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은 넘쳐나는데 정작 부모들은 “믿고 맡길 곳 없다

2010. 11. 5. 08:54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공급률 126% ‘어린이집’은 넘쳐나는데 정작 부모들은 “믿고 맡길 곳 없다” 아우성

[중앙일보] 입력 2010.11.05 00:57 / 수정 2010.11.05 06:02

‘어린이집 공화국’의 역설

보육시설은 넘치는데 정작 아이를 마음 편히 맡길 곳은 없다. ‘어린이집 공화국’의 현주소다.

 서울시의 경우 보육 수요는 18만2606명인데 어린이집 정원은 23만888명이다. 수요 대비 공급이 126.4%에 달한다. 어린이집만을 집계했는데도 이 정도다. 유치원·영어유치원·놀이학교 등 대도시에서 발달한 각종 사설 기관까지 집계한다면 공급은 훨씬 많아진다. 전국으로 따져도 보육시설 정원은 142만 명인데 실제로 다니는 아이들은 113만 명으로 29만 명의 자리가 비어있다. 이렇게 시설이 넘쳐나지만 영·유아 부모들은 마땅히 아이 맡길 곳이 없다고 호소한다. 지난 20여 년간 민간 보육시설 늘리기 위주의 양적정책을 펴온 결과다.

 정부는 1990년 영유아보육법을 제정하면서 그간 가정의 몫이었던 보육을 국가가 책임지기로 했다. 절대 부족했던 보육시설의 확충을 위해 민간 어린이집 설립을 장려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가령 98년부터 6년간은 보육시설 설립을 인가제가 아니라 신고제로 전환, 보육시설 시장의 진입 장벽을 낮췄다. 늘어난 어린이집에서 일할 사람이 부족하자 종사자 기준을 크게 완화했다. 고교 졸업 후 보육교사 교육원이라는 1년제 과정만 마쳐도 보육교사 자격증(3급)이 나왔다. 그 결과 95년 9085곳이던 어린이집은 2008년 3만3499곳으로 늘었다. 이 중 국공립 어린이집이 두 배로 늘어나는 동안, 민간 개인 및 가정 어린이집은 네 배로 폭증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민간보다 국공립 어린이집을 선호한다. 아이 주민번호 나오자 마자 등록해 3년씩 대기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 정책이 부모들의 요구와 어긋난 셈이다.

 문제는 시설 공급을 조절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부모가 기피하는 질 낮은 민간 시설이라도 정부가 강제로 문을 닫게 할 수 없다. 수원시·춘천시 등에서는 일시적으로 새 보육시설 설립 인가를 제한하기도 했지만 이 경우 신규 시설의 보육시장 진입을 막는다는 논란이 뒤따랐다.

 

해결책은 시설·교사 등의 질이 좋은 국공립 시설을 확충하는 것이지만 재원이 부족한 데다 민간 보육시설의 반대에 부딪힌다. 서울시 관계자는 “국공립 어린이집 하나 늘리려 해도 인근 민간 어린이집 운영자 등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이 크다”고 말했다.

 단체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만 3세 이하 영아는 더 문제다. 왜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지 않는가. 육아정책연구소가 어린이집이 아니라 조부모, 베이비시터 등에게 아이를 맡기는 영아 부모 335명에게 이유를 물었다. ‘너무 어려서 기관 적응이 힘들까봐’(72.8%)가 대부분이었다. 전문가들도 “1, 2세 때는 어린이집보다는 여러 사람이 아이 하나만을 돌봐주는 게 낫다. 부분적으로 사회 관계에 노출해도 되는 나이는 만 3세 이상”(서울대 아동가족학과 이순형 교수)이라고 권한다. 영아 부모들이 어린이집보다 일대일 양육 서비스에 눈을 돌리는 이유다.

 그러나 영아 보육에 대한 정부 정책도 개인 서비스보다는 시설 수용에 집중돼 있다. 가령 저소득층 가정에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면 월 27만8000∼38만3000원의 보육료를 정부에서 전액 지원한다. 반면 ‘0세아 돌보미’와 같은 정부 지원 일대일 보육 서비스를 택할 경우 월 100만원 중 40만원 이상을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0세아 돌보미’는 만 1세 미만 영아를 대상으로 하루 11시간씩 가정에 아이 돌보미를 파견하는 서비스로 올 6월 시작됐다. 이전에는 일시적으로 돌보미를 파견하는 사업이 2007년부터 시행됐다. 사업 시작 당시 예산이 26억원이던 것이 지난해 224억원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올해 예산은 150억원으로 삭감됐다.

◆탐사1·2팀=김시래·진세근·이승녕·강주안·고성표·권근영·남형석 기자, 박아람 인턴기자(이화여대 4학년), 이정화 정보검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