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수입국 15곳 `춘추전국시대`

2011. 8. 6. 09:18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삼겹살 수입국 15곳 `춘추전국시대`

매일경제 | 입력 2011.08.05 17:11

 

바야흐로 삼겹살 '춘추전국' 시대다. 국산 삼겹살은 이미 시장점유율에서 수입산에 밀려났고, 식탁에 오르는 삼겹살 국적은 15개에 달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삼겹살은 7만5708t이 수입돼 이미 국내산 물량(5만4030t)을 추월했다. 게다가 냉장 삼겹살은 미국, 냉동 삼겹살은 오스트리아가 1위라는 공식도 이미 깨져 한국 삼겹살 시장을 놓고 각국이 치열한 선점 경쟁을 펼치고 있다. 달이 바뀔 때마다 수입국 1위가 뒤바뀌는 혼전이다. 지난달부터는 유럽산 삼겹살이 약진하는 모양새다. 7월 1~20일 검역기준 통계에 따르면 냉장ㆍ냉동을 합해 독일(1245t)이 압도적인 1위였다. 네덜란드, 칠레, 덴마크, 벨기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냉장 삼겹살 1위 자리도 미국에서 캐나다로 바뀌었다.

◆ 수입증가는 구제역ㆍFTA 합작품 삼겹살 수입국이 다변화된 일차적인 원인은 구제역이다. 지난해 겨울 구제역이 전국을 강타하면서 전체 25%에 해당하는 331만마리의 돼지가 살처분됐다. 식용돼지(비육돈)는 물론 어미돼지, 씨돼지를 가리지 않고 땅에 묻었다. 양돈산업 기반이 무너지면서 국내산 돼지 값은 급등했다. 국내산을 선호하던 소비자들은 어쩔 수 없이 값싼 대체재를 찾기 시작했다. 덕분에 올해 상반기 삼겹살 수입량이 전년 동기 대비 32.5%나 늘었다.

삼겹살 값이 오르자 정부가 뛰어들었다.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돼지고기 24만t(냉장 삼겹살 2만t 포함)을 무관세(할당관세 0% 적용)로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돼지고기는 관세율이 매우 높은 품목이다. 냉동은 관세율이 25%, 냉장은 22.5%에 달한다. 덕분에 수입산 가격은 국내산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관세가 사라지면서 삼겹살 수입시장이 활짝 열린 셈이다. 여기에 각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은 삼겹살 수입을 늘리는 지렛대로 작용하고 있다. 한ㆍEU FTA 발효로 냉동 삼겹살 관세는 일단 2.5% 낮아진 뒤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철폐된다. 그러나 우리 시장에서 EU는 물론 미국, 캐나다, 칠레산이 경쟁하고 있기 때문에 유럽 국가들이 한국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부 대형마트는 벨기에산 냉동 삼겹살을 현재보다 3분의 1 가격에 파는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처럼 삼겹살 춘추전국시대는 구제역과 FTA 합작품이다. 국내 양돈산업 위기가 삼겹살 수출국가들에 기회가 된 셈이다.

소비자들 기호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달 초 소비자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값싸다'(40%), '국내산과 품질 차이가 없다'(10%), '구제역에서 안전할 것 같다' 등이 수입 삼겹살을 선호하는 이유였다. 김원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사는 "국내산과 맛에서 큰 차이가 없으면서도 저렴한 수입산 삼겹살이 들어오면서 소비패턴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양돈업계 관계자도 "더 이상 소비자들이 '신토불이'를 고집하지 않는다"며 "소비자들 입맛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아 위기감을 느낀다"고 염려했다.

◆ 삼겹살 외식비 6개월 연속 상승 수입 물량이 늘고 있는 가운데 올해 들어 삼겹살 외식비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국산 물량이 부족한 데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로 식당들마저 비용 일부를 소비자한테 전가하는 모양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6월 삼겹살 외식비는 전년 동월 대비 16.6%, 7월에도 17.3%나 급등했다. 지난 2월 상승률이 11.3%로 훌쩍 뛴 이후 무려 6개월 연속 두 자릿수 상승세다. 이 때문에 삼겹살은 물가상승 주범으로도 꼽힌다. 지난 6월의 경우 소비자물가상승률 4.4% 중 삼겹살 기여도가 0.11%포인트에 달한다. 기여도란 총물가상승률에 개별 품목이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다. 삼겹살 가격이 작년과 동일했다면 물가는 0.11%포인트 낮아졌을 것이란 얘기가 된다.

정부도 비상이다. 최근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기획재정부는 오는 20일까지 수입업체가 비행기를 통해 삼겹살을 수입하면 항공료를 지원한다고 밝혔고, 행정안전부는 삼겹살을 포함한 10대 품목을 특별 물가관리 품목으로 지정해 매달 전국 단위로 비교하기로 했다.

흥미로운 점은 돼지고기 값 급등이 비단 우리나라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돼지고기 수요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인 중국도 초비상이다. 중국인은 소고기의 10배, 닭고기의 8배 이상으로 돼지고기를 소비한다. 이 때문에 돼지고기가 물가상승률을 좌우한다.

중국은 지난 6월 기준으로 돼지고기 가격이 전월 대비 57%나 상승했다. ㎏당 30위안이나 올라 소비자물가상승률의 20%를 돼지고기가 끌어올렸다.

중국 정부는 가격 안정을 위해 대형 양돈장에 우리 돈으로 4100억원을 긴급 지원하고 암퇘지 1마리당 100위안의 보조금도 지급하고 있다. 일단 우리 정부는 9월을 정점으로 삼겹살 가격이 점차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신헌철 기자 / 이상덕 기자 / 이기창 기자 / 차윤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