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과 결혼한 순백의 디자이너 앙드레김 별세

2010. 8. 13. 09:09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패션과 결혼한 순백의 디자이너 앙드레김 별세

한국경제 | 입력 2010.08.12 21:39 | 수정 2010.08.13 01:20

 

12일 서울대병원서 대장암으로
禁男의 벽 깬 1호 남성 디자이너

유명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본명 김봉남)이 12일 저녁 별세했다. 향년 75세.앙드레 김은 대장암과 폐렴 증세가 악화돼 그동안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그는 1962년 반도호텔에서 첫 의상발표회를 연 이후 48년 동안 '한국의 패션'을 전파하며 한길을 걸었다. 1960년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패션업계에 '1호 남성 디자이너'란 파격적인 타이틀을 안고 '최초'라는 수식어를 몰고 다닌 앙드레 김은 인터뷰 때마다 '(자신을) 종합예술인'이라고 늘 강조했다. 오페라나 발레,연극과 같은 종합예술에서 감동을 느끼듯 패션 의상도 감동을 자아내는 창작예술이라는 게 그의 패션철학이기 때문이다.

앙드레 김은 1935년 경기 고양군 구파발에서 5남매 가운데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이었지만 어릴 적부터 각종 미술상을 휩쓸 정도로 남다른 예술적 감수성을 보인 그는 6 · 25전쟁 피란시절 부산에서 접한 오드리 햅번 주연의 영화 '파리의 연인' 등을 보면서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꿈꾼다.

25세 되던 해인 1961년 국제복장학원에서 옷 만드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대학에는 의상학과가 없던 시절이었다. 1962년 서울 소공동에 의상실을 열고 국내 패션업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웅장하고 화려한 앙드레 김 스타일의 의상은 양갓집 자녀나 부잣집 부인,대사 부인,연예인이 즐겨 찾으며 비싼 값에 팔려나갔다. 1960년대 톱스타인 최은희 엄앵란씨의 의상은 물론 최수종 하희라 부부의 웨딩의상과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씨의 무대 의상까지 그의 손을 거쳤다.

하지만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금남의 구역'인 패션업계에 종사한 그에게는 늘 색안경을 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 178㎝의 건장한 체격에 흰색 옷만 입었던 그는 어딜가도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다. 각종 악성 루머들이 그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오직 '패션'에 대한 열정 하나로 일흔다섯이 넘은 나이에도 끊임없이 해마다 10여차례씩 장대한 패션쇼 무대를 선보이며 '국민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전문모델이 아닌 연기파 배우를 늘 고집하는 이유는 패션을 종합예술의 세계로 이끌기 위해서다. 그의 무대에선 40분 동안 한편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그는 생전 인터뷰를 통해 "최신 트렌드의 의상을 선보이기보다 음악과 모델들의 몸짓,표정까지 하나로 조화시킨 새로운 무대 예술을 개척하고 싶다"며 "이 같은 예술적 감수성은 전문 배우들이 잘 표현해 낼 수 있기 때문에 배우들을 모델로 세운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그의 작품 외에 앙드레 김 인물 자체에 대한 관심도 많다. 매일 오전 5시 10여가지 조간 신문을 읽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그는 오전 9시30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아틀리에에 출근,각 행사 참석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냈다. 또 그의 거실에는 늘 5대의 TV가 켜져 있었다. 술 담배도 안 하고,노래방에도 한번 가본 적이 없을 정도로 '워커홀릭'인 그에겐 TV가 세상을 보는 통로였다. 평생 독신으로 지냈지만 아들 정도를 입양해 홀로 키우며,세명의 손자를 둔 할아버지가 됐을 정도로 화목한 가정을 꾸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