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도 자동차를 팔아?

2010. 5. 3. 18:03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은행에서도 자동차를 팔아?

매경이코노미 | 입력 2010.05.01 15:23

자동차 할부시장에서 금융권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기존 자동차 할부금융시장은 캐피털업계의 텃밭이었다. 하지만 카드사가 자동차 금융시장 비중을 높이면서 캐피털 중심의 시장구도가 흔들리고 있다. 실제로 카드로 신차를 구매한 금액은 2008년 7조132억원에서 지난해 11조9553억원으로 70.5% 증가했다.

최근에는 카드사에 이어 은행권까지 자동차 할부시장 경쟁에 뛰어들었다. 금융권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동차 할부 금리는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신차 평균 할부 금리는 12.5%였지만, 최근 최저 5%대 금리를 제시하는 상품까지 등장했다.



은행권의 무기는 단연 저금리다. 최근 은행권이 제시하는 6%대 금리는 캐피털회사보다 평균적으로 2%포인트 정도 낮다. 게다가 은행권 자동차 할부금융 상품은 고객들이 직접 방문해 대출 상담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취급수수료와 근저당 설정 수수료가 없다. 이창호 하나은행 상품개발부 과장은 "수수료까지 고려하면 은행권과 캐피털회사의 금리 차이는 더 벌어진다"고 말했다.

지난 4월 12일 신한은행은 신한카드와 연계해 신한에스모어마이카대출 상품을 출시했다. 신한카드의 에스모어 체크카드로 차를 구매하면, 카드 대금이 은행 대출과 연동돼 결제되는 상품이다. 은행 대출 이자가 제2 금융권 이자에 비해 저렴하기 때문에 비교적 저렴한 금리로 차를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신한은행은 6월 말까지 추가로 0.3%의 금리를 우대하고 있어 최저 6.2%의 금리로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다. 신한은행은 "신한에스모어마이카대출은 대출이자 절감, 캐시백, 카드 포인트 등 은행과 카드 상품의 장점을 모았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이미 지난 2월 18일 신한마이카대출을 출시하며 은행권 최초로 자동차 할부금융시장에 뛰어든 바 있다. 당시 신한마이카대출은 7%대 금리를 제시해 주목을 받았다. 4월 16일 현재 813건(127억3800만원 규모)이 판매된 상황이다.

하나은행 역시 4월 12일 직장인오토론을 출시했다. 직장인오토론은 재직 중인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며, 최저 연 6.45%의 금리로 자동차 신규 구입자금을 대출한다. 대출기간은 은행권에서 가장 긴 10년까지 원리금을 분할 상환할 수 있다.

이 밖에 우리은행은 자동차 할부금융 상품인 우리V오토론을 조만간 출시할 계획이며, 2001년까지 오토론 상품을 판매한 바 있는 KB국민은행도 자동차 할부금융 상품 재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카드사는 이미 자동차 할부시장에서 캐피털사와 일전을 벌이고 있다. 캐피털사의 자동차 할부금융과 달리 신용카드로 신차를 구입하면 할부금융 취급 수수료와 중도상환 수수료, 근저당 설정료가 들지 않아 부대비용을 줄일 수 있다. 여기에 카드 포인트, 캐시백, 마일리지 적립 등 카드 연계 부가서비스가 장점이다.

자동차 카드 할부를 운영하는 회사는 신한카드, 삼성카드, 롯데카드다. 상환을 3년 기준으로 할 경우 금리는 롯데카드 8.8%, 삼성카드 9%, 신한카드 10.7%다. 다만 삼성카드는 5월부터 8.7%로 금리를 낮출 예정이며, 신한카드는 1~1.5%의 금리를 캐시백 형태로 되돌려준다. 삼성카드는 "금리 자체는 높을 수 있지만, 신용카드나 현금으로 구입할 경우 자동차회사에서 현금 할인이 제공되기 때문에 실제 비용 측면에서 보면 캐피털사의 자동차 할부금융 상품보다 최대 163만원 싸게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신한카드는 자동차 할부금융 상품도 출시했다. 신한-삼성화재다이렉트할부 상품은 삼성화재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신한카드의 3~12개월 단기 자동차 할부 고객을 대상으로 한다. 금리는 최저 4.5%이며, 취급수수료는 1.5~4.5% 수준이지만, 4월 중 2000만원 이상을 이용할 경우 취급수수료의 1.5%(최대 50만원)를 캐시백 형태로 되돌려 받을 수 있다. 신한카드는 이 밖에도 에르고다음다이렉트보험과 함께 유사한 자동차 할부금융 상품을 개발하기도 했다.



