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인재 키워드 ‘통섭’을 말하다

2011. 2. 27. 11:36C.E.O 경영 자료

미래 인재 키워드 ‘통섭’을 말하다
2011-02  No.506   기자

詩 쓰는 공학도, 문과 출신 엔지니어

 

詩 쓰는 공학도, 문과 출신 엔지니어 미래 인재 키워드 ‘통섭’을 말하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는 20세기를 풍미한 경영학석사(MBA)가 저물고 전문이학계열석사(Professional Science Master, PSM)의 시대가 예상된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PSM은 과학, 수학, 경영, 법학 등 실용 학문을 함께 가르치는 석사 과정으로, 이공계 출신들에게는 인문·사회과학적 소양을, 인문·사회계 출신들에게는 과학 지식을 가르쳐 기업에 필요한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인데요. 미국 대학이 선도하고 있으며, 영국과 호주의 대학들도 속속 PSM 과정을 개설하는 분위기라네요. CEO라도 과학을 모르면 경영이 힘들고, 엔지니어라도 인문학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합니다.
“미래에는 어느 한 곳만 비추는 레이저 빔 형이 아닌 지적 시계가 360도 자유자재인 전구형 인재가 필요하다”는 미국 인사 관리 전문 컨설턴트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통섭형 인재는 학계를 넘어 재계까지 사회적 화두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죠. <미즈내일>이 통섭을 담은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미래 인재의 키워드 ‘통섭’의 세계, 함께 책장을 넘겨보실까요?

