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대낮 1500명, 대박에 눈먼 ‘위험한 질주’

2010. 9. 17. 09:37이슈 뉴스스크랩

평일 대낮 1500명, 대박에 눈먼 ‘위험한 질주’
40~50대 남성들 북적…간간이 20대·여성도
“평일엔 경정 주말엔 경륜…이건 도박공화국”
한겨레 이승준 기자 메일보내기

 

» 지난 15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있는 경정 장외판매소 ‘스피존’을 찾은 40~50대 남성들이 배당률 등이 나와있는 경주 현황판을 응시하고 있다.
‘도박중독 추방의날’…경정 장외판매소 가보니

지난 15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의 경정(모터보트 경주) 장외판매소인 ‘스피존’ 입구는 40~50대 남성들로 북적였다. 20대의 청년과 중년 여성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평일인데도 오후 3시께 입장객 수를 알리는 전광판 숫자는 1500을 넘어섰다. 2180명을 수용할 수 있는 5층 건물의 각 층마다 컴퓨터용 사인펜과 경기 일정표를 든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들은 대형 스크린과 배당률을 표시하는 소형 모니터에 잠시도 눈길을 떼지 못했다. 스크린으로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 조정경기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정 경기가 중계됐다. 모터보트가 시원하게 물살을 갈랐지만, 2분이 채 안 돼 경기가 끝나자 곳곳에서 탄식과 욕설이 튀어나왔다.

 

“여기 오는 사람들 다 백수지 뭐, 이건 뭐 도박공화국이야.” 김해영(가명)씨는 ‘베팅’에서 별 재미를 보지 못했는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는 “없는 사람들이 평일에는 경정, 주말에는 경륜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혀를 차면서도, 이내 사인펜과 경기 일정표를 들고 다음 베팅을 준비했다. 어두운 표정으로 경기 일정표를 보고 있던 최도식(가명)씨는 기자에게 “어차피 돈을 잃을 수 밖에 없으니 욕심부리지 마라. 수천만원씩 쏟아부은 사람이 수두룩하다”고 충고했다.

 

경정은 6명의 선수가 600m 거리를 3회 돌아 순위를 가리는 모터보트 경주다. 경륜을 운영하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이 2002년부터 도입했다. 매년 40일 이상 개장하고, 하루에 보통 15경주가 치러지는데, 경기가 열리는 미사리 경정장 외에도 서울 6곳을 포함해 전국 15곳에 2000~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장외판매소가 운영되고 있다.

 

문제는 경정이 열리는 날이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이라는 점이다. ‘가족 단위 관람객이 즐기는 건전한 레포츠’를 표방하는 것과는 한참 동떨어진 운영 방식이다. 더구나 미사리 경정장보다 장외판매소를 찾는 이들이 절대적으로 많아, 레포츠와도 거리가 멀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경정을 도입한 목적은 따로 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공단이 금·토·일요일에 운영하는 경륜 장외판매소가 평일에는 비어 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 수익을 높이려고 평일에 경정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2002년 경정 도입 당시부터 이런 비판이 제기됐지만, 공단 쪽은 “장외판매소를 사용할 계획이 없다”며 이런 비판을 피해간 뒤 슬그머니 장외판매소를 경륜과 함께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국민체육진흥공단과 경정 경주사업본부는 “최근에는 대학생 등으로 고객층이 변하고 있다”며 “미사리 인근 지역 주민들과 가족 단위 고객들도 많이 즐기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