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0. 10. 11:30ㆍ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주목받는 여권 빅2-몸 만들기 들어간 김문수 지사
“한나라당 정치에 지금 魂이 없다”… 칼 뽑으며 與본류 파고든다김문수 경기도지사는 1980년대 노동자가 단결해서 세상을 바꾸자고 주장했다. 그런 그가 지금은 보수의 기치 아래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섰다. 보수진영에서도 파이팅 강한 그의 대권행을 갈망한다. 15·16·17대 국회의원 3선에 이어 최근 경기지사 연임에 성공하는 등 5전 전승의 관록을 자랑하는 김 지사가 2012년 대선을 겨냥해 몸 만들기에 나섰다.
김 지사는 진보의 한계를 정확하게 봤다
-당이 위기라는 말인가요?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이 적다는 말입니다. 목사들은 한국 현대사를 공부하고, 나라와 미래를 걱정합니다. 우리 국회의원들이 더 해야 하는 것이지요. 집권 여당인데도 그런 것을 못 느끼겠어요. 그래서 공허합니다. 그 어느 장관에게서 뜨거운 열기를 느낀단 말입니까. 목사보다 더 애국적이고, 국민을 사랑해야 그게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이고, 장관 아니겠어요?”
-아주 매서운 질책입니다.
“국민이 누구를 보고 이 나라에 애국심을 가지겠습니까. 리더의 애국심을 보고 일상에 빠진 국민이 나라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리더의 역사관을 보면서 나도 역사를 돌이켜보게 되고, 리더의 비전을 보면서 자신의 비전도 살피게 됩니다. 이런 것들을 이끌어가는 게 리더 아닌가요?”
김 지사는 “영원히 국가와 국민을 이끌어갈 수 있는 혼이 묻어나는 언행과 업적이 필요하다”면서 “한나라당이 그와 관련한 교육을 하는가, 토론을 하는가, 애국에 대한 합의가 있는가”라고 후려쳤다.
그의 참모들은 솔직한 심성과 직설적인 표현이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점수를 까먹는 요인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서지 말라고도 건의한다. 그러면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나. 나는 잃을 게 별로 없는 사람인데”라는 식의 답변이 돌아온다고 한다.
이런 일 때문에 그의 변화가 진심인지 의심의 끈을 놓지 않는 이들도 있다. 일부에서는 대선주자로 나서는 순간 혹차지하독한 사상적 검증을 받게 될 것이라고 본다. 그를 항상 따라다니는 이력 때문이다. 대중심리학을 연구하는 연세대 황상민 교수는 김 지사의 보수노선으로 변신에 진정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젊은 시절 진보를 내세웠지만 그 진보의 한계와 세상의 변화를 정확하게 본 것이다. 이것은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동안 믿어온 것을 거부하고 전환했다. 아마도 자신이 새롭게 찾은 가치나 이념에 대한 정당성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한때 전형적인 운동권의 길을 걸었다. 경북고등학교 3학년 때는 3선 개헌 반대시위로 무기정학을 당했고, 1970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그는 10·15 부정부패척결 전국학생시위(1971), 민청학련(1974)으로 각각 제적됐다. 4H운동, 야학, 농민운동에 몸담다 나중에는 환경관리기사, 안전관리기사 등 국가기술자격증 8개를 취득한 위장취업자의 삶을 택했다.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1978)과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지도위원(1985) 등을 거치면서 가장 깐깐하면서도 원칙에 충실한 한국의 대표적 노동운동가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동구권 몰락과 함께 그의 사회주의 혁명의 이상도 날개를 접었고, 1990년에는 민중당을 만들어 14대 총선(1992)을 통해 제도권 진입을 시도했으나 참담한 패배를 맛봤다.
-정치가 적성에 맞나요.
“정치가 잘 돌아가면 우리 같은 사람도 더는 안 하겠죠. 이제는 나이가 들어 다른 일을 선택할 가능성이 줄었으니 정치도 하나의 직업이 됐습니다. 프로페셔널한 정치인 말이죠.”
그는 자신의 과거를 부인하거나 의미를 축소하려 들지 않았다.
“처음에 나는 정치 자체를 아주 혐오했어요. 나는 혁명가가 되는 게 목적이었으니까요. 크게 뒤집어서 바로잡겠다고. 판을 뒤엎는 것이지요.”
-사회주의를 꿈꿨다는 말인가요?
“그때는 민주주의적이면서도 사회주의적인 그런……. 이상이었지요. 북한식도 아니고, 미국식이나 일본식도 아니고, 중국식도 아닌 사회주의쯤이라고 할까요. 그런 괜찮고 독특한 사회주의인데요, 공상이었지요. 안 되는 생각을 계속했던 겁니다.”
불혹의 나이를 넘기면서 인생 진로를 180도 바꾸었다. 1994년 보수여당인 민자당에 이재오·이우재 등 민중당 몇몇 동료와 함께 입당, 보수와 진보진영 양쪽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1996년에는 민자당의 후신인 신한국당(한나라애국심이 당의 전신) 공천을 받아 15대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16·17대 국회의원을 지낸 뒤 2006년 민선 4기 경기지사, 지난 6월 5기 경기지사까지 내리 5번의 선거를 모두 보수당 간판으로 이겼다. 게다가 국회의원 시절 ‘김대중 저격수’와 ‘노무현 저격수’로 불릴 만큼 진보정권 공격의 최일선에 섰다. 보수당 입당 후의 그의 행적은 보수노선에 투철할 뿐만 아니라 헌신적이기까지 했다. 혹자는 이때를 일러 “김 지사가 충성도를 보여줘서 보수의 신임을 얻는 시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김 지사가 대중으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자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황상민 교수는 말한다. 그가 열심히 일한다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다만 “김 지사가 지향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또 그가 하는 얘기가 그 사람과 일치해야만 대중은 김 지사에게 공감한다”고 황 교수는 지적했다. 보수주의 노선에 입각해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의 공적을 평가하는 행위 외에 우리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의 비전과 리더십을 보여 달라는 말이다.