진행 정주연·홍혜경 리포터 도움말 최재천 석좌교수(이화여대 에코과학부)·전경일 소장(인문경영연구소)·주경철 부학부장(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김준성 차장(연세대 생활관, 직업평론가)·김성도 주무(포스코 인사과)
인문·자연 소양 갖춘 멀티플레이어 통섭형 인재를 아시나요?
‘열두 가지 재주에 저녁거리가 간데없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모름지기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뜻.
하지만 다양한 기술의 조합이 방점을 찍는 시대.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의 스펙도 변하고 있다. ‘한 우물 형’ 인재이되, 그 외 다른 우물도 넓게 팔 줄 아는 통섭형 인재가 그것. 한마디로 여러 분야의 담장과 경계를 가로지르며 새로운 지식과 가치를 만들자는 취지다.
취재 정주연 리포터 missingu93@naver.com
통섭형 인재는 팔방미인?
“통섭은 ‘줄기’란 뜻의 한자 ‘통(統)’과 ‘잡다’는 뜻의 한자 ‘섭(攝)’이 합쳐진 말로 ‘전체를 도맡아 다스리다’로 정리됩니다. 최근엔 통섭이 미래 학문의 바람직한 형태 중 하나로 거론되면서 점차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적 지식 간 융합’의 의미로 통용되는 추세죠.”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학자지만 인문학 관련 활동도 왕성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 석좌교수는 국내에 ‘통섭’의 개념을 처음 소개한 주인공. 과학뿐 아니라 문학, 역사, 철학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이 천장까지 가득한 연구실에서 만난 최 교수는 “통섭이란 모든 것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학문에선 지식의 통합이고, 산업 현장에서는 다양한 분야를 결합해 새롭고 창조적인 것을 만든다는 개념”이라고 정의했다.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집니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도 어느 것 하나 간단치 않죠. 어느 한 개인의 힘으로 풀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에요. 이런 문제에 접근하려면 통섭형 인재가 되어야 해요.”
하나의 문제를 놓고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만이 복잡 무변한 시대를 헤쳐나가는 열쇠라는 것. 예컨대 인간의 두뇌를 연구하는 ‘인지과학’ 분야만 봐도 심리학, 철학, 컴퓨터공학, 기계공학 같은 부모 학문들의 통섭 과정이 있어야 새로운 자식 학문에 대한 연구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즉 인문학은 인문학대로 있고, 자연과학은 자연과학대로 있으되 남의 우물과 섞어 뭔가 가능한 것을 찾아가는 것이 통섭의 핵심. 따라서 통섭형 인재는 이것저것 조금씩 잘하는 팔방미인을 뜻하지는 않는다. 자기 우물 하나가 확실히 있되, 다른 전문 분야에도 충분한 소양을 갖춰 그 분야 사람들과 공동 연구가 가능한 인재가 통섭형 인재의 전형이라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통섭형 인재가 되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를 들어보자.
“저는 우리 사회에서 정년이 없어질 것이라는 얘기를 자주 하는데요. 앞으로 다가올 초고령화 시대엔 일생 동안 70여 년을 일해야 합니다. 한 가지 직업으로는 버티기 힘든 시대가 오는 거죠.”
현재 중·고생들이 직장 생활을 할 시점에는 5번 이상 직업을 바꿀 것이라는 예측. 첫 직장을 40대에 나와도 전공이나 경력과 무관한 새 직종에 얼마든지 적응할 수 있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니, 한 분야에만 갇히지 말고 지속적 넘나들기를 시도하며 통섭형 인재를 준비하는 일은 옵션이 아니라 필수라는 게 최 교수의 의견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통섭
통섭 논의는 학계의 울타리를 넘어 기업 생태계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유명한 디자인 회사 ‘이데오’의 채용 전략 중 하나는 기본적으로 전공에 대한 탁월한 지식과 기술은 겸비하되, 전공 외 다방면 관심과 지식을 갖춘 인재를 찾는다. 예술가이자 MBA 학위 보유자, 해군사관학교 졸업생이면서 역사학 전공자, 건축학 석사면서 가구 디자인을 섭렵하는 등 복수 전공자가 다수 포진되었다. 금융계 역시 경제·경영 전공자 외에 법학, 자연과학대 출신자를 적극 영입해 상경계 마인드에 공학 마인드를 접목하고 있다. 뉴욕 월가의 주요 금융 거래는 선물과 옵션.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직면한 기후 문제와 인류사적 문제 그 행간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금융 상품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판단. 금융학과 지질학, 생태학을 복수 전공한 인재들을 채용하는 것으로 패턴이 달라졌다.
국내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직업평론가인 김준성 연세대 생활관 차장은 통섭형 인재에 대한 기업의 요구는 미래의 얘기가 아니라 최근 취업 현장에서도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 차장은 덧붙여 “일부 대기업은 공개적으로 통섭형 인재를 뽑겠다고 공언했다”면서 “엔지니어라고 해도 경영에 대해, 영업 통이라도 마케팅 전략이나 정치, 사회, 문화를 두루 이해하지 못하면 조직에서 환영 받지 못하는 시대”라고 전했다.
삼성생명은 의사 자격과 변호사 자격을 동시에 갖춘 보상 직원과 의사 출신 보험설계사 등 다양한 이색 인재를 채용하고 있다. 갈수록 지능적이고 복잡해지는 보험 사기에 대응하기 위해 의료와 법률을 꿰뚫는 인재가 필요하기 때문. 포스코 에서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문리(文理) 통섭형’인재가 많아져야 한다는 비전을 바탕으로 통섭형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 신입 사원 채용에 앞서 대학 3~4학년생을 대상으로 일정 규모의 산학 장학생을 선발해 이과생에게는 문과 과목을, 문과생에게는 이과 기초 과목을 듣게 하며 통섭 과정을 실시하는 것. 포스코 인사과 김성도 주무는 “과거 인재상이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I자형이었다면, 지금은 창의적인 생각으로 복수의 전문성을 발휘하는 통섭형 인재가 신입 사원 채용의 우선순위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기업들이 이처럼 통섭이란 개념에 매달리는 것에 대해 <초영역인재>의 저자이자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은 “통섭이 상상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에서는 제품과 기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과감히 버리고 전혀 새로운 개념과 안목으로 무장한 신개념 제품들을 출시하려고 합니다.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개념과 안목을 제시하려면 단편적 지식이 아닌 복합적 사고와 통찰력이 필요하고,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기반으로 한 상상력과 창의력이 있어야죠.” 이렇게 넓고 깊은 사고 유형은 한 종류, 한 분야에 안주해 얻을 수는 없을 터, 다양한 학문 분야를 아우르고 혹은 전혀 이질적인 생각과 관습을 더 높은 차원에서 바라볼 줄 아는 시각, 즉 통섭의 관점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전 소장의 설명이다.
최근 주목 받는 다수의 제품들 역시 통섭을 모태로 한 융·복합 기술의 결과물. 노키아가 개발하는 미래형 휴대폰 ‘모프’는 상황에 따라 휴대폰의 모양과 색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 카멜레온의 보호색 기능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거미줄의 원리를 응용한 것. 최첨단 기술에 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특성을 활용한 것으로, 기업이 원하는 통섭의 전형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 받는다. 2007년 <타임>지가 꼽은 ‘올해의 상품’에 선정된 도마뱀 로봇 ‘스티키봇’ 역시 한 번 달라붙으면 절대 떨어지지 않으면서 발걸음을 옮길 때면 매우 사뿐하게 움직이는 도마뱀의 발바닥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되었다. 로봇공학에 도마뱀에 대한 생태 연구가 합쳐져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한 사례다.
Tip 과거에서 현재까지 통섭형 인재는 누구?
■ 세종대왕
수학, 음운학, 음악, 천문학 등 수많은 학문에 열정을 보인 창조적 만능인. 재위 기간 동안 국방과 과학, 경제, 예술,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찬란한 업적을 남겨 위대한 성군으로 추앙 받고 있다.
