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헌팅 전문가 페르난데즈-아라오즈
"면접은 두 거짓말쟁이의 대화… 반드시 평판 조회로 걸러내야"
- ▲ 클라우디오 페르난데즈 / 아라오즈 고문
전체 인력 중에 우수한 인재는 극소수다. 리더십·협상력처럼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능력들은 확인조차 어렵다.
가장 큰 걸림돌은 인간의 본성(本性)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엔지니어 10명 중 4명은 자신이 상위 5% 안에 드는 인재라고 생각한다. 이력서에 적힌 내용의 44%가 거짓말이라는 조사도 있다. 그런데도 기업의 채용 담당자는 지원자의 실력보다 학벌·경력과 같은 '간판'에 휘둘리는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쩌다가 우수한 인재가 나타나도 그 사람이 채용된다는 보장은 없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뽑히는 걸 본능적으로 꺼린다. 자기 자리를 빼앗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부러 무능한 사람을 후보로 추천하는 일도 있다.
사내(社內) 정치가 판을 치는 기업에선 파벌 간의 거래에 의해 채용이 좌우되는 일도 흔하다. 채용을 둘러싸고 돈을 주고받는 일도 생긴다. 이런 일이 소문나면 우수한 인재들은 지원조차 하지 않는다.
세계 5대 헤드헌팅 업체 '이곤젠더(Egon Zehnder) 인터내셔널'의 클라우디오 페르난데즈-아라오즈(Fernandez-Araoz·55) 수석고문은 "인간의 본성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인재채용 구조(structure)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재채용을 위해 3가지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첫째 인재채용 담당자를 교육하라.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람을 뽑도록 훈련할 필요가 있다. 직관만으로 우수한 인재를 가려낼 수는 없다. 임원 후보의 역량을 파악할 수 있는 질문부터 제공해 줘야 한다. 둘째 인재채용 담당자를 평가하라. 그가 뽑았던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에게 책임을 물어라. 그렇지 않으면 그는 '기관총을 든 원숭이'가 무차별 총질을 하듯이 사람을 대충 뽑을 것이다. 셋째 면접과 평판조회를 모두 실시하라. 면접에서 걸러지지 않은 문제는 평판조회에서 걸러질 수 있다. 2중의 안전장치는 필수다."
페르난데즈-아라오즈 고문은 1986년 이곤젠더에 입사한 뒤, C레벨 임원을 구하는 글로벌 기업들과 여기에 적합한 인재들을 서로 연결해 주는 일을 해왔다. 25년 동안 직접 인터뷰한 사람만 2만명이 넘는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헤드헌터 100명'에도 선정됐다(2008년 비즈니스위크). 기업들로부터 인재추천 요청을 가장 많이 받고, 실제 인재채용도 가장 많이 성사시킨 헤드헌터 중 한 명인 것이다.
한국을 방문한 페르난데즈-아라오즈 고문을 Weekly BIZ가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이곤젠더 사무소에서 만났다.
- ▲ 이곤젠더 인터내셔널의 클라우디오 페르난데즈-아라오즈 수석고문은“익숙함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인간 본성을 제어하기 위해 체계화된 인재 채용 구조를 마련하라”고 조언했다. /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하지만 페르난데즈-아라오즈 수석고문은 "가족 기업이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다"고 분석했다. "구체적인 미래 전략을 가지고 CEO 교체가 필요한 때인지, 신임 CEO에게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 등에 대해 분석적인 시각으로 접근하지 못하면 어떤 형태의 기업이든 CEO를 제대로 선임할 수 없다."
①언제 CEO 교체가 필요한가
"성공한 창업자는 교체하라"고 페르난데즈-아라오즈 고문은 말했다. 주로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 분야의 기업에 적합한 조언이다. 과학자 출신인 창업자는 경영자로 변신하는 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벤처캐피털 회사들은 자사가 투자한 벤처기업이 제품 출시를 완료하고 시장에서 인정받는 시점에 창업자를 대신할 신임 CEO를 선정한다. 새로운 단계에 적합한 역량을 갖춘 CEO로 교체하는 것이다."
