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하늘에 맡긴다는 식으로는 하지 않았다”

2010. 5. 15. 18:36C.E.O 경영 자료

[j Leadership] ‘비즈 리더와의 차 한잔’ 강덕수 STX 회장 [중앙일보]

 

2010.05.15 00:06 입력 / 2010.05.15 17:47 수정

“운명을 하늘에 맡긴다는 식으로는 하지 않았다”

STX그룹 강덕수 회장은 도전적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샐러리맨이었다. 외환위기 직후 퇴출됐던 쌍용중공업(현 STX엔진) 사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2001년 전 재산 20억원을 투자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이 회사를 인수했다. 그후 9년 만에 재계 12위(공기업 제외)의 그룹으로 키워냈다. 인수합병(M&A)과 경영 혁신을 통해서였다. 그의 도전과 성공 요인에 대해서도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4일 서울 남대문 근처의 STX 사옥에서 그를 만났다.

쌍용중공업을 인수한 것은 그의 나이 51세 때인 2001년. 쌍용그룹에 입사한 지 27년 만이다.


● 남들 퇴직할 나이에 전 재산을 쏟아부었습니다. 부인이 반대했을 것 같은데요.

“반대하고 말고가 없었습니다. 인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퇴출 당시 나는 CFO(최고재무책임자·전무)였습니다. 회사가 어려워 직원들 월급을 제대로 못 줬습니다. 돈을 빌리려면 CEO(최고경영자)가 보증을 서야 했는데 그러려고 하지 않았어요. 할 수 없이 내가 했어요. 그게 수백억원에 달했습니다. 회사가 망하면 이 돈을 물어내야 할 판이었습니다. 감옥에 갈 수도 있었지요. 회사를 살려야 내가 살 수 있는 상황이라 직원들과 같이 인수한 겁니다. 처음부터 오너가 될 작정은 아니었어요.”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쌍용그룹이 위기를 맞았다. 2000년 3월 정부는 52개 퇴출기업 명단을 발표했다. 쌍용중공업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자 쌍용그룹은 이 회사를 2000년 12월 한누리투자증권 컨소시엄에 매각했다. 한누리는 CFO였던 강 회장을 사장으로 선임했다. 이어 강 회장은 임직원들과 같이 주식을 사기 시작했다. 합쳐서 22.9%의 지분율을 가진 최대주주가 되면서 이 회사는 강 회장 소유가 됐다.

● CEO도 서지 않는 보증을 왜 CFO가 섰나요.

“처음엔 몰랐습니다. 영업본부장으로 있다가 CFO가 사표를 내는 바람에 갑자기 후임자가 됐어요. 은행에서 사인하러 오라고 하니 ‘그래야 하는가 보다’고 생각했지요. 그 후 얼마 안 있어 회사가 퇴출됐어요. 왜 퇴출되는지 이유도 몰랐어요. 하지만 모두 살려면 회사를 인수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당시 주가는 폭락해 900원 정도 했습니다. 담배 한 갑 태우지 않으면 주식 한 주를 살 수 있다며 ‘회사 구하기 운동’을 벌였습니다.”

지금이야 편하게 말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인생의 전부를 거는 일이었다. 잘못되면 길거리로 나앉거나 감옥에 갈 판이었다. 강원도 정동진으로 가족여행을 떠난 건 그래서였다. 거기서 자녀들에게 “아빠는 다니던 회사를 직접 경영할 생각이다. 전 재산을 몽땅 넣어야 할 것 같다. 실패하면 너희들 학비를 대지 못할 수도 있으니 맘을 단단히 먹어라”고 말했다. 이렇게 인수한 회사가 오늘날 거대 그룹의 발판이 됐다.

● ‘큰 부자는 하늘이 내린다’고 합니다. 사주팔자에 재운이 있는 건 아닌가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다만 결정하기 전에 준비는 철저하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손익계산은 철저히 했습니다. 기업을 인수할 때도 그랬고요. 된다고 확신이 들 때 비로소 시작했습니다. 운명을 하늘에 맡긴다는 식으로 추진한 적은 없습니다. 출구전략도 미리 만들어뒀습니다.”