■ 다산 정약용
조선 정조 때의 문신이며, 실학자·저술가·시인·철학자·과학자·공학자다. 조선 실학을 집대성했고, 수원화성 건축 당시 도르래 원리를 이용해 거중기를 고안하여 건축에 많은 도움을 주는 등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화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기술자, 해부학자, 식물학자, 도시계획가, 천문학자, 지리학자, 음악가였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통섭형 인재.
■ 카이스트 석좌교수 안철수
의사 출신이나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인 ‘V3’ 제품군의 개발자로 유명하며, 그 활동의 연장선에서 설립된 안철수연구소의 대표이사로 활동했다. 그 후 MBA를 수료하고 현재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직 중. 그의 모든 궤적이 학문 간을 넘나드는 창의적 관심에서 나온 산물이라고 평가 받는다.
■ 애플 CEO 스티브 잡스
침체 위기에 놓인 애플을 화려하게 부활시킨 스티브 잡스는 다양한 분야를 통섭하여 소비자들의 욕구를 정확히 충족하는 제품을 연이어 히트시키면서 세계 최고의 경영자인 동시에 이 시대 통섭형 인재의 대표 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 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패커드 회장
1998년부터 경제 전문지 <포천>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기업인’ 1위에 6년 연속 선정될 정도로 비즈니스에 대한 분석력이 뛰어났다. 대학에서 사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MBA, 공과대학 석사까지 두루 섭렵했지만 “비즈니스에 대한 영감은 경제학이 아니라 중세철학에서 얻었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통섭형 인재가 되려면 ‘배우는 법’을 배워라
지식 정보 사회가 요구하는 통섭형 인재는 시대적 대세다.
문제는 방법론. 무엇보다 고등학생 때부터 문·이과로 나뉘어 교육 받는 우리 아이들에게 통섭은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통섭적인 교육을 받으면 통섭의 시대는 훨씬 앞당겨지고, 가장 먼저 결실을 맺어야 할 곳은 교육”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 추상적 개념이 생명력을 얻어 뿌리내리고 열매를 맺기 위해 어떤 로드맵이 필요한지 알아봤다.
취재 정주연 리포터 missingu93@naver.com
융합 학문으로 지속적 넘나들기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가 바뀜에 따라 교육기관의 인재 육성 목표도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통섭형 인재가 부각하며 교육도 분과 학문의 복합이나 융합을 통한 창의적 인력 양성이 이뤄지고 있다.
최근 대학마다 앞다퉈 운영하는 ‘자유전공학부’가 대표적인 예다. 현재 40여 개 대학에서 운영하는 자유전공학부는 세부 전공을 미리 정하지 않고 계열별로 신입생을 모집, 일정기간 동안 기초 교양과목을 이수한 뒤 전공을 선택하도록 하는 제도.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 그 효과와 실적을 논할 수 없지만, 개별 학문의 한계를 극복하고 학제 간 상호 교류를 통해 연구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게 도입 취지임을 감안할 때 통섭형 인재가 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유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주경철 부학부장은 자유전공학부의 특성에 대해 “‘고기 잡는 법’을 배우는 곳”이라고 전했다. 지식 내용 자체보다 지식을 탐구하는 사고의 방법을 교육하는 것이 주목표라고. 전공이 다른 교수들이 공동으로 한 과목을 가르치는 게 강의 방식인데, 예를 들어 ‘생명’이 강의 주제라면 생물학, 미술, 철학 교수가 참여해 철학 쪽에서 보는 생명, 예술에서 보는 생명, 생물학에서 보는 생명을 가르친다. 이러한 수업 방식은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한 공학도 양성, 공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한 인문학도 양성이라는 통섭형 인재 육성의 산실 역할을 충분히 하는 셈.
하지만 ‘양을 쫓다가 길이 너무 많아 양을 잃어버렸다’는 고사처럼 자칫 여러 가지 분야를 추구하다가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가 될 수도 있을 터.
이에 대해 주경철 부학부장은 “융합은 학문의 벽을 터서 새로운 방을 하나 만드는 것과 같다”면서”인접한 학문의 면면을 관찰하고 그 과정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려면 융합 자체가 깊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즉 통섭의 개념이 여물려면 얕게 보고 엷게 아는 것을 경계하고, 이종적인 분야를 심층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각 대학이 뚜렷한 목표 아래 뚜렷한 프로그램을 구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주 부학부장의 설명이다.
어느 한 분야 문외한 만들지 말 것
통섭형 인재 육성을 위해 융·복합 학과의 개편과 정착이 교육이 할 일이라면, 평소 자녀가 어느 한 분야에 매몰되지 않게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기초를 두루 갖출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부모의 역할. 이화여대 최재천 석좌교수의 조언이다.
“글 좀 못 쓴다고 이과 쪽 교육만 하고, 수학 좀 못한다고 자연과학의 문외한을 만들지는 마세요. 자연과학이라는 게 물리 이론을 확실하게 꿰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과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죠. 직업을 여러 번 바꿔야 할지 모르는 미래에 수학, 과학과 관련 없는 직업만 선택할 수도 없잖아요. 언제 어떤 직업으로 갈아타더라도 변신이 가능하도록 융통성과 응용력을 길러주세요.”
현행 입시 체제에서 이게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면 적어도 아이가 통념을 깨는 진로를 선택했을 때 “야, 그런 거 해서 어떻게 먹고살려고 해?”와 같은 소리는 피하라는 게 최 교수의 당부.
“무조건 지세요. 아이들의 느낌을 믿으세요. 아이가 춤춰야겠다고 하면 춤추는 것에 미래가 있다는 걸 아이들이 더 직감하기 때문이에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스스로 고무돼서 깊고 넓은 공부를 할 수 있답니다. 아이가 하고 싶다는 것에 ‘묻지 마 투자’를 하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은 학문 간 가로지르기를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독서만 한 게 없다고 조언했다. “특히 고전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어요. 우리 아이들이 지금 받는 교육도 인류의 누적된 지식의 자산입니다. 고전을 통해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지식의 광야에 자기가 가진 지식의 파이프라인을 들이댈 때 통찰력이 만개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함께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 역시 필수적인 요소. A 우물을 파다가 B 우물로 옮겼을 때 당황하지 않고 그곳에서 함께 우물을 팔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역시 통섭형 인재가 갖춰야 할 핵심 역량이기 때문이다.
Tip 통섭형 인재 되는 3가지 공부 습관
01 좌뇌·우뇌 영역을 나누지 마라
두뇌 기능은 칼로 자르듯 정확히 가를 수 없다. 다시 말해 자극을 받으면 뇌의 모든 부분이 동시에 작동한다. 통섭형 인재가 각광 받는 시대에 뇌의 기능을 가르고, 학문의 경계를 중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어느 과목은 쉬운데 어느 과목은 자신이 없다고 생각해 어느 한 분야의 공부만 하는 것은 위험한 행동. 못하는 과목이나 분야도 관련 잡지나 전문 서적을 찾아 읽어 흥미를 되살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02 생각을 확장하라
모든 학문은 인간의 생각과 연결된다. 따라서 공부를 정말 잘하려면 사소한 지식에도 반드시 자기만의 생각을 더해 오래 기억하도록 노력하자. ‘부르주아’라는 단어를 공부할 때 ‘금전이나 물리적인 자산을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이라고 정의를 달달 외우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부르주아란 ‘빵집이나 식당 등 물리적 자산을 가지고 종업원들을 고용해 노동임금을 지불하고, 빵이나 음식을 팔아서 이윤을 남기는 사람’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보태 이해하면 아무리 오래 지나도 그 의미가 잊히지 않는다.

