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센터 알바에서 월 매출 60억 사장된 `엄친아`

2011. 3. 12. 09:24C.E.O 경영 자료

이삿짐센터 알바에서 월 매출 60억 사장된 `엄친아`
쿠팡 김범석 대표…"헝그리 정신으로 그루폰과 맞짱 뜰 것"
기사입력 2011.03.11 08:58:49 | 최종수정 2011.03.11 15:03:40

"하버드 출신에다 투자금도 많다고 하니 저를 재벌 2세쯤으로 보시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학창시절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며 쌓은 `헝그리 정신`이 없었다면 소셜커머스란 생소한 분야에 도전할 수 없었을 겁니다."

국내 3대 소셜커머스 업체 중 하나인 쿠팡의 김범석 대표(33)는 9일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소셜커머스 사업은 돈이 아닌 `헝그리 정신`만 가지고 뛰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집안 출신에 소위 `빽`도 많을 거라는 항간의 소문이 억울하다는 것이다.

△ 설립 6개월 만에 회원 수 1위…"빽 있는 거 아니냐" 오해 받아

김현중, 이나영이 출연한 TV 광고로 유명한 쿠팡은 소셜커머스 업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회사로 꼽힌다. 음식점·호텔 등의 할인 이용권을 주력 상품으로 하는 쿠팡은 크라제버거 할인권, 워커힐호텔 이용권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면서 단 기간에 인기 사이트로 떠올랐다.

지난해 8월 설립 당시 월 2억여원에 불과했던 매출액(거래액)은 올해 1월 기준으로 월 60억원을 넘어섰다. 회원 수는 3월 현재 170만명으로 경쟁업체인 티켓몬스터, 위메이크프라이스 등을 제치고 업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성장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쿠팡은 다른 업체에 비해 유리한 여건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냐는 눈총을 받고 있다. 경쟁업체에 비해 월등히 많은 200억원의 초기 자본금을 가지고 시작했다는 점이나 윤증현 현 재정기획부 장관의 딸인 윤선주 이사(34)가 회사에 있다는 면도 그런 오해를 키우기 충분한 요소다. 김 대표는 그러나 이런 오해에 대해 한 마디로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자본금은 제가 미국에서 알던 투자자들을 설득해 어렵게 모았습니다. 대학시절 만난 선주(윤선주 이사)는 얼마 전 까지도 장관님 딸인지 몰랐구요. `빽 때문에 떴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 동안의 노력이 평가 절하되는 것 같아 섭섭해요"

△ 이삿짐 알바하며 생활비 벌어…`도전하는 삶` 위해 벤처 창업

김 대표는 미국의 3대 명문 고등학교인 디어필드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하버드 정치학 학사와 MBA 석사과정을 수료한 이른바 `엄친아`다.

그가 다른 엄친아들과 다른 점은 집안이 그다지 유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의 아버지는 국내 한 건설회사의 평범한 회사원으로 자식을 미국에 유학보낼 만큼 넉넉한 사정은 아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그는 낮엔 공부하고 밤엔 일하는 `주독야경(晝讀夜耕)`의 삶을 살아야 했다.

김 대표는 "친구들이 여행을 갈 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이삿짐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며 "어려운 시절을 겪어봤기에 사업이 실패해 빈손으로 돌아간다 해도 두려울 게 없다"고 말했다.

대학을 마치고 미국의 유명 컨설팅 회사인 BCG(Bostern Consulting Group)에서 근무하던 김 대표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돌연 빈티지 미디어(Vintage Media)라는 벤처 회사를 만들었다. 5년 간 성공적으로 회사를 운영한 뒤에는 이를 매각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소셜커머스 산업이라는 척박한 분야에 도전을 결정했다. 성공이 보장된 길을 포기하고 제 발로 고생길로 들어선 셈이다.

그는 "열심히 일해도 눈에 결과가 보이지 않는 컨설팅 회사에서 평생 일한다는 게 답답했다"며 "소셜커머스 사업과 같이 일한 결과가 피부로 직접 느껴지는 일이 아니면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 유태인 투자자 도움 받아…"한국 벤처 문화 바꾸고 싶다"

한국에서의 인맥이 전무했던 그는 소셜커머스 사업을 준비하며 곧바로 어려움에 직면했다. 미국에서 벤처 기업을 운영할 때는 기발한 아이템과 열정이면 충분했지만 국내 사업 환경은 달랐다. 더 좋은 조건과 아이디어를 제공해도 소위 `끈`이 없어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김 대표는 "대기업 계열사중 한 곳과 계약을 맺기 직전에 경쟁 업체에서 아는 사람을 통해 훼방을 놓은 경우도 있었다"며 "한국에서 `출신`, `소속` 등이 없다는 것은 크게 불리한 요소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회상했다.

어려운 와중에도 쿠팡이 빠르게 시장에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는 김 대표가 미국에서 벤처 기업을 운영할 당시 알고 지내던 유태계 투자자들의 도움이 컸다. 김 대표의 실력을 믿고 있던 투자자들은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쿠팡의 성장을 기다려주었다. 덕분에 김 대표는 경쟁 업체에 비해 많은 자금을 고객 서비스(CS)부문에 투자해 `소셜커머스는 못 믿어도 쿠팡은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는 "특별한 아이템으로 승부하기보다 기본에 충실한 회사를 만들고 싶다"며 "고객들에게 신뢰를 심어준다면 세계 최대 소셜커머스 업체인 그루폰이 들어온다 해도 겁날 게 없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마지막으로 쿠팡의 성공을 통해 한국의 벤처 문화를 바꾸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가 경험한 한국은 벤처 사업을 시작하기 `너무 힘든` 나라다.

그는 "한국은 젊은이들이 투자를 받으려고 하면 투자자들이 회사 지분의 반을 달라고 요구하는 등 사업을 시작하기가 어려운 환경"이라며 "좋은 아이템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한국의 벤처 문화를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 <용어>

소셜커머스 : 일정 수 이상의 구매자가 모일 경우 특정 상품을 파격적인 가격으로 할인해 주는 전자 상거래 방식이다. 구매자들이 할인을 받기 위해 동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주로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기 때문에 `소셜커머스(Social commerce)`란 이름이 붙었다. 대표적인 소셜커머스 업체로는 세계 35개국에 50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그루폰(Groupon)이 있다.

[정지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