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뷰티산업 주무르는 청담동 원장님들

2011. 9. 5. 09:16분야별 성공 스토리

한국 뷰티산업 주무르는 청담동 원장님들

입력 : 2011.09.04 21:35

전문 노하우·스타 파워 갖춰 헤어·메이크업 유행 주도… '원장님 브랜드' 만들기 위해 매출 2조 대기업도 '쩔쩔'

화장품 매출로만 연간 1조원 이상을 올리는 LG생활건강은 최근 메이크업 브랜드를 출시하기 위해 4년간이나 한 사람에게 공을 들였다. 화장품업계 한 관계자는 "LG가 삼고초려, 사고초려를 넘어서 수십고초려를 한 셈"이라며 "대기업을 비롯해 중견 화장품 회사까지 5~6군데가 한꺼번에 그 사람에게 달려들었기 때문에 누가 먼저 손을 잡느냐가 업계의 초미의 관심이었다"라고 말했다.

LG생활건강이 매달린 사람은 바로 서울 청담동 미용실 원장인 정샘물씨다. 20년 경력의 정 원장은 배용준을 비롯해 전지현, 이효리 등 여러 스타의 머리부터 얼굴 화장까지 전담하는 등 업계에서도 이름났다. 그가 4년 전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유학길에 오르자 대기업 마케팅 직원들이 샌프란시스코까지 찾아가 그녀와 공동으로 제품을 출시하자고 설득하기도 했다. 아모레퍼시픽 역시 청담동에서 소문난 고원혜 원장을 제품 컨설턴트 겸 고문으로 위촉했다.

화장품·미용용품·목욕용품 등 국내 뷰티산업의 메이저 플레이어들은 대기업 화장품업체들이다. 하지만 매출 1조~2조원을 넘나드는 대기업들도 쩔쩔매는 한국 뷰티산업의 숨은 실력자들이 있다. 바로 '청담동 원장님들'이다.

왼쪽부터 정샘물, 이희, 차홍 원장
'전문성+스타파워'를 한꺼번에. 대기업들, 앞다퉈 '청담동 원장님' 모셔 가기

'청담동 원장님'은 업계에선 '스타군단의 대모(代母)'로도 불린다. 각종 연예인의 머리 스타일과 메이크업을 전담하며 그들의 이미지를 완성해주기 때문이다. 가끔 유명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소속 미용실을 옮길 경우 연예인들도 그들을 따라 미용실을 옮기기도 한다. 이 때문에 한 미용실과 계약기간이 끝나면 마치 프로스포츠처럼 FA(자유계약선수)로 분류돼 몸값이 수억원에 달하기도 한다. 최근 각종 매스컴을 통해 '솜털 세안법' 등으로 큰 인기를 누린 우현증 원장이나 '셀프 헤어법'으로 팬클럽까지 갖고 있는 차홍 원장은 최근 3~4개 기업으로부터 제품 출시 제안을 받기도 했다.

미용업계에선 특히 스타들이 보여주는 모습이나 최신 트렌드가 중요하기 때문에 미용실 원장들이 제안하는 머리 스타일이나 메이크업 스타일은 금세 전국적으로 퍼져 그해의 유행을 주도한다.

아모레퍼시픽 김희정 과장은 "청담동 원장들이 현장에서 쌓은 노하우를 제품 개발에 이용하는 건 물론이요, 스타 마케팅에서부터 홍보까지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다"며 "최근에는 제품 컨설턴트나 개발 고문 등으로 모셔 단기적인 제품 출시가 아닌 전반적인 제품 개발에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원장님 브랜드'로 나온 미용 제품이 적지 않다. 효시는 2006년 애경과 조성아 원장이 손잡고 홈쇼핑에서 첫선을 보인 '조성아 루나'. '크로키'(이경민 원장)·'이희 케어 포 스타일'(이희 원장)·'랩 페이스'(고원혜 원장) 등이 대기업과 청담동 원장이 손잡고 만든 미용제품 브랜드들이다. 2006년 53억원에서 시작한 이들 제품의 국내 시장 규모는 지난해 1000억원을 훌쩍 넘기며 5년 만에 무려 20배나 성장했다. 엔프라니는 글로벌 브랜드인 디올 인터내셔널 전문가로 일한 김승원씨와 손잡고 '셉'을 내놓았는데, 연 매출 800억원 중 200억원을 셉 브랜드가 올리고 있다.

홈쇼핑을 시작으로 대중성 확보, 글로벌 브랜드화 본격 시동

'원장님 브랜드'는 한국의 독특한 현상이 아니다. 미국·프랑스 등에선 이미 글로벌 브랜드로 성공한 예도 적지 않다. 전 세계 7000억원 매출을 올리는 미국의 메이크업 브랜드 바비 브라운을 비롯해 일본슈에무라, 프랑스나스(Nars) 등은 모두 메이크업 전문가로 시작했다.

국내 '원장님 브랜드'들도 최근 '한류 스타 파워'를 앞세워 글로벌 화에 시동을 걸고 있다. 정샘물 미용실은 '욘사마(배용준)가 다니는 미용실'이라며 매주 수십~수백명의 일본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이희 역시 중국과 동남아 관광객까지 찾아오고 있다. 한국의 '원장님 브랜드'가 한류 스타처럼 만들어 주는 브랜드로 소문나면서 해외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다.

조성아 원장과 '조성아 루나'를 만든 애경의 송영신 부장은 "2009년 대만의 홈쇼핑 채널을 통해 해외로 나가 현재는 베트남에서도 판매하고 있다"며 "앞으로 중국태국·인도 등 아시아지역으로도 수출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