03 상상의 연대표를 그려라
그림을 이용해 암기하면 놀라운 기억력을 만들 수 있다. 그림으로 기억력을 높이는 가장 좋은 암기법은 상상의 연대표. 상상한 것들을 머릿속에 그려 순서대로 묶는 것을 말한다. 역사책의 연대표로 시작해보면 좋다. 예를 들어 1945년에 우리나라가 해방되었다는 것을 본다면 연대표에 1945년을 상징하는 줄을 긋고, 그 위에 중앙청에 태극기를 거는 병사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동시에 우리나라 허리에 삼팔선이 그어지는 상황도 상상해보는 식.
출처
각 분야 전문가 추천 통섭형 인재 3인을 만나다
이들에게 학문 간의 경계는 정말 무의미했다. 그저 관심사와 재미에 이끌리면 그것이 자연과학이든 , 인문·사회과학적 지식이든 넘나들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엮어내는 일을 즐길 뿐. 그들 너머로 미래 사회의 새로운 흐름을 보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각 분야 전문가들이 추천한 통섭형 인재 3인을 만나봤다.
취재 홍혜경 리포터 hkhong11@naver.com 사진 이의종 기자
Interview1 관동의대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장 정지훈 “미래 사회는 어떻게 엮어낼지에 주목해야죠”

