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대표주자`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
2011. 2. 19. 09:28ㆍC.E.O 경영 자료
`바이오 대표주자`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
바이오시밀러 가능성 보고 공장부터 짓고 다국적 제약사보다 5년 앞서 시장 잡았죠 | |
기사입력 2011.02.18 17:02:07 | 최종수정 2011.02.18 17:48:28 |
"햄버거 반쪽에 380만원이더라니까요."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최근식중독에 걸려 고생했다고 했다.출장 중에 일정이 빠듯해 햄버거를 먹었는데, 탈이 났다. 시가총액 약 4조원으로 코스닥 상장사 중덩치가 가장 큰 회사를 만든 창업자는 배탈이 식중독 균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며 눙쳤다.
"식중독 균이 장에 들어가면 번식할 때 톡신(독)을 뿜어요. 식중독 균이 뿜는 톡신만 혈액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열이 나고 염증을 일으키는 거죠. 직접 먹어보니 독한 놈이던데요. 이 메커니즘만 잘 연구하면
쓸 데가 많을 텐데." 식중독에 걸려 앓으면서도 약 팔 생각을 하는 독한 사람. 2002년 창업 후 8년 만에 매출 1809억원(2010년 기준)을 이룬 바이오업계 대표기업 셀트리온의 수장이다.
2002년 창업 5년 만인 2007년 첫 매출을 낸 셀트리온은 단백질을 팔아 매년 30~40%씩 매출을 키웠다. 셀트리온의 핵심은 단백질 의약품 원재료를 만드는 14만ℓ 규모 설비다. 이런 설비를 갖춘 곳은 세계를 통틀어 10여 곳에 그친다. 이 설비에서 유방암 환자들이 병원에서 맞는 항암치료제 허셉틴의 바이오시밀러(오리지널 약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복제약), 관절염 통증을 줄여주는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 등이 나온다.
서 회장은 시장을 일찍 봤다. 설비를 먼저 갖췄고, 경쟁사보다 앞선 5년 동안 신약에도 도전했다. 일각에서는 "올해 2800억~2900억원의 매출이 예상된다"(현대증권)고 내다본다.
돈을 벌기 전에 공장부터 지었던 무모한 도전자가 이번엔 `헬스케어그룹`을 꿈꾼다. 무한 도전자, 그가 궁금했다.
◆ 워크아웃 후 창업 "돌아갈 곳이 없어 매번 전부를 걸었죠"
= 원래는 바다였던 땅에 싸락 같은 눈발이 흩날리던 날 인천 송도에 위치한 셀트리온 본사에서 서정진 회장을 만났다. 거뭇한 피부에 부리부리한 눈매, 두꺼운 손바닥을 가진 거구였다. 어딘지 뱃사람 느낌이 났다.
대우자동차 최연소 임원 출신이지만, 워크아웃 이후 맨손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그가 키운 회사는 관심 없는 이라도 한번쯤 들어봤을 `바이오시밀러`의 대표선수로 꼽힌다. 여기까지 오게 된 비결을 물었다. 회장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다시 물었다. "짤짤이 아십니까?" 양손 안에 동전을 넣고 상대방에게 보여주지 않은 채로 흔들면서 동전이 홀수인지, 짝수인지 맞히는 놀이다.
서 회장은 "짤짤이할 때 아도치죠, 제가 아무것도 없이 아도를 한 열댓 번 쳐서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실력이 있어도 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껄껄 웃었다. 아도친다는 건 도박 등에서 상대방이 가진 모든 것에 베팅한다는 뜻이다.
서 회장은 1999년 대우를 나와 같이 퇴직한 10여 명의 직원과 사무실을 차렸지만, 사업 아이템이 없었다. "우연히 제약산업을 보게 됐습니다. 자동차가 전 세계 500조~600조원 시장인데, 제약은 1000조원이 되는 시장이에요. 한국은 지금 처방약 기준으로 8조원 규모입니다. 한국이 세계 경제 10위권이면, 그 1000조원 중 한국이 100조원은 해야 하지 않나, 의문이 들었죠."
