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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통계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보여주는 나침반이다. 특히 베이비붐으로 인구통계에서 급격한 변화가 발행할경우 사회.문화.경제적으로 커다란 변화가 생긴다. |
삼성증권은 지난 2007년 하반기~2008년 상반기 사이 ‘미국’과 ‘유럽’에서 심각한 경제 위기, 특히 2008년이 위험한 시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와 함께 이는 단기적인 위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서구 경제권의 잠재성장률 하락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다소 우울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그러나 ‘예측이 맞았다, 틀렸다’를 이제 와서 다시 논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분석을 통해 당시 시장에 내재돼 있던 위험을 상당히 정확하게 예측했기 때문이다. 다만 필자가 과거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꺼내는 것은 당시 분석이 전통적인 이코노미스트들이 사용하는 방식과 다소 달랐다는 점이다. 당시 필자가 사용했던 인구통계적 분석은 앞으로 일반 투자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피터 드러커는 미래를 예측할 때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지표는 인구통계라는 이야기를 했다. 어떤 의미에서 인구통계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다. 특히 베이비붐으로 인구통계에서 급격한 변화가 발생할 경우 사회·문화·경제적으로 커다란 변화가 생긴다. 이 때문에 이에 대한 분석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의 연구와 언론들이 주로 다루는 관련 정보는 대부분 장기 정책 수립의 목적, 즉 연금제도의 문제에 집중돼 있다. 주로 은퇴 인구에 대한 노동인구의 부양 비율 등과 같은 정적인 인구구조 분석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대중은 이러한 변화가 실제 금융시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구체적으로 해석하기가 다소 힘들 수 있다.
인구 변화, 사회·경제적 큰 혼란 불러사실 투자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는 10년 후의 인구구조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보다 지금 당장 주택을 구매하는 수요가 늘고 있는지, 투자와 소비를 담당하는 ‘절대인구수’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등의 동적인 정보일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물론 미국과 영국 등 상당히 많은 국가에서 경제 흐름을 분석하는데 인구통계적으로 접근할 경우 단순히 ‘장기적’인 정책을 위한 자료로서뿐만 아니라 ‘중·단기적’으로도 투자가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먼저 미국의 예를 들어 보자.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경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두 개의 집단을 맹렬하게 비난했다. 우선 첫째, 월스트리트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금융공학에 대한 맹신, 그리고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탐욕 때문에 가장 큰 비난을 받았다. 둘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증권감독원·정부·국회 등 관련 당국자들은 모두 무책임한 정책과 사실상의 방관으로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방치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과연 탐욕 때문에 금융업계 종사자들이 파멸의 길로 달려 들어간 것일까. 굳이 금융권이라고 한정 짓지 않아도 인간의 속성은 과거에도 탐욕스러웠고 앞으로도 탐욕스러울 것이다. 탐욕이라는 인간의 속성이 어느 정도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이것이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FRB와 규제 당국을 비난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실패를 방관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얼마 전까지는 바로 정부의 지나친 규제가 시장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비난을 퍼붓던 사람들이다. 사실 정부의 개입이 시장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오랜 기간 동안 불문율로 통하던 상식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그 수많은 ‘똑똑한’ 월가 종사자와 관련 규제 당국자들이 동시에 공통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만드는 ‘어떤 강력한 힘’이 시장에 존재하지 않았을까.
필자는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 중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인구통계의 변화라고 판단한다. 즉, 아무리 정교한 금융공학적 모델이라도 예측하기 어려운, 단순하지만 매우 강력한 시장의 변화가 2000년 이후 미국과 영국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즉,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소위 앵글로색슨 형태의 부동산 버블의 형성과 붕괴는 바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승전국을 중심으로 공통적으로 형성됐던 베이비붐 세대들의 성장과 은퇴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1946년에서 1964년까지 18년에 걸쳐 형성된 베이비붐 세대의 인구가 무려 7600만 명이 된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공교롭게도 1991년 전후로 미국이 대규모 이민을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따라서 실제 이들 이민을 합치게 되면 베이비붐 세대로 불리는 인구는
약 9000만 명까지 증가하게 된다. 이들 베이비붐 세대가 성장하면서
주택 시장에서는 엄청난 수요가 발생했으며 시장 참여자들로 하여금 위험에 둔감한 환경을 만들었다. 그러나 대공황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베이비붐 세대들이
은퇴 연령대로 진입하면서 수요가 급격히 감소, 시스템의 붕괴를 가져 왔다. 이 때문에 앞으로도 소비, 투자에 활력을 찾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2차 대전 승전국에 나타난 공통적 현상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현상이 미국은 물론 2007년 영국에서도 거의 동일한 시기에 동일한 형태로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과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이기 때문에 경제 현상 역시 유사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본의 예는 이러한 인구통계의 변화가 자산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었던 일본 베이비붐은 서구 경제권과 달리 비교적 단기에 발생했으며 실제 이들 단카이 세대들의 성장과 은퇴가 1980년대 후반 일본 자산시장의 엄청난 버블을 야기했던 중요 요인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일본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되는 우리는 과연 어떻게 될까. 한국 역시 고령화로 인해 다른 국가들에서 나타난 공통적인 현상들, 즉 잠재성장률의 하락, 부동산 가격 하락 및 주식시장의 정체와 같은 부정적인 현상들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정부의 정책, 세계화하에서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 등이 이러한 부정적인 영향을 어느 정도 막아줄 것이지만 일단 고령화가 자산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우려와 달리 일단 긍정적인 것은 아직 한국 투자가들에게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녀들이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사교육비의 부담으로 가처분소득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 크게 제약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즉,
미국의 경우 소비가 가장 왕성하게 이뤄지는 시기는 45~49세다. 이 때문에 2000년대 들어 미국에 소비 버블이 발생한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녀가 대학에 진학한 이후, 즉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까지 소비가 정점을 이룬다. 따라서 낙관적인 시나리오하에서는 2014년, 그리고 보수적인 시나리오하에서도 최소한
2012년까지 한국의 고령화 문제는 크게 이슈가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히려 이들 인구 집단의 소비 및 투자 증가는 경제 및 주식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된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과 일본 등의 경우도 베이비붐 세대 또는 베이비붐 이후 세대(일본) 등의 성장으로 아시아 소비시장의 성장이 2015년까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한국과 일본의 고령화, 1자녀 문제로 인한 중국의 심각한 인구구조 불균형이 이슈가 되는 것은 2015년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기봉 삼성증권 거시전략투자 파트장 arma.lee@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