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턱밑 전통산업, 저만큼 간 첨단산업

2011. 3. 12. 09:09C.E.O 경영 자료

[중국, 中華로 돌아오다]철사 회사 30년 만에 ‘철강 신화’…세계시장 노크

(2부) ③ 한국 턱밑 전통산업, 저만큼 간 첨단산업 - 장쑤성 사강철강 르포

경향신문 | 특별취재팀 | 입력 2011.03.10 20:16 | 수정 2011.03.10 22:49

 

중국은 철강이나 조선, 석유화학 등 전통산업뿐 아니라 첨단산업에서도 세계 최강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낸 지 오래다. 우주 개발이나 군수 산업, 신재생 에너지, 바이오·제약분야는 오히려 한국이 중국을 영원히 앞지르지 못할 가능성이 큰 분야로 지적되고 있다. '세계의 공장'에서 기술 강국으로 변신한 중국 산업을 들여다봤다.

지난달 말 중국 장자강(張家港)시. 상하이 푸둥국제공항에서 북서쪽으로 2시간가량 달리자 거대한 공장들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서부터 장쑤(江蘇) 사강(沙鋼)철강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사강철강 노동자들이 원료인 철광석과 유연탄을 용광로에 넣기 전 원료에 대한 사전 소결작업을 하고 있다. | 사강철강 제공

동승한 사강철강 직원의 목소리에서 자부심이 묻어났다. 장쑤 사강철강은 중국 내 유일한 민영 철강기업이다. 조강생산 능력(2009년기준)은 연간 2050만t 규모로 세계 6위다. 지난해 1463억위안(24조8700억원)의 매출을 올려 중국 민영 기업 중 1위를 차지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장자강 주도로로 진입하자 거대한 제련공장과 원료 저장소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장자강시의 전체 인구 89만명 중 3만6000여명이 사강철강에 직접 고용돼 일하고 있다. 직원 가족과 사강철강 협력사, 관련 업종 종사자 등을 감안하면 장자강시 인구 대부분이 사강철강 덕에 먹고 산다. 포항이나 광양처럼 장자강도 사강철강이 성장하면서 함께 발전한 도시다. 첸쉬아동 공산당 부서기(51)가 안내한 제련공장에서는 열연강판을 만드는 작업이 쉴새 없이 이어졌다. 쇳물을 녹여 만든 슬래브(Slab)를 압연기에 넣어 900~1000m 내외의 강판으로 늘린 뒤 코일 형태로 감아내는 과정이다. 통상 여러 대의 압연기에 슬래브를 넣어 한꺼번에 늘리는 작업을 진행하는 것과 달리 사강철강은 한대의 압연기에 슬래브를 앞뒤로 여러번 통과시키며 길이를 늘리는 게 특징이다.

첸 부서기는 압연기를 가리키며 "유럽에서 폐기처분된 압연기를 싸게 들여와 수리한 뒤 쓰고 있는 중"이라며 "이러한 생산원가 절감이 오늘날 사강철강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생산된 철강제품은 양쯔강변에 위치한 항구를 통해 중국 전역으로 보내진다. 사강철강은 제품 선적을 위한 1만t급 전용부두만 10개를 확보하고 있다.

사강철강 회장인 선원룽(65)은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과 곧잘 비교된다. 1975년 장쑤성 소규모 공장에서 기계조립공으로 일하던 그는 공장장이 된 뒤 장자강시의 지원을 받아 45만위안(7800여만원)으로 공장을 설립했다. 철사 제품으로 시작해 30여년 만에 세계적인 철강기업으로 성장했다. 선 회장은 평소 "사업의 롤모델은 포스코"라고 강조한다.

사강철강은 중국 철강산업의 급성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업체다. 1990년대 들어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중국의 조강생산 능력은 93년 미국을 제치고 2위로 올랐다. 96년에는 일본까지 제치고 1위에 올라 15년째 세계를 석권하고 있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중국의 조강생산은 연평균 17.9%라는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했다.

90년대 세계 조강생산량의 8.6%에 불과했던 중국산 조강 점유율은 2000년 15.2%, 2005년 30%로 상승했다. 2009년에는 세계 생산량 12억2400만t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5억6500만t(46.4%)을 만들고 있다.

이 같은 성장세는 내수 수요 폭증과 맞물려 있다. 매년 1%씩 국토가 도시화되고 있는 데다 고속철 확대, 서부대개발 등에 따른 수요 확대로 철강은 내놓기가 무섭게 소비된다. 세계철강협회는 올해 중국 철강 수요가 전 세계 수요의 45%(5억7900만t)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내수에만 집중하던 중국 철강업계가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싼 가격을 무기로 한국과 일본, 태국 등 동아시아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실제 국내 선박 제조용 후판의 경우 중국산 수입량이 크게 늘었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중국산 후판을 전년대비 10배 증가한 20만t가량 수입할 예정이다.

한국과의 기술 격차도 좁혀지고 있다. 아직까지 중국산 철강제품은 기술 수준이 낮은 열연강판이 주를 이루지만 연구·개발(R & D)에 투자를 집중하면서 부가가치가 높은 냉연강판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사강철강도 포스코로부터 첨단 공법인 '파이넥스 공법'을 이전받기 위해 협의를 진행 중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중국 철강업체들은 향후 5년간 지속적인 M & A와 생산량 증대를 통해 시장 지배력을 높여갈 것"이라며 "기존 기술력을 바탕으로 생산원가를 절감하고 업체간 상호 보완·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우리나라 업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조운찬 베이징 특파원, 김준 산업부 차장, 오관철 경제부 차장, 박병률 경제부 기자, 송진식 산업부 기자

< 특별취재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