그는 암 치료제로 유명한 항체의약품들이 2013년 이후 줄줄이 특허가 만료된다는 사실을 알고 `내 평생 이런 기회가 올까`싶었다고 했다. 더 이상 획기적인 신약이 나오기 어렵다면 비슷한 효과를 내면서도 가격이 싼 약을 공급하는 시장이 열린다. 그가 주목한 것은 항체의약품과 효능이 같으면서 가격경쟁력을 갖춘 바이오시밀러 시장이다. 일단 일정 규모 이상의 설비를 갖추면 진입 장벽이 높고, 경쟁이 덜 치열했다. 서 회장은 "과거의 제약시장이 연구 투자 위주였다면, 지금 팔리는 약들의 특허가 만료되는 2013년부터는 (복제약을 만드는 설비가 중요한)산업으로 갈 게 틀림없어 보였다"고 했다.
우선 자금 마련에 운이 따랐다. 미국 바이오기업 벡스젠이 투자를 결정한 것. 인천 남동공단이 3.3㎡당 150만원이던 2000년대 초반 당시 3.3㎡당 50만원에 10년 분할 상환 조건으로 용지를 샀다. 그 후 경제특구로 지정됐고 공시지가가 200만원으로 치솟았다. 계약금 15억원을 주고 800억원을 담보대출받았다. 지인들에게 투자를 받고, KT&G에 찾아가 "우리는 전부를 걸었다. 우리가 투자한 금액만큼만 투자해달라"고 설득해 KT&G 참여도 이끌어냈다.
하지만 2004년 생산하기로 돼 있던 에이즈 백신이 미국에서 임상에 실패하면서 사업은 크게 휘청거렸다. 셀트리온은 전 세계에서 바이오기술이 가장 앞선 미국의 제넨텍의 에이즈 백신을 인천 공장에서 생산하고, 이전받은 기술을 이용해 다른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할 계획이었다. 얄궂게도 이 백신은 백인에게 약효가 나타나지 않았고, 프로젝트는 중단됐다.
"에이즈 백신이 성공한다는 조건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니까 주주들이 동요했죠. 증자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어요. 공장 설비는 지어야 하고 직원 월급도 줘야 해, 그때부터 직업이 `사채조달`이 됐습니다." 단돈 1원도 안 벌리는데 밑도 끝도 없는 투자가 계속됐다. 아내에게도 할 짓이 아니었다. 돈이라곤 추석과 설에 10만원씩 가져가는 게 전부였다. 참으로 면목 없는 날들이었다.
◆ 은행 개점시간 가장 두려워…자살 결심했다가 `감사` 알게 돼
"식중독 균이 장에 들어가면 번식할 때 톡신(독)을 뿜어요. 식중독 균이 뿜는 톡신만 혈액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열이 나고 염증을 일으키는 거죠. 직접 먹어보니 독한 놈이던데요. 이 메커니즘만 잘 연구하면
쓸 데가 많을 텐데." 식중독에 걸려 앓으면서도 약 팔 생각을 하는 독한 사람. 2002년 창업 후 8년 만에 매출 1809억원(2010년 기준)을 이룬 바이오업계 대표기업 셀트리온의 수장이다.
2002년 창업 5년 만인 2007년 첫 매출을 낸 셀트리온은 단백질을 팔아 매년 30~40%씩 매출을 키웠다. 셀트리온의 핵심은 단백질 의약품 원재료를 만드는 14만ℓ 규모 설비다. 이런 설비를 갖춘 곳은 세계를 통틀어 10여 곳에 그친다. 이 설비에서 유방암 환자들이 병원에서 맞는 항암치료제 허셉틴의 바이오시밀러(오리지널 약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복제약), 관절염 통증을 줄여주는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 등이 나온다.
서 회장은 시장을 일찍 봤다. 설비를 먼저 갖췄고, 경쟁사보다 앞선 5년 동안 신약에도 도전했다. 일각에서는 "올해 2800억~2900억원의 매출이 예상된다"(현대증권)고 내다본다.