한양대학교 의대 졸업
서울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 석사
미국 남가주대학(USC)
의공학 박사 교수이자
칼럼리스트로 활동
현 관동의대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장

현재 관동의대 명지병원에서 IT융합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정지훈(41) 교수. 의학을 공부하고 사회과학과 공학, IT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칼럼을 쓰고 책도 내며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그의 주된 일은 뭘까.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이죠. 그래도 메인 포지션은 학교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고, 병원에서는 IT융합연구소를 중심으로 융합 문화를 퍼뜨리는 일을 하고 있어요.”
융합은 학문이기보다 문화로 바라보는 경향이 크다는 그는 병원 내에 수많은 과와 인력이 있는데, 이들과 소통을 통해 IT 기술이나 나노 기술, 서비스 디자인 능력 등을 접목해 그들의 능력을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에 포인트를 둔다. 거기서 나오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괜찮은 부분에 투자하고 연구·구현해내는 일이 연구소의 중요한 일 중 하나.
특히 컴퓨터에 관한 그의 관심은 어릴 적부터 지대해 동네 백화점에 전시된 컴퓨터에 손으로 써온 컴퓨터 프로그램을 쳐놓고 수정하며 미국이나 일본 잡지를 구해 공부했을 정도다. 하지만 주변 환경에 밀려 의대에 갈 수밖에 없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도 하고 음악과 사회과학 분야에도 관심이 많던 그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임상 의사로서 가치보다는 뭔가 엮어내는 쪽으로 인생을 디자인했다.
“전문가들이 판 곳은 많은데 사회가 효율을 못 내는 것은 엮어내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죠. 엮어내기 위해서는 제대로 공부해야겠다 싶었어요. 석사 과정은 ‘보건정책관리학’이라 해서 사회과학적 분야를 공부하고, 박사 과정은 물체나 물건을 만드는 것을 알기 위해 공대에 지원해 의공학을 전공했죠.”

