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바다 이용권을 사고판다?

2010. 12. 6. 09:16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시골 바다 이용권을 사고판다?

매경이코노미 | 입력 2010.12.04 17:01

 

장면1.

A어촌계 어민들 20명이 마을 공동소유인 패류·해조류 양식장을 어촌계원이 아닌 이 씨에게 5년간 임대하고 임대료로 받은 4000만원을 각각 200만원씩 나눠 가졌다.

장면2.

어촌계장 김 씨는 어패류 판매업자와 임대차 계약을 하면서 계약서에는 어촌계장인 김 씨 명의로 하고 실제로는 박 씨에게 공동어장 어패류 채취권을 주는 방법을 취하면서 5년간 5억5000만원에 임대해줬다. 이 과정에서 사례비 명목으로 김 씨는 수회에 걸쳐 총 1억원가량의 뒷돈을 챙겼다.

↑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요즘 어촌에서 종종 벌어지는 사례다. 어촌에서는 이를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부른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기 때문. 자율관리를 통해 공동으로 양식하고 채취하자는 취지에서 운영되고 있는 '마을어업 면허제도'가 일부 어민들의 개인이익 편취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수산업법 제9조에는 어업인의 공동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마을어업을 어촌계나 지구별 수협에만 면허한다고 나와 있는데도 제3자에게 임대하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하고 있다. 해양경찰서(해경)에서도 마을어장 패류 채취권이나 개인양식어업권 불법 임대행위를 단속하기 위해 기획수사에 나설 정도로 임대차 금지조항에 위반되는 사례가 상당수 목격됐다.

예전에도 어촌계장이 어촌계 명의의 공동어장을 놓고 어촌계원이 아닌 제3자, 즉 자격이 없는 자와 임대계약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제3자와 임대계약을 체결할 때, 어촌계장이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행태가 부지기수였다. 일례로 어촌계장이 제3자와 유착해 뒷돈을 받으면서 어촌계에 직접적인 손실을 입히는 것이다. 또한 개인양식장 면허를 갖고 있는 어민이 임차를 해줄 수 없음을 알고도 불법으로 제3자에게 양식장을 임차해주는 행태도 나타났다. 수산업법에서는 임대차 목적으로 어업권을 대여하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어촌계원도 어장관리규약에 따라 어촌계 또는 지구별 수협이 소유하는 어업권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해경의 단속이 심해지면서 최근에는 어촌계에서도 제3자와 임대계약을 체결하는 일이 드물어졌다. 하지만 바다사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돈벌이가 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어패류 등 수산물 물량이 줄어들긴 했어도 수산물 가격이 오르면서 투자가치가 상승했기 때문. 일부 어패류양식장사업은 투기성으로 변질되면서 음성적으로 거래가 이뤄질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당장 돈이 필요한 일부 어촌계에서도 많은 돈을 갖고 들어오는 외지인들의 유혹을 거절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이러다 보니 어촌계에서는 임대차 계약보다는 타인지배 형식을 많이 선호하고 있다. 최근 서울에 거주하는 A씨도 남해안에 위치한 어촌에 들렀다가 일면식도 없는 어촌계원으로부터 타인지배 형식의 이면계약을 요구받았다고 전했다. 타인지배란 형식적으로는 자격 있는 어촌계원 명의로 계약을 맺지만, 실질적으로는 자격이 없는 제3자가 이면계약을 통해 어업권을 지배하는 것을 말한다.

음성적 거래는 결국 어촌계 멍들게 할 뿐

수산업법에서도 이를 우려해 타인이 어업권자의 경영을 사실상 지배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은밀한 이면계약의 경우 단속에 노출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서래수 남해지방해양경찰청 광역수사팀장은 "어촌계원과 제3자가 마을어장의 패류 채취권을 음성적으로 주고받는 경우가 있다"며 "법률적 요건을 피하기 위해 거래방식도 교묘하게 진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통상 어촌계장 또는 계원과 제3자 간 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금을 주고 나중에 잔금을 치르는데, 제3자가 기대한 만큼 패류·해조류를 채취하지 못할 경우 잔금 납부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계약 당사자인 외지인은 채취한 패류·해조류를 판매한 금액으로 잔금을 납부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김정석 여수해양경찰서 수사계장은 "마을어업 면허제도와 관련한 대다수 이권다툼은 타인지배와 관련이 있다"며 "이면계약을 체결한 계약자 간에 문제가 발생해 민원이 제기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임대금액은 어장 면적 및 서식자원(꼬막, 바지락, 새조개 등) 규모에 따라 달라지는데, 보통 수백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기도 한다.

대개 공동어장은 3년 단위로 임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3년 정도면 어장 내에 서식하는 자원들을 최대한 채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어장 휴식기가 있지는 않지만, 외지인들이 무작위로 서식자원들을 채취하면서 자연스럽게 채취기와 휴식기가 형성되기도 한다. 휴식기를 거친 어장은 서식자원이 풍부해지면서 채취를 시작하는 1년 차에는 임대료가 비싸질 수밖에 없다. 김정석 수사계장은 "외지인들이 투자를 한 경우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무작위로 채취하면서 어장이 황폐해지고 있다"며 "공동어장을 넘어 공유수면까지 침범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업자는 김 양식장 내 무기산(염산)을 불법으로 사용해 양식장 환경까지 해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마을어업 면허제도가 무분별하게 남용되는 데는 적발되더라도 처벌 수위가 높지 않은 것도 한몫한다. 현행법에서는 타인지배 또는 임대차 금지 규정에 위반하더라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부과하는 데 그치고 있다.

처벌 수위 높이는 건 해결책 될 수 없어

지난해부터 정부도 마을어업 면허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특히 면허권을 특정 어촌계원이 행사하거나 외지 어업인에게 입어료를 받고 이용권을 부여하는 행태를 근절하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기보다는 전격적으로 규제를 푸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처벌 수위를 높여도 음성적 거래를 뿌리 뽑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외부 투자를 끌어들이는 규제 완화 쪽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임을 눈치챌 수 있다. 김정석 수사계장은 "어촌계 임대차 또는 타인지배 행태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이를 양성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8월 농림수산식품부는 법적 지위가 명확하지 않은 어촌계의 위상 정립을 위해 어촌계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한 전국의 어촌계를 대상으로 등급제를 도입해 정책을 차별적으로 펴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 현재 어촌계원 수, 지리적 여건, 자본규모, 활동현황 등을 고려해 등급을 나누거나 어촌계 특성을 살려 사업 성격에 따라 분류하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2008년 말 기준으로 어촌 자율조직인 어촌계는 전국에 1978개가 있고, 어촌계원은 14만8993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어촌계원들이 갈수록 고령화되면서 마을어장 이용 및 활용도가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갯벌어장만 놓고 보더라도 어촌계 중심의 배타적 지배로 단순채취 또는 낮은 단계의 양식에 국한돼 있었다. 90년도에는 갯벌에서 생산되는 패류 생산량이 10만9000톤에 달했는데 지난해에는 6만톤 이상 줄어 4만4000톤에 불과했다. 생산성이 현저하게 낮아진 데는 신기술 진입과 자원관리 미비도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게다가 전체 갯벌면적 중 절반가량만 이용되고 있어 개발되지 않은 어장도 상당한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외부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지난 10월 농림수산식품부는 신기술 진입과 대규모 자본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마을어장에 대해 임대차를 허용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김용득 농림수산식품부 사무관은 "마을어장 이용 및 관리를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갯벌어업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신기술로 인정되는 경우 임대차를 허용할 수 있도록 대통령령이나 부령 형식을 통해 입법예고를 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onga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84호(10.12.08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