돈을 벌기 전에 공장부터 지었던 무모한 도전자가 이번엔 `헬스케어그룹`을 꿈꾼다. 무한 도전자, 그가 궁금했다.
◆ 워크아웃 후 창업 "돌아갈 곳이 없어 매번 전부를 걸었죠"
= 원래는 바다였던 땅에 싸락 같은 눈발이 흩날리던 날 인천 송도에 위치한 셀트리온 본사에서 서정진 회장을 만났다. 거뭇한 피부에 부리부리한 눈매, 두꺼운 손바닥을 가진 거구였다. 어딘지 뱃사람 느낌이 났다.
대우자동차 최연소 임원 출신이지만, 워크아웃 이후 맨손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그가 키운 회사는 관심 없는 이라도 한번쯤 들어봤을 `바이오시밀러`의 대표선수로 꼽힌다. 여기까지 오게 된 비결을 물었다. 회장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다시 물었다. "짤짤이 아십니까?" 양손 안에 동전을 넣고 상대방에게 보여주지 않은 채로 흔들면서 동전이 홀수인지, 짝수인지 맞히는 놀이다.
서 회장은 "짤짤이할 때 아도치죠, 제가 아무것도 없이 아도를 한 열댓 번 쳐서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실력이 있어도 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껄껄 웃었다. 아도친다는 건 도박 등에서 상대방이 가진 모든 것에 베팅한다는 뜻이다.
서 회장은 1999년 대우를 나와 같이 퇴직한 10여 명의 직원과 사무실을 차렸지만, 사업 아이템이 없었다. "우연히 제약산업을 보게 됐습니다. 자동차가 전 세계 500조~600조원 시장인데, 제약은 1000조원이 되는 시장이에요. 한국은 지금 처방약 기준으로 8조원 규모입니다. 한국이 세계 경제 10위권이면, 그 1000조원 중 한국이 100조원은 해야 하지 않나, 의문이 들었죠."
그는 암 치료제로 유명한 항체의약품들이 2013년 이후 줄줄이 특허가 만료된다는 사실을 알고 `내 평생 이런 기회가 올까`싶었다고 했다. 더 이상 획기적인 신약이 나오기 어렵다면 비슷한 효과를 내면서도 가격이 싼 약을 공급하는 시장이 열린다. 그가 주목한 것은 항체의약품과 효능이 같으면서 가격경쟁력을 갖춘 바이오시밀러 시장이다. 일단 일정 규모 이상의 설비를 갖추면 진입 장벽이 높고, 경쟁이 덜 치열했다. 서 회장은 "과거의 제약시장이 연구 투자 위주였다면, 지금 팔리는 약들의 특허가 만료되는 2013년부터는 (복제약을 만드는 설비가 중요한)산업으로 갈 게 틀림없어 보였다"고 했다.
우선 자금 마련에 운이 따랐다. 미국 바이오기업 벡스젠이 투자를 결정한 것. 인천 남동공단이 3.3㎡당 150만원이던 2000년대 초반 당시 3.3㎡당 50만원에 10년 분할 상환 조건으로 용지를 샀다. 그 후 경제특구로 지정됐고 공시지가가 200만원으로 치솟았다. 계약금 15억원을 주고 800억원을 담보대출받았다. 지인들에게 투자를 받고, KT&G에 찾아가 "우리는 전부를 걸었다. 우리가 투자한 금액만큼만 투자해달라"고 설득해 KT&G 참여도 이끌어냈다.
하지만 2004년 생산하기로 돼 있던 에이즈 백신이 미국에서 임상에 실패하면서 사업은 크게 휘청거렸다. 셀트리온은 전 세계에서 바이오기술이 가장 앞선 미국의 제넨텍의 에이즈 백신을 인천 공장에서 생산하고, 이전받은 기술을 이용해 다른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할 계획이었다. 얄궂게도 이 백신은 백인에게 약효가 나타나지 않았고, 프로젝트는 중단됐다.
