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전문직 퇴직자 특별히 모십니다”

2010. 10. 29. 09:57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기술전문직 퇴직자 특별히 모십니다”

 

[동아일보] 원전전문인력, 해외건설현장 수요 늘어 고용 연장

대기업 일부 60대 은퇴자도 中企수출직 채용 바람

요즘 아랍에미리트 현지에서 한국이 지을 원전 건설현장을 총지휘하고 있는 김희광 한국전력 아랍에미리트 원자력 건설본부장. 그는 현재 59세다.

원래대로라면 정년(58세)을 넘긴 9월 퇴직했어야 했다. 그러나 최근 김 본부장의 임기는 1년 단위 계약직 고용을 통해 내년 9월 말까지 연장됐다. 원전 건설기술 분야에서 울진, 고리 원전을 비롯해 대북 경수로 사업까지 모두 경험한, 그만 한 내공을 가진 인력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원전분야에는 이처럼 ‘퇴직하지 않은 퇴직자’가 상당하다. 신고리 원전 건설에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까지 겹치면서 해당 분야의 고급 기술인력 수요가 2배로 급증해서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원전분야 신규 전문 인력이 충분히 양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은 퇴직자뿐”이라며 “당분간 원전분야 퇴직자의 50% 이상이 재고용될 것으로 전망한다”라고 전했다.

○ ‘고급 퇴직자’, 각종 인력난에 처방

최근 일부 고용시장을 중심으로 퇴직자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원전분야 같은 급성장산업 외에 청년층이 취업을 꺼리는 저임금·중소기업 고용 영역에서도 나타난다.

KOTRA는 최근 대기업에서 퇴직한 해외 전문가를 모으는 작업에 한창이다. 전문인력이 없어 해외시장 진출에 애를 먹고 있는 중소기업에 연결해주기 위해서다. 다음 달 말까지 100명의 퇴직 해외 전문가를 모으는 게 목표. 중소기업의 한 관계자는 “많은 중소기업이 해외 바이어가 보낸 e메일에 답하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상황에서 대기업 출신 퇴직자가 와 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퇴직자들은 오랜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하면서도 임금에 관계없이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야 하는 분야에서 각광받고 있다. 올 9월부터 서울남부지법에서 시행되고 있는 ‘민원상담위원제도’는 대표적인 예. 이는 25년 이상 법원에서 일한 퇴직 공무원 가운데 법무사 개업을 하지 않은 이들을 위원으로 위촉하는 제도. 전문적인 법률상담을 무료로 제공해 민원인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는 평이 나온다.

○ 저출산·고령화에 따라 더욱 확대될 듯

퇴직자를 조직적으로 재고용해 활용하는 움직임은 향후 한국의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심화될수록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9세 이상 24세 이하의 청소년 인구는 5명당 1명에 불과해 ‘미래 노동력의 풀’이 적어지고 있을뿐더러 2030년경에는 청년 2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할 정도로 사회적 부담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보다 앞서 고령화, 제조중소기업 취업 기피 현상을 경험한 일본은 이미 2003년부터 ‘모노즈쿠리법’을 제정해 기술 분야의 우수 퇴직자를 중소기업 지도자로 양성해 파견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대기업 출신 60대 은퇴자로 각 분야에서 ‘공장의 신’으로 불릴 만큼 뛰어났던 사람들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부터 노동력의 핵심인 25∼54세 고용 인력이 감소해 2020년부터는 총고용인구가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9년에는 경제성장률도 마이너스로 전환할 것으로 내다봤다. 청년층의 사회적 부담 감소와 국가의 생산활동 가능인구 확대 차원에서라도 퇴직자 활용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경부 관계자는 “현재 산업분야별 인재 수요와 육성 계획을 종합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이르면 올해 안에 퇴직자 활용을 포함한 국가 산업인력 육성 로드맵을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