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금고지기 "저요, 저요"

2010. 4. 21. 09:00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지자체 금고지기 "저요, 저요"

한국일보 | 입력 2010.04.20 21:55 |

은행들 수십조원 유치 사활 걸고 쟁탈전
과도한 기부금 약속에 특판상품까지 '과열'
서울시 6월 선정… 우리銀 수성여부 촉각

지방자치단체 금고를 장악하라!

언뜻 봐선 무슨 강도 얘기 같지만, 실은 요즘 은행권에 떨어진 특명이다. 지자체 금고를 차지한다는 것은 해당 지차체의 주거래은행이 된다는 뜻. 그 혜택은 어마어마하다. 그러다 보니 지자체 금고 쟁탈전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한해 예산만 21조원에 이르는 서울시가 2011년부터 4년간 시(市) 금고를 맡을 은행에 대한 공모 절차에 들어갔고, 인천시와 경상북도도 올 하반기 금고지기 역할을 해줄 은행을 선정할 예정. 그러다 보니 금융감독원이 최근 '옐로 카드'를 내보였을 정도로, 은행간 금고 경쟁은 가열되는 분위기다.

서울시 금고, 이변 올까

은행 입장에서는 지자체 금고는 '블루 오션'이다.

무엇보다 수조, 많게는 수십조원에 이르는 지자체 예산을 원가 낮은 예금으로 유치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여기에 신용도가 안정적인 공무원들을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는 것도 은행 입장에선 매력적인 요소다.

최근 은행간 경쟁이 치열한 곳은 단연 서울시 금고다. 시 금고를 유치하기만 하면 서울시 예산 21조원에 25개 구청 예산 18조원까지, 총 39조원의 돈을 운용할 수 있다. 대형은행 자산의 20%에 해당하는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한꺼번에 확보할 수 있는 것. 예산 수입ㆍ지출을 감안하더라도 하루 평균 잔액이 3조~4조원에 달해, 은행들로선 원화 유동성 확보에도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은행들이 더 주목하는 것은 서울시 공무원 1만명과 산하기관 및 구청직원 1만5,000여명이다. 시 금고가 되면 시청과 구청안에 지점을 내고 영업을 할 수 있어,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독점적 영업을 펼칠 수 있다.

서울시 금고 쟁탈전에서 가장 앞선 곳은 우리은행. 1915년 조선상업은행 시절부터 상업은행을 거쳐 현재까지 96년간 서울시 금고를 맡아왔던 '터줏대감'이다. 여기에 서울시 행정 관련 전산시스템을 구축해 놓은데다 서울시와 각종 업무 협약으로 탄탄한 관계 맺어왔기 때문에, 6월쯤 선정될 서울시 금고 관리은행으로 이번에도 선정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관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농협, 기업은행 등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 은행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우리은행을 제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번엔 떨어지더라도 4년 뒤 있을 재입찰을 대비해 최대한 준비를 할 것이다"고 말했다.

농협의 힘

IMF체제 이전 지자체 금고는 ▦시 금고는 상업은행 ▦도 금고는 제일은행으로 양분됐었다. 하지만 은행권 판도가 바뀌면서, 지자체 금고시장에도 대규모 지각변동이 일었다.

이후 가장 부상한 곳은 농협. 현재 서울시를 제외한 나머지 지자체 금고는 농협이 사실상 싹쓸이하고 있다. 14개 주요 지자체의 금고 중 농협이 발을 담그고 있지 않은 곳은 서울과 광주(광주은행) 2곳 뿐이다. 서울시 이외 지자체들은 통상 ▦일반회계 예산을 담당하는 제1금고 은행과 ▦특별회계 예산을 담당하는 제2금고 은행 등 두 곳을 정해놓고 있는데 농협은 ▦8개 지자체에선 1금고 은행 ▦4개 자자체에선 2금고 은행을 맡고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농협의 강점에 대해 "지점 네트워크가 워낙 넓은데다 지역농협을 중심으로 끈끈한 협력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엔 신한은행의 선전도 돋보인다. 신한은행은 현재 인천시의 제1 금고은행, 경기도의 제2금고 은행에 선정되는 등 지자체 금고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부작용도 속출

금고 쟁탈전이 뜨거워지면서 부작용과 후유증도 속출하고 있다. 은행들이 지자체에 너무 큰 액수의 기부를 약속하는가 하면, 특정 지자체 대상 특판상품까지 내놓는 등 과열 양상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결국 금융감독원이 "금고 입찰시 각종 기부금은 최근 3년간 평균 영업이익의 1%(지방은행은 2%) 수준으로 축소하라"고 지시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됐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간 서비스와 금리 등이 엇비슷하다 보니 결국 기부금 같은 부분이 당락의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면서 "자칫 제살깎기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