"에이즈 백신이 성공한다는 조건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니까 주주들이 동요했죠. 증자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어요. 공장 설비는 지어야 하고 직원 월급도 줘야 해, 그때부터 직업이 `사채조달`이 됐습니다." 단돈 1원도 안 벌리는데 밑도 끝도 없는 투자가 계속됐다. 아내에게도 할 짓이 아니었다. 돈이라곤 추석과 설에 10만원씩 가져가는 게 전부였다. 참으로 면목 없는 날들이었다.
◆ 은행 개점시간 가장 두려워…자살 결심했다가 `감사` 알게 돼
= 주식을 발행해도 사는 사람이 없어서 회장이 직접 샀다. 액면가로 주식을 매입하고, 주식을 담보로 사채를 갖다 썼다. 그는 "신체 포기각서를 하도 많이 써서 명동 사채시장에서 `저 사람은 더 떼어갈 장기도 없다`며 유명해졌다"고 말했다. 얼른 손가락을 쳐다봤는데, 열 손가락은 무사했다.
서 회장은 "우리나라는 확률이 아니라 기업에 투자한다. 사채는 사람을 보고 투자하는 `한국의 월스트리트` "라고 농을 던졌다.
"은행 문 여는 시간이 제일 두려웠어요. 내일을 넘겨도 모레가 안 보이는 생활이 계속되니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됐습니다." 가족에게 유언을 남기고 북한강으로 차를 몰았다. 강에 뛰어들려는데, 무의식 중 브레이크를 밟았다. 후진하다 덤프트럭에 치일 뻔하자 정신이 번쩍 났다.
"그땐 보름 후에 다시 시도하자 싶었죠. 그런데 죽었으면 나한테 없었을 보름이 생기니, 식구들한테 `고맙다, 나 때문에 고생시켜 미안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어요. 보름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니 가족도 회사도, 파트너도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똑똑하고 실력 있어 회사를 차렸다는 생각이 바뀌었다. 사장 자리는 `리스크를 질 줄 알고, 밑질 줄 알아야 앉는 자리`였다. 서 회장은 "장사는 혼자 똑똑해도 할 수 있지만 사업은 같이하는 사람 모두가 제 기능을 못하면 망한다. 모두 행복하게 만들어서 복 받을 일을 해야 운도 트인다"고 말했다.
이미 5만ℓ의 생산설비를 갖췄던 셀트리온에 문의가 오기 시작했다. 의약품 위탁생산(CMO)을 통해 2007년 635억원의 매출을 냈다. 처음으로 다국적 제약사 신임 CEO가 5년 전 서 회장이 봤던 바이오시밀러의 가능성을 본 곳이다. 2009년 세계 최대 제약사 화이자가 와이어스를, 머크는 셰링플라우를, 로슈는 제넨텍을 인수하면서 `바이오`산업 진출 회사가 늘어났다.
이미 바이오의약품 생산설비를 갖춘 셀트리온을 팔라는 유혹도 이 무렵 많았다. 서 회장은 "제가 회사 지분 3분의 1을 가지고 있을 때, 3배의 프리미엄을 얹어 시가총액에 그 주식을 사겠다는 회사도 있었다"고 했다.
서 회장은 "돈 벌려고 사업하던 때는 지났다. 이제는 복 받으려고 한다"는 다소 엉뚱한 말을 했다. `내가 버는 게 아니라 직원들이 버니까 그만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 직원 복지에도 신경을 쓴다. 입사한 지 1년 된 직원은 대기업 평균 초임 수준 월급에 우리사주, 성과급(PS)을 합쳐 연봉의 2.5배가량을 가져간다.
셀트리온 직원은 여성과 남성이 절반씩이다. "제가 돈을 못 벌어가는 동안 교사인 아내가 가정을 꾸렸어요. 맞벌이하는 여성에게 회사가 대우를 잘해줘야 합니다."
서 회장은 셀트리온에 여직원이 아이를 낳으면 출근하면서 아이를 맡기고, 퇴근할 때 데려갈 수 있도록 보육시설을 지었다. 한 아이를 돌보는 데 1년에 1000만원이 든다.