사람들의 행복과 관련된 직업 많아질 터
미국 유학을 통해 세계가 변하고 있음을 느꼈다는 정 교수는 “자녀를 통섭형 인재로 키우려면 우선 아이들이 뭘 잘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알고 미래 사회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초등1, 4학년 아이를 둔 정 교수도 아이들이 다양한 접점을 가질 수 있도록 이것저것 시켜본다. 아이가 뭘 잘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건 부모 잘못일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생각.
“미래 사회는 소수의 전문 분야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일자리가 사람들과 소통하고 노는 문화, 사람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드는 데 관련된 직업이 많아질 것이다.” 이는 로봇이나 자동화로 대체하기 힘들기 때문. 이를 위해 아이들은 잘 놀고 네트워킹 잘하고 자기를 서포트해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들고, 엄마들은 대화나 소통 능력을 길러주고 친구들과 나누는 것을 연습시켜야 한다.
그는 부모들을 위한 미래학 추천서로
<부의미래> <제4의 불> <드림소사이어티> 등을 권했다.
Interview2 3D 입체 영상 (주)드림한스 대표 한윤영 “인문학 비롯해 타 분야 접하니 디자인이 풍부해졌어요”

동아대학교
국민윤리학과 졸업
홍익대학교 광고홍보학 석사
세계 10대 영화제 브라질
ANIMA MUNDI
2010 - PANORAMA 부분 선정
2010년 3D/CG 디지털
콘텐츠 분야 대상 수상
현 (주)드림한스 대표

(주)드림한스는 3D 입체 영상 혹은 3D 입체 에니메이션, 4D 영상까지 하는 특수 영화 제작 회사다. 이곳에서 만든 영상은 주로 테마파크, 박물관, 전시관, 특수 영상관, 3D 입체 영화관, 엑스포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다.
2010년 3D/CG 디지털 콘텐츠 분야 대상을 수상할 만큼 기술적인 측면에서 영상 퀄리티나 입체감이 뛰어나다고 평가 받았다. (주)드림한스의 한윤영(39) 대표는 처음부터 디자인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더구나 기술과도 무관한 인문계 출신이다. 이런 이력에 기술적 측면까지 접목하려면 과정상의 어려움은 없었을까.
“기술이지만 원초적인 것은 디자인이나 기획에 기초를 둔 기술이라는 점이죠.”
그는 어렸을 때부터 디자인을 좋아하고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딸이 교육과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길 원한 부모님의 권유로 ‘국민윤리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디자인학과 옆에서 도강할 만큼 너무나 디자인 공부를 하고 싶었던 그는 대학 3,4학년 때부터 혼자서 미술사, 디자인, 색채, 컴퓨터그래픽 등을 공부했다. 이후 대학 4학년 재학 중에 애틀랜타올림픽 기념 공모전에서 디자인 분야 금상 수상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산업대전 특별상 등 각기 다른 테마로 총 4회 상을 타면서 이것이 발판이 되어 KBS 아트비전 3D 컴퓨터그래픽 개발 및 CG 디자이너로 재직한다.
“전공과는 무관하게 디자인 공부를 했지만, 오히려 인문이라든지 다른 분야들을 접하면서 좀더 디자인 내용을 넓고 풍부하게 만든 것 같아요.” 디자인학과 공부를 안 했기 때문에 그 틀 안에 갇히지 않은 것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다. 프로그램에서 ‘고려궁 만월대’를 복원하며 KBS 미술상을 받은 것이 대표적 사례.
“정통 미술을 공부했다면 정통 기법을 썼을 텐데, 오히려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고 영상도 새로운 각도에서 제작하다 보니 지금은 보편화되었지만 당시에는 잘 만들었다고 호평을 받았죠.”

과학과 합쳐진 영웅 만들어볼 계획
기획이 중요하려면 다양한 아이디어가 풍부해야 하는데 아이디어는 주로 미술관, 전시관, 체험전을 통해 얻는다. 전시와 연결된 현장에서 받는 인포메이션이 중요하기 때문. 프로젝트의 경우 예를 들어 나뭇잎을 기획으로 해서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면 나뭇잎의 어원과 종류 등 근원적인 공부부터 해야 하기에 자연과학이나 인문학 쪽을 가리지 않고 찾아서 공부하다 보니 할 때마다 특이하다는 평을 받는 편.
그는 유독 로봇에 관심이 많다. 이유가 뭘까.
“어릴 때부터 만화영화를 보면 로봇이 나라나 지구를 구해주잖아요. 강한 뭔가가 구해준다는 것이 맘에 들어요. 그래서 과학과 미래 산업이 집대성한 로봇, 그런 영웅을 만들어볼 계획이에요.”
디자인은 과학이 뒷받침될 때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과학에 관심이 많은 그는 엔지니어 쪽도 관심이 있어 컴퓨터가 고장 나면 직접 고칠 정도라고 한다. 그의 역사물은 진주박물관의 진주대첩과 울돌목의 거북선을 타고 보는 영화관에서 명량대첩을 통해 접할 수 있다.
Interview3 (주)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 함은혜 “서로 다른 영역 넘나들려면 소통이 중요하죠”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이화여자대학교 생태학(동물행동학) 석사
‘녹색연합’ 정책실, 시민참여국 상근
현 (주)아모레퍼시픽 고객기술팀 연구원

