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등급 쓰러지고 D등급 살아나고… 황당한 신용평가

2010. 7. 19. 08:57이슈 뉴스스크랩

C등급 쓰러지고 D등급 살아나고… 황당한 신용평가

한국일보 | 입력 2010.07.18 21:07 | 수정 2010.07.18 21:45

 

#1. 대구 지역을 대표하는 건설사 ㈜청구가 지난 16일 최종부도를 냈다. 외환위기 여파로 법정관리를 거친 뒤 재기한 이 업체가 지난달 말 채권단으로부터 받은 신용평가등급은 C. 분명 회생 가능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대상이었지만, 평가를 받은 지 한 달도 못돼 D등급(퇴출 또는 법정관리)의 운명을 걷게 됐다.

#2. 지난달 말 채권은행으로부터 C등급 판정을 받았던 33년 역사의 토종 의류업체 톰보이 역시 지난주 최종 부도처리된 후 현재 상장폐지 절차를 밟고 있다. 2년간 적자였던 영업실적은 올들어 흑자 전환했지만 고질적 자금난이 발목을 잡았다. 톰보이는 올 5,6월 유상증자와 채권발행에 잇따라 실패했다.

은행권의 기업 신용위험 판정결과의 부실 논란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지난달 말 평가결과가 나올 때부터 '부실판정'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려는 점점 더 현실화되고 있다.

C등급 줄줄이 퇴출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1월과 3월, 그리고 올해 5월 등 최근 3차례 실시된 기업신용위험평가에서 C등급을 받은 33개 건설사 중 7개가 법정관리를 받거나 신청을 했다. C등급 기업은 부실가능성이 있지만 채권단이 구조조정과 자금지원을 통해 충분히 회생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기업. 하지만 C등급 건설사 5개 중 1개가 D등급(퇴출) 처지가 되면서 신용위험평가의 신뢰성은 크게 훼손됐다.

부실논란은 이미 지난해부터 계속된 상황. 지난해 B등급 판정을 받은 성원건설, 신창건설, 현진은 그렇다 쳐도 A등급으로 인정받은 남양건설과 금광기업조차 1년만에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 신세를 지고 있다.

상황은 올해도 마찬가지. 이미 청구(건설사), 톰보이, 티앤엑스중공업등 3개 기업은 C등급 판정 후 3주도 지나지 않아 부도를 냈다. 반면 D등급을 매긴 2개 기업(대선건설, 금광건업)은 오히려 자력 정상화의 길을 걷고 있다. 이번 평가에서 D등급을 받은 한 회사 관계자는"재무구조나 사업 포트폴리오 등 여러 면을 따져봐도 C등급, 혹은 B등급 회사와 차이가 없는데도 D등급을 받았다"며 "이런 식의 평가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비판했다.

평가 시스템 손질해야

신용위험평가에서 허점이 노출되고 있지만 채권단은 "금융당국과 은행이 마련한 공통기준에 따라 점수를 산정해 등급을 매긴 만큼 평가 자체에는 문제가 있을 수 없다"는 입장. 하지만 획일적 기준에 맞춰, 한꺼번에 구조조정 명단을 발표하는 현행 신용위험평가 구조를 고치지 않고서는 부실논란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 임원도 "수백개 기업을 한꺼번에 평가해야 하는 현 시스템에서는 정확한 진단에 한계가 있다"며 "연례 행사하듯 몰아치기로 할 것이 아니라 상시 구조조정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신용위험평가를 위해선 '선(先) 평가-후(後) 지원'시스템을 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C등급 판정을 받은 기업이라도 채권단간 이견 조율 실패로 워크아웃이 무산돼 법정관리로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평가부터 하고 지원방안은 나중에 고민하는 식이 아니라 자금 지원방안 현실성 여부를 판단한 뒤에 최종 평가를 내리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