"직원 한 명당 아이 둘까지는 괜찮은데, 셋째 애부터는 `1년에 3000만원씩 들어간다!`고 제가 뭐라고 하죠(웃음)." 회사 안에는 골프연습장과 테니스코트, 농구코트, 탁구장, 샤워실이 있다. 전 직원이 인근 피트니스클럽을 무료로 이용한다. 공짜로 제공되는 구내식당 식사 단가는 1식에 8000원. 국과 밥을 제외하고 다섯 가지 반찬이다. 매일 다른 종류 샐러드바가 제공된다. 구내식당에서 종종 식사를 한다는 서 회장은 "밥값 그거 해봤자 얼마나 들겠어요. 한 배치(단백질 의약품 생산시설의 단위)만 줄이면 직원 전체가 맛있게 먹는데, 밥은 잘 먹어야지요"라고 했다.
◆ 글로벌 헬스케어시장 1000조…돈 벌지 않으려 해도 돈이 벌렸다
= 번번이 전부를 걸면서 이뤄온 회사지만 서 회장은 "올해부터 5년은 제가 실무를 맡지만 5년 후부터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겠다"고 공언했다. "혹시나 마음이 바뀌더라도 번복하지 못하게 몇 년 전부터 여러 사람에게 얘기했어요. 아쉬울 때 떠나야 합니다."
그는 스스로를 성을 쌓는 사람이라고 했다. 밑바닥에서 창업해 성장시키는 일이다. "축성조가 수성하면 그 성은 무너집니다. 5년 동안 전 세계에 셀트리온 유통망을 갖추는 게 성을 쌓는 제가 할 마지막 역할이에요." 자회사를 세우거나 중동 등에서는 아랍 현지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어 한국에서 개발ㆍ생산한 약을 전 세계에 파는 것이 현재 서 회장의 목표다. 그는 "다국적 제약사와의 인수ㆍ합병도 배제하지는 않는다. 이제는 그만한 위치에 와 있으니, 눈뭉치로 눈사람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셀트리온이 겨냥하는 것은 결국 신약이다. 서 회장은 바이오시밀러에서 버는 돈으로 바이러스용 항체 개발에 투자한다. "다른 회사에 비해 5년을 앞서 있으니, 바이오시밀러를 넘어 바이오베터(Bio Better)로 가야 합니다."
셀트리온은 올 연말 다양한 인플루엔자에 범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멀티항체와 광견병용 항체 동물임상을 끝내고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에 들어갈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신약과 바이오시밀러 생산 비중을 5대5 정도로 맞출 계획이다. 호르몬, 효소 쪽은 제형을 바꿔 먹는 약(경구용)을 만들고, 백신 쪽도 연구 중이다. 서 회장은 "생물학적 의약품 쪽으로는 항체 백신 호르몬 등 파이프라인을 모두 확보하고, 케미컬(화합물신약) 쪽은 전체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50개가량만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헬스케어는 1000조원 시장입니다. 우리나라 미래에 쉬운 먹을거리를 줄 수 있는 계기예요. 만들어져 있는 시장에 기회가 왔는데, 중국 인도도 하는 일을 한국이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처음엔 백수를 면하기 위해 했다. 안 망하려고 했고, 돈 벌어보려고 했다. 나중엔 돈 벌지 않으려 해도 돈이 벌렸다"는 열 살짜리 회사의 회장은 좋은 창업 사례로 남고 싶다는 욕심을 보였다.
고기가 있다는 확신만으로 망망대해에 배를 띄웠던 사람, 돌아갈 수 없어 앞으로 앞으로만 노를 저었던 뱃사람이 그물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 배가 `만선(滿船)`으로 돌아올지, 그의 배를 보고 새로 배를 띄우는 젊은이가 늘어날지 궁금해졌다.