출구전략? 이런 얘기다. 오늘의 STX를 만든 건 조선과 해운이다. 2001년 대동조선(지금의 STX조선), 2004년 범양상선(STX팬오션)을 인수하면서 그룹 기초가 잡혔다. 인수하자마자 조선과 해운 경기가 상승세를 탔다. 엄청난 행운이었다. 하지만 인수 당시에는 예측하지 못했다. 그래서 잘못될 경우를 대비해 미리 출구전략을 짜뒀다. 가령 대동조선을 인수하면서 들인 돈은 1000억원. 하지만 이듬해 일반 투자자와 금융기관에 주식을 팔아 700억원, 다시 이듬해에 외국계 은행에 주식을 팔아 400억원을 회수했다. 투자액을 모두 뽑고도 100억원이 남았다. CFO 출신이기에 생각해낼 수 있었던 시나리오였다.

● 하지만 사업 성패가 계산만으로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조선과 해운으로 뻗어나가는 그림은 종합상사(㈜쌍용) 다닐 때 생각해두었던 겁니다. 그때 2010년까지의 사업계획을 짜면서 조선과 해운업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나중에 도움이 된 것이지요.” 실제로 그는 STX를 출범한 지 5개월 만에 대동조선을 인수했다. 여력이 조금 생기자 범양상선도 사들였다. ‘기계-조선-해운’이라는 그림이 없었더라면 이 같은 속전속결은 없었을 것 같다.

● 창업을 했다기보다는 남의 기업을 M&A 해서 회사를 키웠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있겠지요. 하지만 잘못 알고 하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M&A 한 건 많지 않습니다. 4건 정도입니다. 또 우리는 M&A만으로 성장한 회사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차익을 얻기 위한 투자 목적으로 인수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건 기업가의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또 아무 회사나 인수하지 않습니다. 기존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만 했습니다. 조선·해운·에너지 전문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원칙과 기준을 갖고 있었지요.”

사업 기반이 다져지자 그는 해외에 승부를 걸기 시작했다. 2007년 중국 다롄(大連)에 일관조선소를 짓고, 세계 최대 크루즈 및 해양플랜트 업체인 노르웨이의 아커야즈선사도 인수했다. 이라크 재건사업에도 뛰어들었고 아프리카 가나에서 100억 달러 주택 프로젝트도 땄다. 아랍에미리트(UAE)와 브라질·인도네시아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1년에 절반 이상은 해외에서 머무를 정도다.

● 제3세계에 공을 많이 들인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 연상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습니까.

“그분과 어디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김 회장과 이병철·정주영 회장 같은 분들은 국내 경제사에 끼친 족적이 대단한 분들이지요. 저는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 후발 그룹이기 때문에 해외로 나간 것입니까.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옛날과 달리 지금은 틀이 다 짜여져 있는 상황입니다. 국내에서 뭘 하나 하려 해도 이미 선발 기업들이 버티고 있어 쉽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일등 하는 학생이 서울 와서 일등 하기 어려운 것처럼요. 하지만 해외는 그렇지 않습니다. 개척할 분야도 많고 경쟁도 덜 치열합니다. 내가 만약 성공했다면 이 때문일 것입니다. 해외에서 승부를 걸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이른바 ‘후발자의 설움’이다. 강 회장도 한때 자신을 비주류라고 표현한 바 있다. 특히 선발업체인 두산과 자주 마찰을 빚었다. 선박용 엔진과 디젤발전 등 겹치는 사업이 많아서였다. 강 회장 지분이 얼마 되지 않던 2004년 초 두산엔진(당시 HSD엔진)은 STX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최대주주가 되면서 강 회장 경영권이 위협받았다.

● 방어하느라 힘들었겠습니다.

“직원들이 회사 주식을 상당히 갖고 있었어요. 하지만 주가가 급등하자 많이 팔았습니다. 그때 두산이 주식을 매집한 것이지요. 주주였던 산업은행 등의 도움으로 간신히 방어했습니다.” 두산과는 그 후에도 인력 스카우트 분쟁 등 다툼이 많았지만, 지금은 잘 지낸다고 한다.

