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온상’ 민자역사, 불법대출에 배임·횡령 ‘천태만상’

2011. 9. 4. 11:57이슈 뉴스스크랩

‘비리온상’ 민자역사, 불법대출에 배임·횡령 ‘천태만상’

매경이코노미 | 입력 2011.09.03 13:59 |

 

#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지난 8월 16일 오후 지하철 4호선 창동역. 주변 아파트단지, 이마트와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 흉물처럼 방치돼 있다. 날씨만큼이나 을씨년스러운 이 건물은 코레일이 2004년부터 추진해온 창동민자역사다. 어느덧 사업이 시작된 지 7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공사는 진척이 없다. 창동민자역사 분양사무실 문은 굳게 닫혀 있고 건물에는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경고문만 덕지덕지 붙어 있다.

↑ 공사가 중단된 창동민자역사 모습.

코레일이 추진해온 민자역사에 비상등이 켜졌다. 민자역사란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자본을 유치해 노후되고 좁은 역사를 탈바꿈하는 사업이다.

기존 역사 기능은 그대로 두고 쇼핑, 문화 기능을 갖춘 복합공간으로 개발하는 게 목표다. 그런데 민자역사 개발주체마다 비리에 휩싸여 곳곳 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다.

전국에 개발 중인 민자역사만 20여개. 사업비는 총 4조원에 달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사업이 추진돼 어느새 10년 이상 끌어왔다.

전국 20여개 민자역사, 사업비만 4조원

중간 성적표를 점검해보면 쓴웃음부터 나온다. 그나마 롯데, 한화 등 대기업이 운영하는 민자역사는 성적이 괜찮다.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대구점을 운영하는 롯데역사는 1986년 국내 최초로 민자역사 개발사업을 위해 설립됐다. 롯데쇼핑이 위탁경영계약을 통해 영등포점과 대구점을 운영 중이다. 실적은 괜찮은 편이다. 지난해 6915억원 매출에 영업이익만 1086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2009년 951억원보다 늘었다.

서울역·청량리민자역사를 운영하는 한화역사는 1987년 9월 설립됐다. 원래 회사명이 서울청량리역사㈜였지만 1995년 8월 한화역사㈜로 변경했다. 지난해 매출 320억원에 영업이익 101억원을 기록한 알짜회사로 손꼽힌다.

이들 몇몇 사례를 제외하면 제대로 사업이 진척된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사업장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돈줄이 막히면서 회사 자산이나 상가분양금을 담보로 무리하게 대출해 줄도산 위기를 맞았다. 창동·노량진역은 아예 공사가 중단됐고 성북역은 인허가도 받지 못했다. 산본역 시행사는 지난 5월 법정관리에 들어가 파산 여부를 기다리고 있다.

부실한 개발업체가 사업 떠맡아

창동민자역사가 사정이 가장 심각하다. 2004년 2월 건축허가를 받을 때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대우건설, 대덕건설, 효성 등 시공사만 3번이 바뀌어 2007년에 효성이 공사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이미 상가 분양을 진행해 지하 2층, 지상 11층 건물에 들어설 2000여개 점포 분양률이 80%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이후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시행사인 창동역사㈜가 공사비 200억원을 미납하면서 시공사 효성이 유치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창동역사는 잦은 시행사 교체 과정에서 불법대출 문제가 불거졌다. 현 시행사 대주주 김 모 씨는 전 대주주인 안 모 씨로부터 지분 69%를 넘겨받았다. 이 과정에서 김 씨는 자기 자본이 아닌 창동역사㈜ 주식을 담보로 한화투신으로부터 310억원을 빌렸다. 대출을 통해 손쉽게 창동민자역사 사업권을 얻었다는 얘기다. 이후 대주주 김 씨는 대출이자를 분양대금으로 갚아 배임, 횡령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전 대주주 안 모 씨 역시 창동역사㈜를 담보로 다른 사업에 지급보증을 섰다가 사업 실패로 우발채무가 발생해 창동민자역사는 현재 압류가 걸린 상태다. 사업이 무산 위기에 놓이면서 상가 수분양자(분양을 받은 투자자)들은 고스란히 투자금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문제 해결의 총대를 멘 코레일 측도 명쾌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창동민자역사 해법에 대해 코레일 관계자는 "시공사 효성과 한화투신, 수분양자 등과 함께 해법을 모색 중이다.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거나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는 등 방법을 놓고 고민 중인데 최대한 수분양자 피해를 줄이는 쪽으로 결론을 낼 것"이라고 해명했다.