■ He is…
1957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건국대 산업공학과와 동 대학원 경영학 석사과정을 밟았다. 1983년 삼성전기에 입사해 근무하다가 1991년 한국생산성본부로 이직해 기업 컨설팅을 담당했다. 이때 그를 눈여겨본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에게 스카우트돼 1992년 대우자동차 상임경영고문(전무대우)으로 옮겨가 최연소 임원 기록을 세운다. 1999년 대우자동차 워크아웃과 함께 퇴사하고 이듬해 퇴사한 직원 10여명과 함께 넥솔바이오텍을 설립한다. 넥솔바이오텍에서 `바이오시밀러`의 가능성을 보고 2002년 미국 벡스젠 등에서 투자를 받아 셀트리온을 창업했다.
[이유진 기자 / 사진 = 박상선 기자]
서 회장은 "우리나라는 확률이 아니라 기업에 투자한다. 사채는 사람을 보고 투자하는 `한국의 월스트리트` "라고 농을 던졌다.
"은행 문 여는 시간이 제일 두려웠어요. 내일을 넘겨도 모레가 안 보이는 생활이 계속되니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됐습니다." 가족에게 유언을 남기고 북한강으로 차를 몰았다. 강에 뛰어들려는데, 무의식 중 브레이크를 밟았다. 후진하다 덤프트럭에 치일 뻔하자 정신이 번쩍 났다.
"그땐 보름 후에 다시 시도하자 싶었죠. 그런데 죽었으면 나한테 없었을 보름이 생기니, 식구들한테 `고맙다, 나 때문에 고생시켜 미안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어요. 보름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니 가족도 회사도, 파트너도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똑똑하고 실력 있어 회사를 차렸다는 생각이 바뀌었다. 사장 자리는 `리스크를 질 줄 알고, 밑질 줄 알아야 앉는 자리`였다. 서 회장은 "장사는 혼자 똑똑해도 할 수 있지만 사업은 같이하는 사람 모두가 제 기능을 못하면 망한다. 모두 행복하게 만들어서 복 받을 일을 해야 운도 트인다"고 말했다.
이미 5만ℓ의 생산설비를 갖췄던 셀트리온에 문의가 오기 시작했다. 의약품 위탁생산(CMO)을 통해 2007년 635억원의 매출을 냈다. 처음으로 다국적 제약사 신임 CEO가 5년 전 서 회장이 봤던 바이오시밀러의 가능성을 본 곳이다. 2009년 세계 최대 제약사 화이자가 와이어스를, 머크는 셰링플라우를, 로슈는 제넨텍을 인수하면서 `바이오`산업 진출 회사가 늘어났다.
이미 바이오의약품 생산설비를 갖춘 셀트리온을 팔라는 유혹도 이 무렵 많았다. 서 회장은 "제가 회사 지분 3분의 1을 가지고 있을 때, 3배의 프리미엄을 얹어 시가총액에 그 주식을 사겠다는 회사도 있었다"고 했다.
서 회장은 "돈 벌려고 사업하던 때는 지났다. 이제는 복 받으려고 한다"는 다소 엉뚱한 말을 했다. `내가 버는 게 아니라 직원들이 버니까 그만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 직원 복지에도 신경을 쓴다. 입사한 지 1년 된 직원은 대기업 평균 초임 수준 월급에 우리사주, 성과급(PS)을 합쳐 연봉의 2.5배가량을 가져간다.
셀트리온 직원은 여성과 남성이 절반씩이다. "제가 돈을 못 벌어가는 동안 교사인 아내가 가정을 꾸렸어요. 맞벌이하는 여성에게 회사가 대우를 잘해줘야 합니다."
서 회장은 셀트리온에 여직원이 아이를 낳으면 출근하면서 아이를 맡기고, 퇴근할 때 데려갈 수 있도록 보육시설을 지었다. 한 아이를 돌보는 데 1년에 1000만원이 든다.
"직원 한 명당 아이 둘까지는 괜찮은데, 셋째 애부터는 `1년에 3000만원씩 들어간다!`고 제가 뭐라고 하죠(웃음)." 회사 안에는 골프연습장과 테니스코트, 농구코트, 탁구장, 샤워실이 있다. 전 직원이 인근 피트니스클럽을 무료로 이용한다. 공짜로 제공되는 구내식당 식사 단가는 1식에 8000원. 국과 밥을 제외하고 다섯 가지 반찬이다. 매일 다른 종류 샐러드바가 제공된다. 구내식당에서 종종 식사를 한다는 서 회장은 "밥값 그거 해봤자 얼마나 들겠어요. 한 배치(단백질 의약품 생산시설의 단위)만 줄이면 직원 전체가 맛있게 먹는데, 밥은 잘 먹어야지요"라고 했다.