● 지난해 재계의 본산인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부회장으로 선임됐습니다. 주류가 됐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그런 생각은 안 해 봤습니다. 단지 회사 규모가 그만큼 커졌구나 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전경련에서도 조선과 기계·해운업의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꼈겠지요.”

● 요즘 기업가 정신이 약해졌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역시 산업의 틀이 짜여져 있기 때문인가요.

“그렇다고 봅니다. 왕성한 도전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도 많이 있습니다. 단지 환경이 1960~70년대와 다를 뿐이지요. 창업자가 성공하기 어려운 여건입니다. 해외에서 승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강 회장은 이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다롄에 일관조선소를 건설할 당시 경쟁업체들로부터 ‘기술 유출’이란 비난을 받았다. 중국이 한국의 조선기술을 배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강 회장 생각은 달랐다.

“그들에게 자동차나 전자업체가 중국에 공장 짓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말했습니다. 첨단기술업체가 나갈 때는 아무 말 하지 않다가 왜 우리만 지적하느냐고 했지요.”

● 해외에만 치중하면 국내 일자리는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STX만 해도 전체 직원은 5만8000명이지만 이 중 한국인은 3분의 1(1만8000여 명) 정도입니다.

“그런 측면은 있습니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젊은 인재들도 해외로 뻗어나가야지요. 해외에서 일자리를 찾고 사업을 일으켜야 합니다. 또 해외가 커진다고 해서 국내 일자리가 줄어드는 건 아닙니다. 현지 사업장에 현지인만 쓸 수 없습니다. 우리 직원들도 보내야죠. 다롄에는 1000명가량 나가 있습니다. 국내에서만 사업했다면 그만한 인력을 새로 뽑지 못했을 겁니다. 젊은이들의 눈높이도 낮아져야 합니다. 국내에 외국인들이 많이 들어와서 일하고 있는데, 이는 젊은이들이 그 일을 하려 하지 않아서입니다.”

그는 자녀가 셋이다. 위로 딸이 두 명이고, 막내가 아들이다. 큰딸은 29세. 승계 여부를 물었다.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승계하진 않을 겁니다.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이 맡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글=김영욱 경제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안혜리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강덕수 회장은

1950년 경북 선산 출생
동대문상고, 명지대 경영학과 졸업
1973년 쌍용그룹 입사
2000년 쌍용중공업 사장
2001년 쌍용중공업 인수해 STX 설립
2002년 산단에너지 인수(STX에너지)
2003년 STX그룹 회장 취임
2004년 STX중공업 설립
2005년 범양상선 인수(STX팬오션)
2007년 아커야즈 인수(STX유럽)
2009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STX그룹 성장세

매출액: 2000년 2605억원 → 2009년 24조5573억원
자산: 2000년 4391억원 → 2009년 32조7470억원
종업원 수: 2000년 848명 → 2009년 5만8000명
(자료: STX) 

j 칵테일 >> 칭기즈칸·박정희 존경

강덕수 회장은 신입사원 면접을 직접 본다. 대그룹 오너로는 드물다. “신입사원에게 거는 기대가 남달라서”라고 한다. 지금은 그룹이 연합군 체제다. 인수합병(M&A)한 기업이 많아서다. 임원들은 대부분 인수 기업이나 외부에서 스카우트해 온 사람들이다. 이 때문에 그룹의 고유 문화가 아직 없다. 그가 ‘하나의 STX(One-STX)’를 강조하는 까닭이다.

그는 온정주의적 리더로 알려져 있다.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쫓아내는 일은 없다. 하지만 부정부패에는 가차없다고 한다. 스스로도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는 편이다. 사외이사들에게 간혹 선물하는 일이 있는데, 이때 강 회장은 개인 돈으로 지불을 한다. ‘이건 내가 하는 선물’이라며 고집을 꺾지 않는다. 샐러리맨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쌍용에서 총무부장으로 있을 당시 회사 차를 개인 용도로 쓰지 못하도록 했다. 임원들도 이 규정에서 예외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칭기즈칸과 세지마 류조 전 이토추상사 회장을 존경한다. “세계를 개척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존경하고 있다. “정부가 기업을 많이 도와주도록 노력했다”는 이유에서다. 골프는 보기 플레이 수준이고, 등산도 가끔 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