노량진민사역사는 소송에 휘말려 있다. 코레일 측은 지난해 1월 시행사인 노량진역사 대표의 사업주관권을 취소하고 그해 4월 시행사 해산소송까지 냈다. 노량진역사 대표 김 씨는 착공 전까지 사전분양이 금지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3년, 2005년 두 차례 불법적으로 상가를 사전분양했다.

천안민자역사는 허가받은 지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착공조차 못 했다. 원래 건축법상 건축허가를 받은 뒤, 1년 이내 미착공 시 자치단체에서 건축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 다만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면 1년 범위에서 착수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이런 법 조항을 활용해 2007년 11월 건축허가를 받은 뒤 2008년 1년 연장했고 다시 2009년 11월 착공신고를 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업은 진척되지 않았다. 천안민자역사는 경기 침체로 투자자 모집이 어려워지면서 법적 허용 기간 이후에도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 사업자 측은 천안시의 지분 참여를 요구하고 있지만 시에서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코레일 퇴직자가 민자역사 임원 차지

민자역사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애초 사업자 선정에서부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고 지적한다.

민자역사는 토지소유자 코레일이 사업자를 선정하면 사업자가 먼저 역사를 신축해 코레일에 제공하고 기타 상업시설을 30년간 사용하는 구조다. 30년 후 사업자는 해당 상업시설을 다시 기부채납(잠깐용어 참조)해야 한다. 사업이 시작되거나 운영수익이 발생하기도 전부터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구조다. 연간 수익이 지분에 따라 배당되는 것 이외에 매년 수십억원대에 달하는 점용료도 별도로 철도시설공단에 지불해야 한다.

이뿐 아니다. 사업자는 지자체에도 도로, 공원을 짓는 등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그만큼 사업자 부담이 크다는 얘기다. 하지만 코레일은 그동안 이런 부담을 이겨낼 만한 우량 사업자를 선정하지 못했다.

감사원이 지난 3월 코레일의 철도자산관리 실태를 감사한 결과 최초 사업주관자 자격요건은 신용등급 B 이상이거나 납입자본금이 100억원 이상 법인으로 돼 있었다. 그러나 코레일은 안산 중앙역, 노량진민자역사 등 주요 민자역사 사업주관자를 변경하면서 자격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개인, 법인을 사업자로 선정했다. 코레일이 문제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얘기다. 한태욱 대신증권 부동산전문위원은 "코레일은 역사부지만 제공하고 사업능력이 안 되는 무자격자에게 사업권을 주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민간사업자 선정 시 자금조달, 사업수행능력, 아이템 등 자격심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금융학과 교수 역시 "민자역사는 민간자본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사업자 선정이 중요한데, 이 과정에서 비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사업자 선정의 객관성 확보를 위한 심사 공정성이 절실한 때"라고 지적한다.

사업자 자금조달능력 점검해야

문제는 또 있다. 창동역사㈜와 코레일이 맺은 업무협약서를 보면 제8조 1항에 '창동역사㈜ 임원 중 최소 이사 1인과 감사 1인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코레일이 추천한 자로 구성한다'고 돼 있다. 이 규정 덕분에 그동안 민자역사 임원의 30%가량을 코레일 퇴직임원이 차지했다. 민자역사 요직이 코레일 퇴직자 노후 보장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지금부터라도 민자역사 사업을 원만히 추진하려면 사업주체인 코레일이 총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역사부지를 제공하고 누워서 배당만 받는 안일한 태도보다는 적극적인 사업자 선정,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일수 씨티프라이빗뱅크 팀장은 "민자역사 개발업자 선정기준을 강화하고 신용등급에 따른 판단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자금조달을 위한 재무능력을 점검하는 한편 무리한 프로젝트 규모도 규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잠깐용어

기부채납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무상으로 재산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기부자가 그의 소유재산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국유재산 또는 공유재산으로 증여하는 기부의 의사표시를 하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승낙하는 채납 의사를 표시함으로써 성립하는 행위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622호(11.09.07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