함은혜(31) 연구원은 이력이 참 특이하다. 개연성 없어 보이는 프로필의 접점이 궁금했다.
“어릴 때부터 환경에 관심이 많았죠. 중국에서 발생한 황사가 일본까지 영향을 주는 것처럼 환경 문제는 한 국가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정치보다는 외교 쪽에 방점을 찍고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어요.”
졸업 후 이런 문제 의식을 시민들과 공유하고자 선택한 것이 녹색연합이라는 시민 단체.그러나 3년이 흐른 뒤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그 안에서는 설득이 필요 없었죠. 하지만 반대 입장 사람들과 뜻을 함께 하려면 내 논리가 충분히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그래서 선택한 공부가 생태학이다. 이과 베이스가 없는 상태에서 어려움은 없었을까. “고등학생 때 생물부 활동을 할 만큼 생물이나 화학을 좋아했어요. 수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문과를 선택했죠.”
생태학 공부를 위해 찾은 곳은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거기서 통섭에 대한 지식을 접한다. 생태학을 공부하면서 음악을 하는 분들의 얘기를 듣고, 생태학이 단순히 동식물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 부분과 연관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호주 멜버른의 시청 건물은 흰개미의 집 짓는 원리를 건축에 적용한 사례로, 냉방 시설 없이도 자연스럽게 환기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어요. 이외에도 식물의 원리를 이용한 벨크로(일명 ‘찍찍이’) 등을 통해 생태학이 다양한 부분과 연계되면 활용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빈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다
그 후 다양한 이력이 바탕이 되어 기업에서 추천을 제안 받았고, 현재는 (주)아모레퍼시픽 고객기술팀의 연구원으로 일한다. 고객과 기술의 만남, 마케팅과 연구소라는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하는 일이 무엇일까.
“소비자들이 원하는 느낌과 그것을 구현해낼 수 있는 기술은 무엇일까 연구하죠.” 이를 위해 화장품만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건강과 아름다움에 대한 다른 영역도 주목해 전기, 전자, 통신 부분의 새로운 기술에도 관심을 갖고 화장품과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 찾는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 중 하나가 뷰티 푸드 개념. “알약에 바르는 제품을 세트로 구성한 것인데, ‘식품’이라는 영역을 보지 못했다면 이런 제품이 나오기 어려웠겠죠.”
이처럼 서로 다른 영역을 넘나들기 위해서는 각기 고유한 색깔이 있는 연구원, 마케터, 디자이너들의 큰 틀에서 소통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그가 하는 일은 보고서 작성이나 정기적인 미팅을 통해 현재의 기술 트렌드와 이슈를 공유한다. 신제품을 출시하는 것도 아니고, 업무에 특별히 매뉴얼이나 가이드라인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떻게 보면 정해진 일이 없다는 것이 스트레스일 수도 있을 텐데 마냥 즐겁다. 비결이 뭘까.
“빈 도화지에 하나의 키워드를 잡고 여러 영역을 차용해서 뭔가 그려나간다는 것이 재미있어요. 접목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내려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데, 시민 단체 경험과 생태학 공부 등 다양한 체험이 많은 도움을 주었죠.”
단순 조합이 아닌 소통과 사고의 확장 능력을 갖추기 위해 그는 다양한 사람들의 강연을 듣거나 IT 분야, 문학, 영화 제작 등의 메일링 리스트를 매일 받는다. 이런 과정이 지금은 점처럼 떨어져 있지만, 향후 연결 고리가 되어 새로운 창조적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 거라 믿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