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고 있다. 우리 또한 시간의 흐름 속에 점차 나이를 먹어가고 있고 언젠가 또 한세대의 마지막 주인공이 될 것이다.

병상에 누워 계신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보고 살아 있음과 ‘현역’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병원에 있는 이들, 세상 나들이를 할 수 없는 이들과 이미 세상을 등진 이들은 더 이상 ‘이 세상의 현역’이 아니다. 세상 나들이를 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그 자체가 살아 있는 자의 행복일 것이다.

① 톡·톡·톡= “이제부터 할 수만 있다면 유서를 남기는 듯한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법정 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샘터 펴냄)’을 읽으면 새삼 살아 있음의 행복함에 감사하는 마음을 들게 한다. 꽃피고 낙엽지고 비와 눈이 내리는 삼라만상의 변화 속에서 삶 또한 변화를 맞지 않을 수 없다. 생로병사의 순환도 그 시간표에 따라 오는 자연의 질서인 것이다. 이때 꽃이 피는 시기에도 꽃을 완상하지 못하고 바삐 살아가는 게 우리의 일상이지만 그럴수록 여유를 갖고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② 톡·톡·톡= 삶에서 가장 신비한 일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생애 단 한 번뿐인 인연이기 때문이다.

③ 톡·톡·톡= 우리는 지금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에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 영원한 존재는 그 누구에게도, 그 어디에도 없다. 모두가 한때일 뿐이다. 살아있을 때 이웃과 따뜻한 가슴을 나눠야 한다. 그래야 사람의 자리를 잃지 않고 사람 된 도리를 지켜갈 수 있다.

요즘 법정 스님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한다. 스님은 “때로는 내 기침소리에 잠에서 깰 때가 있다”면서 “기침이 한밤중에 나를 깨운 까닭을 헤아린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지 않으니 잠들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소식으로 받아들이면 기침이 오히려 고맙게 여겨질 때가 있다”고 적고 있다. 법정 스님의 와병은 늘 스승이 되어 준 또 한 세대가 사라져 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스님처럼 정갈한 언어로 삶의 에세이를 들려줄 수 있는 스님은 또 누구일까.

④ 톡·톡·톡= 요즘 자다가 몇 차례씩 깬다. 쌓인 눈에 비친 달빛이 대낮처럼 밝다. 달빛이 방 안에까지 훤히 스며들어 자주 눈을 뜬다. 내 방 안에 들어온 손님을 모른 체할 수 없어 자리에 일어나 마주 앉는다.

법정은 1970년대 후반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지어 홀로 살았다. 그러나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아지자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1992년 강원도로 떠나 깊은 산중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다. 거처를 아는 이들도 거의 없다. 베스트셀러의 저자이지만 인세 수입은 모두 어려운 이웃들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일정 금액이 모일 때마다 법정은 “이 돈은 수행자에게는 지나친 재산”이라며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래서 정작 자신이 중병에 걸렸을 때는 치료비 일부를 절에서 빌려 써야만 했다.

⑤ 톡·톡·톡= 영국 속담에 자기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자기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그러니 행복과 불행은 밖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고 찾는 것이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새삼 삶이 무엇인지 숙연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는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고 말한다. 소유를 떨쳐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는 “작거나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탐욕을 경계한다.

⑥ 톡·톡·톡= 현대인들의 불행은 모자람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넘침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모자람이 채워지면 고마움과 만족할 줄을 알지만 넘침에는 고마움과 만족이 따르지 않는다.

소유는 때로 어울리지 않는 것을 만들어낸다. 어떤 집에는 고가의 미술품이나 도자기가 집 안을 채우지만 아름다움과 격을 나타내지 못하기도 한다. 그것은 산중의 스님에게도 해당하는 모양이다. 법정도 이를 꼬집었다. 한번은 산중에 어떤 절에 갔더니 한 스님 방에 이름 있는 화가의 산수화가 걸려 있었다. 아주 뛰어난 그림이었다. 그러나 주인과 벽을 잘못 만나 그 그림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천연 산수가 있는 산중이기 때문에 그 산수를 모방한 그림이 기를 펴지 못한 것이다.

⑦ 톡·톡·톡= 그런 산수화는 자연과 떨어진 도시에 있어야 어울리고 그런 곳에서만 빛을 발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있을 자리에 있어야 살아서 숨 쉰다.

박수근의 미술 작품이 위작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때 진품과 비슷한 그림도 있었다. 피카소의 그림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 한 귀부인이 피카소의 그림을 100만 달러에 사 미술 평론가에게 감정을 부탁했는데 진품이라고 했다. 평론가는 피카소의 친구로 그 그림을 그릴 때 현장에 있었다고 했다. 귀부인은 그래도 믿을 수 없어 피카소에게 가서 직접 물었는데 뜻밖에도 진품이 아니라고 말했다. 피카소의 젊은 애인은 진품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 그렸다는 것이다.

“내가 이 그림을 그린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리지널이 아닙니다. 나는 그전에도 그것과 똑같은 그림을 그린 적이 있습니다. 그 시절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똑같은 그림을 반복해서 그렸습니다. 이 그림의 오리지널은 지금 파리박물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도공은 도자기를 구울 때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 단 하나의 흠결이 있어도 폐기 처분한다. 단 하나의 흠결이 원본이 될 자격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반면 피카소는 같은 작품을 반복해 그려 가장 흠결이 없는 그림을 그렸지만 자신의 마음에 부족감을 주었던 그림도 유통시켰던 것이다. 도공과 피카소의 대비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⑧ 톡·톡·톡= “아마도 당신들은 당신들이 갖고 있는 좋은 옷과 기구와 재산이 너무 많기 때문에 거기에 시간과 기운을 빼앗겨 기도하고 명상하면서 차분히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이 없을 것이다. 당신들이 불행한 것은 가진 재산이 당신들에게 주는 것보다 빼앗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오지인 라다크 지방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한 티베트 노인은 현대인들이 불행한 이유에 대해 이와 같이 말한다. 피카소의 그림을 산 귀부인은 바로 돈이 되는 그림에 너무 시간과 기운을 빼앗겼고 결국 근심 걱정을 사서 만들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⑨ 톡·톡·톡= 당신도 부자가 되고 싶은가. 우선 그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라.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당신은 비로소 당신다운 삶을 이루게 될 것이다.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부자다.

다시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언제 꽃이 피었나 했는데 벌써 만추의 절정으로 달려가고 있다. 법정은 “철따라 꽃이 피어나도 볼 줄을 모르고, 달이 뜨는지 기우는지 자연현상에 아예 관심이 없다. 이것이 무엇에 홀리거나 쫓기면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공통적인 증상”이라고 말한다.

⑩ 톡·톡·톡=언제 어디서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그러면 그가 서 있는 자리마다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리라.”
입력일시 : 2009년 10월 19일 15시 42분 42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