캐피털업계는 자동차 구입 시 편의성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은행이나 카드사의 자동차 할부 상품을 이용하려면 직접 지점을 방문하거나 별도의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캐피털사는 영업사원이 자금조달과 관련된 부분까지 현장에서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상품 종류도 다양하다. 카드나 은행권이 원리금 균등 방식의 상환 방식만 제시하는 데 비해 캐피털사는 매월정액식, 원금유예식, 거치후납식, 자유상환식 등 다양한 상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캐피털사는 "금리 면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캐피털사는 경차 등 일부 차종은 다른 금융사보다 저렴한 할부 금리를 제시하고 있다. 현대캐피탈은 최근 현대기아자동차의 주요 인기 차종에 대해 취급수수료 1~2%를 포함해 연 3~5% 특판 금리를 제시했다. 현대캐피탈은 "현대차 물량의 75%를 5% 이하 저금리로 제공한다"고 말했다.

업계 2위 아주캐피탈도 쌍용자동차와 GM대우차에 특판 금리를 적용해 판매한다. 쌍용차 체어맨과 GM대우의 윈스톰, 토스카의 경우 제로금리인 상품이 있으며, 자동차 할부금융 이용 고객에게 개인신용대출 상품인 내게론 이용 금리를 인하하는 등 혜택을 제시하고 있다.

캐피털사의 근저당비 설정에 대해 캐피털업계는 "은행은 최소한 신용등급 4등급 이상 우량 고객을 대상으로 자동차 할부 상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당연히 근저당을 설정할 이유가 없다. 캐피털사도 신용이 좋지 않은 신용등급 7등급 안팎의 고객들을 대상으로 근저당을 설정한다"고 반박한다.

이 밖에도 캐피털사는 할부를 신청한 이후 불의의 큰 교통사고를 당한 고객에게 할부금 상환을 면제하는 제도나 신차 교환 프로그램을 제시하며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고 있다. 신차 교환 프로그램은 현대캐피탈을 통해 현대기아자동차를 구입할 경우, 1년 이내에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 차량 대신 새 차량으로 교환할 수 있는 제도다. 자동차 사고 수리비가 차량 가격의 30% 이상, 자기 과실이 50% 이하일 경우 사고차량을 신차로 교환받을 수 있고 별도로 100만원의 위로금까지 받을 수 있다.



지난해 여신전문금융회사의 자동차 할부 금융 취급액은 13조661억원에 달했다. 이는 전체 자동차 판매액 55조5111억원의 23.5%에 해당하는 대형 시장이다. 게다가 자동차 할부 금융은 일정한 급여를 받는 직장인들이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연체율이 낮고 수익성은 높다. 이처럼 규모가 크고 수익성이 높은 안전자산이라는 사실이 경쟁을 부추겼다.

최근 금융권이 자동차 금융시장을 노리는 이유는 업권별로 다르다. 일단 은행권은 최근 마땅히 자금을 운용할 곳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다.

대기업 투자가 위축되고 경기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기업 대출이 위축된 상황이다. 여기에 부동산 경기까지 침체되면서 주택 대출 역시 정체됐다. 올해 초 특판 예금을 통해 대거 돈을 쌓아둔 은행권은 새로운 대출시장으로 자동차 할부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카드사의 경우 카드업계의 순위 경쟁이 영향을 미쳤다. 현대카드는 취급액을 기준으로 지난해 시장점유율 10.9%를 기록하며 사상 최초로 전업계 카드사 2위를 기록했다. 반면 업계 1위 신한카드는 2007년 23.1%를 기록하던 시장점유율이 지난해 20.6%까지 하락했고, 삼성카드는 10.7%를 기록하며 3위로 내려앉았다. 여기에 기업구매카드 실적을 제외한 카드사용 실적을 기준으로 현대카드는 최근 KB카드까지 제치면서 카드업계의 경쟁구도를 심화시키고 있다.

카드업계는 현대카드가 선전하는 이유 중 하나로 압도적인 자동차시장 점유율을 꼽고 있다. 지난해 자동차 카드 판매 실적 중 현대카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70%, 같은 기간 현대기아차의 카드판매 실적에서 현대카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79.2%다. 이는 전체 카드시장에서 약 1.6~2%의 점유율 증가 효과가 있다. 이에 카드사들은 자동차 카드 할부시장 진출이 고객을 확보하고 경쟁사 점유율을 낮추는 1석2조의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삼성카드는 2006년 출시했던 오토캐시백 판매를 올해 강화하기도 했다. 오토캐시백은 자동차를 구입할 때 납부하는 선수금을 자동차회사에 내는 대신 삼성카드에 내면, 카드사가 이를 카드결제로 처리하고 고객에게 선수금의 약 1%를 돌려주는 제도다.

다만 현대자동차가 금융 당국에 유권해석을 의뢰하면서 현재 삼성카드는 오토캐시백 판매를 중단한 상황이다. 금융위원회는 오토캐시백 상품구조가 여신전문금융업법상 신용카드사 업무를 벗어날 여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준수 금융감독원 여신전문총괄팀장은 "신용카드는 카드결제 이후 돈을 입금해야 하는데, 고객이 돈을 카드사에 입금 후 카드사가 결제를 하는 오토캐시백의 상품구조는 여신전문금융업법상 신용카드업의 본질과 상이하다고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