◆ 글로벌 헬스케어시장 1000조…돈 벌지 않으려 해도 돈이 벌렸다
= 번번이 전부를 걸면서 이뤄온 회사지만 서 회장은 "올해부터 5년은 제가 실무를 맡지만 5년 후부터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겠다"고 공언했다. "혹시나 마음이 바뀌더라도 번복하지 못하게 몇 년 전부터 여러 사람에게 얘기했어요. 아쉬울 때 떠나야 합니다."
그는 스스로를 성을 쌓는 사람이라고 했다. 밑바닥에서 창업해 성장시키는 일이다. "축성조가 수성하면 그 성은 무너집니다. 5년 동안 전 세계에 셀트리온 유통망을 갖추는 게 성을 쌓는 제가 할 마지막 역할이에요." 자회사를 세우거나 중동 등에서는 아랍 현지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어 한국에서 개발ㆍ생산한 약을 전 세계에 파는 것이 현재 서 회장의 목표다. 그는 "다국적 제약사와의 인수ㆍ합병도 배제하지는 않는다. 이제는 그만한 위치에 와 있으니, 눈뭉치로 눈사람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셀트리온이 겨냥하는 것은 결국 신약이다. 서 회장은 바이오시밀러에서 버는 돈으로 바이러스용 항체 개발에 투자한다. "다른 회사에 비해 5년을 앞서 있으니, 바이오시밀러를 넘어 바이오베터(Bio Better)로 가야 합니다."
셀트리온은 올 연말 다양한 인플루엔자에 범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멀티항체와 광견병용 항체 동물임상을 끝내고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에 들어갈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신약과 바이오시밀러 생산 비중을 5대5 정도로 맞출 계획이다. 호르몬, 효소 쪽은 제형을 바꿔 먹는 약(경구용)을 만들고, 백신 쪽도 연구 중이다. 서 회장은 "생물학적 의약품 쪽으로는 항체 백신 호르몬 등 파이프라인을 모두 확보하고, 케미컬(화합물신약) 쪽은 전체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50개가량만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헬스케어는 1000조원 시장입니다. 우리나라 미래에 쉬운 먹을거리를 줄 수 있는 계기예요. 만들어져 있는 시장에 기회가 왔는데, 중국 인도도 하는 일을 한국이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처음엔 백수를 면하기 위해 했다. 안 망하려고 했고, 돈 벌어보려고 했다. 나중엔 돈 벌지 않으려 해도 돈이 벌렸다"는 열 살짜리 회사의 회장은 좋은 창업 사례로 남고 싶다는 욕심을 보였다.
고기가 있다는 확신만으로 망망대해에 배를 띄웠던 사람, 돌아갈 수 없어 앞으로 앞으로만 노를 저었던 뱃사람이 그물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 배가 `만선(滿船)`으로 돌아올지, 그의 배를 보고 새로 배를 띄우는 젊은이가 늘어날지 궁금해졌다.
■ He is…
1957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건국대 산업공학과와 동 대학원 경영학 석사과정을 밟았다. 1983년 삼성전기에 입사해 근무하다가 1991년 한국생산성본부로 이직해 기업 컨설팅을 담당했다. 이때 그를 눈여겨본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에게 스카우트돼 1992년 대우자동차 상임경영고문(전무대우)으로 옮겨가 최연소 임원 기록을 세운다. 1999년 대우자동차 워크아웃과 함께 퇴사하고 이듬해 퇴사한 직원 10여명과 함께 넥솔바이오텍을 설립한다. 넥솔바이오텍에서 `바이오시밀러`의 가능성을 보고 2002년 미국 벡스젠 등에서 투자를 받아 셀트리온을 창업했다.
[이유진 기자 / 사진 = 박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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