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매출 올리는 30대 얼짱 미용사
2011. 9. 15. 07:44ㆍ분야별 성공 스토리
억대 매출 올리는 30대 얼짱 미용사 `차홍 아르더` 차홍 원장 인터뷰 | |
기사입력 2011.09.12 18:01:34 | 최종수정 2011.09.14 15:49:32 |
"저는 열등감 투성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뭐 하나 잘 하는 게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청담동에서 내로라하는 미용사가 됐습니다. 이젠 모두가 저를 부러워 합니다."
600여 명의 스타일을 관리, 혼자서만 연 9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차홍 아르더`의 차홍(30) 원장. 그는 미용, 글쓰기 등 어느 하나 뛰어나게 잘 하는 게 없었다. 하지만 작은 재능들이 모이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의 손 끝에서 배우 김선아, 고소영, 임수정 등의 스타일이 완성되고 직접 운영하는 블로그에는 총 130만 명이 관련 정보를 얻고 간다. 얼마 전에는 SBS 쇼 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해 유명세를 탔다.
2008년 차 씨는 수습생활을 끝낸 지 1년 만에 청담동에 전해 내려오는 기록을 깨고 월 매출 3000만원을 달성했다. 이후 꾸준히 늘어 현재는 월 매출 7500만원을 기록, 청담동에서 1인 미용사로는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11년 동안 미용 하나만 물고 늘어진 값진 결과다. 일하던 곳에서 나와 지난 8월 미용실도 차렸다. 개점한 지 한 달여 밖에 되지 않았지만 미용실 전체 매출이 월 1억5000만원에 육박한다. 일 년에만 18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추산된다.
미용에 관심 있어 시작한 건 아니었다. 2000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모네 미용실에서 일했지만 순전히 미술대학에 가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악바리 같은 성격과 고객에게 상냥한 모습을 보고 누군가 `큰 물에 가서 놀라`고 조언했다. 당시 청담동에서 가장 유명했던 `헤어뉴스`로 옮겨 수습생활을 시작했다.
수습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물건이 없어졌다며 그를 모함하는 동료도 있었고 `마네킹 같다`며 그의 멱살을 잡는 후배도 있었다. 청소하기 싫어 도망다니던 후배를 혼내다 멱살까지 잡힌 것. 3일 동안 앓아 눕고 깨달았다. `강하면 부러진다.` 후배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이젠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6년간의 수습생활을 마치고 2006년 `헤어 디자이너`가 됐지만 동료들의 시샘은 여전했다. "다른 미용사의 고객을 뺏어간다며 질투도 많이 받았다." 차 씨의 붙임성에 반해 그에게 머리를 하겠다는 고객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차 씨는 관상·손금책을 보며 늘 고객과 이야기할 만한 거리를 찾았다. 다양한 고객층에 맞춰 신문도 열심히 봤다. 크리스마스에도 나와 연습했다.
"제 손끝에서 누군가 아름다워지는 게 좋아요." 그림, 조각 등 미술은 외롭지만 미용은 살아있는 예술이라 매력적이라고 했다. 모든 사람이 청춘의 풋풋함 속에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에 `동안`(童顔)을 연구한다는 그는 머리에 바르는 화장품 `헤어 섀도`를 직접 개발할 정도로 열성이다. 늘 고객에게 어울릴 만한 헤어 스타일을 제안하고 맘에 들지 않으면 다시 상의해 바꿔 준다. 명절 때마다 문자로 안부를 묻고 블로그에 미용 관련 정보를 올리는 것은 특별한 일도 아니다.
"저에게 미용은 `아르더`(열정)입니다." 일본, 영국처럼 셀프 스타일링(self styling)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아카데미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는 차홍 원장. 해외 유명 컬렉션을 보며 트렌드를 읽는다는 그는 올 가을 스모키 화장에 자연스럽지만 도발적인 헤어 스타일이 유행할 것이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권한울 기자]
600여 명의 스타일을 관리, 혼자서만 연 9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차홍 아르더`의 차홍(30) 원장. 그는 미용, 글쓰기 등 어느 하나 뛰어나게 잘 하는 게 없었다. 하지만 작은 재능들이 모이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의 손 끝에서 배우 김선아, 고소영, 임수정 등의 스타일이 완성되고 직접 운영하는 블로그에는 총 130만 명이 관련 정보를 얻고 간다. 얼마 전에는 SBS 쇼 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해 유명세를 탔다.
2008년 차 씨는 수습생활을 끝낸 지 1년 만에 청담동에 전해 내려오는 기록을 깨고 월 매출 3000만원을 달성했다. 이후 꾸준히 늘어 현재는 월 매출 7500만원을 기록, 청담동에서 1인 미용사로는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11년 동안 미용 하나만 물고 늘어진 값진 결과다. 일하던 곳에서 나와 지난 8월 미용실도 차렸다. 개점한 지 한 달여 밖에 되지 않았지만 미용실 전체 매출이 월 1억5000만원에 육박한다. 일 년에만 18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추산된다.
미용에 관심 있어 시작한 건 아니었다. 2000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모네 미용실에서 일했지만 순전히 미술대학에 가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악바리 같은 성격과 고객에게 상냥한 모습을 보고 누군가 `큰 물에 가서 놀라`고 조언했다. 당시 청담동에서 가장 유명했던 `헤어뉴스`로 옮겨 수습생활을 시작했다.
수습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물건이 없어졌다며 그를 모함하는 동료도 있었고 `마네킹 같다`며 그의 멱살을 잡는 후배도 있었다. 청소하기 싫어 도망다니던 후배를 혼내다 멱살까지 잡힌 것. 3일 동안 앓아 눕고 깨달았다. `강하면 부러진다.` 후배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이젠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6년간의 수습생활을 마치고 2006년 `헤어 디자이너`가 됐지만 동료들의 시샘은 여전했다. "다른 미용사의 고객을 뺏어간다며 질투도 많이 받았다." 차 씨의 붙임성에 반해 그에게 머리를 하겠다는 고객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차 씨는 관상·손금책을 보며 늘 고객과 이야기할 만한 거리를 찾았다. 다양한 고객층에 맞춰 신문도 열심히 봤다. 크리스마스에도 나와 연습했다.
"제 손끝에서 누군가 아름다워지는 게 좋아요." 그림, 조각 등 미술은 외롭지만 미용은 살아있는 예술이라 매력적이라고 했다. 모든 사람이 청춘의 풋풋함 속에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에 `동안`(童顔)을 연구한다는 그는 머리에 바르는 화장품 `헤어 섀도`를 직접 개발할 정도로 열성이다. 늘 고객에게 어울릴 만한 헤어 스타일을 제안하고 맘에 들지 않으면 다시 상의해 바꿔 준다. 명절 때마다 문자로 안부를 묻고 블로그에 미용 관련 정보를 올리는 것은 특별한 일도 아니다.
"저에게 미용은 `아르더`(열정)입니다." 일본, 영국처럼 셀프 스타일링(self styling)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아카데미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는 차홍 원장. 해외 유명 컬렉션을 보며 트렌드를 읽는다는 그는 올 가을 스모키 화장에 자연스럽지만 도발적인 헤어 스타일이 유행할 것이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권한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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