김 지사 쪽에서 각별히 공을 들이는 부분도 바로 이 대목이다. 김 지사는 자신의 국가 경영 비전으로 ‘선진일류국가’ 건설을 역설한다. 그가 내놓은 메가시티(Megacity·핵심 도시를 중심으로 일일생활이 가능하고 기능적으로 연결된 인구 1000만 명 이상의 광역경제권)’ 육성전략이나 수도권 전역을 1시간 내로 연결하는 지하철도 구상인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Great Train Express) 등도 선진국 진입을 위한 경쟁력 강화 수단이다. 심흥식 경기도청 홍보기획관은 “메가시티와 GTX 구상 같은 국가적 어젠다는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 차원에서 최근 각광받는 보수주의 진영의 정책 노선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한다.
선진일류국가는 나의 (대선으로 가는) 꿈
정리해보면 한 손에는 보수의 이념을 쥐고, 또 한 손으로는 국가 경영의 정책 대안을 가다듬는 이가 바로 김 지사다. 여기에 소수자 배려, 접경지역 관리, 서해안 개발, 남북 협력 방안 등 경기도정의 핵심 의제가 보태지면 대선주자로서 정책 비전의 얼개도 만들어진다. 김 지사 측은 “경기도정은 대한민국 행정의 축소판으로, 경기도 이슈를 제기하면 자연스럽게 국가담론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김 지사의 당면목표는 어떻게 설명될까? 지금까지의 양상을 종합해보면 ‘보수원류 파고들기’로 압축될 수 있겠다. 이는 보수를 대변해오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중도보수 쪽으로 약간 이동하면서 비게 된 보수의 자리를 차지하독한는 과정이기도 하다. 비록 지금은 친이계-친박계 간 긴장이 상당히 누그러들기는 했지만 양측은 형상기억합금처럼 언제든지 과거의 앙숙관계로 돌아갈 수 있는 관계다. 결국 친이계는 내부에서 박근혜 대항마를 찾으려 들 것이다. 김 지사가 보수층 끌어안기에 성공한다면 한나라당 내 친이그룹까지 규합해 박 전 대표와 자웅을 겨뤄봄직하다.
김 지사 측의 이런 계산법을 박 전 대표 측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박 전 대표 쪽에서는 유력 대선주자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요건 2가지를 김 지사가 갖췄냐고 반문한다. “하나는 정치인의 드라마틱한 역정이고, 다른 하나는 강력한 마니아층의 존재다.” 가령 박 전 대표의 경우 2004년 탄핵 열풍 속에서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당대표를 맡아 한나라당을 궤멸의 위기에서 건져낸 데 이어, 2006년 지방선거에서도 얼굴에 칼날 테러를 당하면서도 대전 등 광역단체장 선거를 챙겨 승리를 일궈낸 신화도 있다. 국민의 뇌리에서 영영 지워지지 않는 이미지들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김 지사의 드라마틱한 역정이란 6·2 지방선거에서 야권 단일후보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물리친 정도가 아니냐고 묻는다. 친박 진영의 한 주요 인사는 “김 지사 입장에서는 지방선거 승리가 중요한 성과이긴 하겠지만 전국의 국민이 모두 그걸 의미있게 쳐주는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또 김 지사라면 죽고 못 사는 열혈지지층이 없는 점도 약점으로 꼽았다. 가령 한나라당의 아성이라 할 대구·경북은 박 전 대표의 핵심 지지기반으로 흔들림이 없고, 전국적으로는 열성팬이 골고루 분포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김 지사는 아직 전국적 인지도를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연세대 황상민 교수는 “박근혜 전 대표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김 지사가 유력한 정치인으로 무난하게 와 닿지만 다음 대통령에 누가 되더라도 상관하지 않는 일반인은 김문수를 잘 모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지사 측은 “맞는 말”이라고 일단 수긍한다. 김 지사는 3선 국회의원 출신이기는 하지만 2006년 이래 중앙무대에서 떠나 있었기에 자신을 전국무대에 드러내 보일 기회를 별로 갖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고 말한다. 최우영 대변인은 “김 지사가 살아온 대로 뚜벅뚜벅 걸어가면 어느 순간 국민이 그의 진면목을 인정해줄 때도 오지 않겠냐”고 말한다. 환경은 나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좀처럼 눈길을 주지 않던 언론도 김 지사 한마디 한마디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또 지방면에 실리던 김 지사의 발언이 선거 후 정치면에 실리기 시작했다고 최 대변인은 의미를 부여했다. 김 지사도 이런 변화를 느끼는 듯 “나를 찾는 정치인이 늘었다지만 실은 언론인이 훨씬 더 많아졌다”고 반색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2년 후 대선국면에서 김 지사는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까? 심흥식 홍보기획관은 미래를 짚어볼 단초가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김 지사는 몰락한 선비가문의 지조·기개·비타협의 정서가 배어 있다. 재야운동 시절이나 지금이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할 말은 하는 선비정신도 묻어나온다. 그 자체가 보수적이다.”
글 박성현 월간중앙 차장 [psh@joongang.co.kr]
사진 이찬원 월간중앙 사진팀 부장 [l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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