페르난데즈-아라오즈 고문은 또 "새로운 미래 전략이 안 보이면 CEO를 바꿔야 한다. 도전적인 과제를 내놓고 회사를 이끌어 나갈 리더가 없으면 회사는 죽는다"고 말했다.
②내부 인재 vs. 외부 인재
페르난데즈-아라오즈 고문은 "헤드헌터가 구해오는 외부 인재가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미국 기업들이 채용하는 CEO의 40%가 외부 인재다. 이들을 채용하는 과정에 200만달러가 들어간다. 하지만 이들의 50%는 18개월 안에 해고당하거나 자진 사퇴한다.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이다.
"'외부인 같은 내부인' '내부인 같은 외부인'이 좋은 선택일 수 있다. 회사 내부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한 혁신을 해낼 수 있는 현직 임원, 오랫동안 거래 관계를 이어와 회사 사정을 잘 알면서 제3자 입장에서 개혁을 추진할 만한 거래처 임원을 CEO 후보로 우선 고려해 보라."
이들은 면접이나 평판 조회(reference check)를 거치지 않아도 역량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③평판 조회,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라
'거짓말쟁이 두 명 사이의 대화'. 페르난 데즈-아라오즈 고문은 기업 채용 담당자와 지원자의 면접을 이렇게 표현했다. 채용 담당자는 "당신은 최고 환경에서 최고 대우를 받으며 일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후보자는 "나는 정말 똑똑하고 훌륭하다. 당신 회사는 최고 인재를 잡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 능력을 과장하는 인간의 본성 탓이다.
지원자의 거짓말은 평판 조회를 통해 걸러내야 한다. 페르난데즈-아라오즈 고문은 "구체적인 상황을 제시하고 지원자가 과거에 어떤 역량을 발휘해 어떤 성과를 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질문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씨 어때요?' '장단점은 뭔가요?'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같은 질문으로는 지원자에 대한 유익한 정보를 얻기 힘들다. 먼저 지원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에게 채용 목적과 해당 직책이 요구하는 역량을 명확히 밝혀라. 그다음 '○○○씨는 우리가 하려는 일과 비슷한 경험이 있나요?' '어떤 환경이었고 무슨 역할을 맡았나요?' '그 일의 성과는 어땠나요?' 같은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④해고의 딜레마
새로운 인재를 뽑는 것만큼 기존 인력을 내보내는 것도 중요하다. 페르난데즈-아라오즈 고문은 "사람들 대부분이 해고를 잔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사 결정자에겐 채용보다 해고가 더 어려운 결정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위대한 기업은 무자비한 것이 아니라 엄격한 것이다. 무자비하다는 것은 상황이 어려울 때 마구잡이로 또는 부당하게 해고하는 것이다. 반면 엄격하다는 것은 예외를 두지 않고 정확한 기준을 적용해 일관된 인사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페르난데즈-아라오즈 고문은 "'해고의 딜레마'를 깨달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해고 결정이 나의 잔인함을 드러내 직원들이 나를 멀리하고 충성하지 않을 것 같은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일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을 그대로 놔둘 경우에 오히려 다른 부하들의 충성심을 잃을 수 있다. 문제는 해고 자체가 아니라 인사 결정의 일관성과 정직함이다."
⑤동기가 불순한 면접관을 솎아내라
면접관은 해당 직책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고위 간부가 대부분이다. 페르난데즈-아라오즈 고문은 "면접관의 '동기(motivation)'를 통제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조직 전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이익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뽑으려는 '불순한 동기'를 가진 면접관이 많기 때문이다.
"회사를 위한 건설적인 의문을 제기할 만한 사람보다는 자기 말을 잘 들을 것 같은 순종적인 지원자를 뽑는 면접관이 많다. 학연·지연·혈연으로 얽힌 사람을 뽑는 것도 비슷한 경우다."
'불량 면접관'을 판별하려면 인사 결정에 대한 피드백(feedback)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페르난데즈-아라오즈 고문은 조언했다. "조직 전체에 이익이 되는 지원자를 선발하는 면접관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면접관이 채용을 결정했던 사람들이 나중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지 확인하라. 문제 있는 사람이 나오면 그 면접관에게 반드시 경고를 보내라. 그러지 않으면 그 면접관은 회사를 위해 잘못된 선택을 되풀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