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40대, 나이차 좁혔다

2011. 10. 24. 17:27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진화’하는 40대, 나이차 좁혔다
[머니위크 커버]40대 경제학/2030세대vs40대 좌담회
머니위크|
문혜원 기자|
입력 2011.10.24 09:04

 

[[머니위크 커버]40대 경제학/2030세대vs40대 좌담회]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 시인의 시처럼 40대는 숨 가쁘게 달려온 인생의 오르막길을 넘어선 세대다. 주위를 돌아보며 꽃을 볼 여유도 생기는 나이다. 40대는 20, 30대가 보지 못하는 오류를 볼 수 있고 직장생활의 어려움쯤은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길 수 있다. 20, 30대같은 열정과 패기는 사그라졌지만 일의 경중을 파악하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

40대는 다양한 경험을 가진 유일한 세대다. 가난했던 대한민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40대는 이제 IT의 편리함을 누리며 중년을 보낸다. 직장생활 15~20년차인 이들은 어느덧 관리자나 임원의 자리에 올라 책임도 막중하다. 윗사람들의 코드를 맞추는 일도, 부하직원을 이끄는 일도 모두 40대의 몫이다.

40대 최문석 롯데카드 팀장(42)은 그런 40대를 대변했다. 어느덧 회사에서 허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최 팀장은 부하직원과 함께 차를 마시며 고민을 듣는 자상한 선배다. 부하 직원이자 함께 자전거 동아리에서 취미를 공유하고 있는 30대 김대식 과장(35), 20대 박근태 씨(29)가 대화에 참여했다.

당사자의 얘기를 앞에서 꺼내는 일이 조금은 어려울 수도 있는 일. 쭈뼛하던 20, 30대 김대식, 박근태 씨도 천천히 속내를 털어놓게 됐다. 단, 40대의 불만을 얘기할 때는 '다른 부서 40대는'으로 말을 돌려 웃음을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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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류승희 기자)

- 자전거 동호회인 '바이크 노마드'(Bike Nomad)에 대해서 소개해 달라.

김대식 과장(이하 김) : '바이크 노마드'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자유를 느끼자는 취지로 뭉친 친목 모임이다. 올해 5월 시작된 이 모임은 30명 정도가 모여서 함께 자전거를 타며 친목 활동을 한다. 정기적으로는 매월 셋째 주 토요일에 모이고 비정기적으로도 몇몇이 모여서 주말이나 평일 오후에 자전거를 타고 남산을 등반하기도 한다.

지난 7월에는 부산까지 2박3일간 자전거를 타고 가는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하루에 무려 150~160km를 달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전까지는 페달을 밟아야 갈 수 있었다. 혼자 갔다면 힘들었을 텐데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여서 그리 어렵지 않은 길이었던 것 같다.

박근태(이하 박): 입사한 지 2년이 채 안 되서 팀장급들과 쉽게 얘기 나눌 기회가 없었다. 이런 동호회 활동에서는 함께 취미를 공유해서인지 자연스럽게 말이 트이게 된다. 처음에는 자전거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의 삶을 얘기하게 된다.

최문석 팀장(이하 최) : 우리 동호회에도 40대가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많다. 사실 40대의 나이에 부산까지 라이딩 하는 게 쉽지는 않았겠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겠다는 내부의 욕망이 컸다. 15년 이상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삶이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복되고 무미건조한 삶이지만 장거리를 라이딩하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매너리즘에 빠져서 대충 결재 서류를 들여다보고 잘못된 것을 바꾸려는 의지도 무뎌질 무렵 자전거를 타며 작은 열정들이 다시 생겨났다. 정직하게 페달을 밟아야만 앞으로 나아가는 자전거처럼 삶도 그렇게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20,30대가 보는 40대는 직장에서 어떤 모습인가?

김 : 지금 40대는 내가 갓 입사했을 때 접했던 40대와는 조금은 다른 느낌이다. 옛날의 40대가 고지식하다고 답답했다면 지금의 40대는 나이 많은 형의 느낌이랄까? 어쩌면 내가 30대 중반으로 올라서면서 달라지는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오히려 40대를 이해하는 편이다.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위치이기 때문에 힘들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의 40대가 형같이 편하게 다가올 수 있던 건 예전의 40대처럼 고지식하면 도태되기 때문에 스스로 변화를 꾀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박 : 40대는 보통 팀장급 이상이기 때문에 나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분이다. 항상 긴장은 되지만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한다. 미디어가 발달하고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많아서 잘 따라올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숙련도에서는 차이가 나지만 비슷한 수준으로 커뮤니케이션한다. 요즘 40대는 유행에도 같이 민감하다.

김 : 내가 20대 때는 40대와 함께 회식을 가는 게 고역이었다. 함께 즐기는 게 아니라 40대 팀장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회식이었다. 노래방에 가도 따분한 옛날 노래를 부르고 트로트를 부르며 맞춰줬다. 요즘 40대는 다르다. 팀장이 랩도 하고 최신 발라드도 나보다 더 잘 안다. 요즘 40대 팀장들과는 회식이 즐겁다.

- 40대 초반이어서 비교적 분위기가 편한 것 아닌가?

김 : 물론 같은 40대여도 임원진은 어렵긴 하다. 40대 후반도 40대 초반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예전에 어떤 40대 팀장은 영 소통이 안 되서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지금 팀장은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 40대가 고리타분하다고 느껴지는 일은 없나?

박 : 우리 부서는 안 그러지만 다른 부서 얘기를 들어보면 퇴근시간이 지나도 일이 없는데 집에 못 가게 하는 경우가 있다. 팀장이 자리에 있는데 어떻게 가느냐는 것이다. 일도 없는데 왜 남아서 눈치 보면서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김 :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윗사람이 퇴근하고 가야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누가 묻지 않아도 당연한 것 같다. 아무것도 안 하고 인터넷 서핑만 하더라도 말이다. 개인적인 약속도 중요한 것이 아니면 약속을 만들지 않았다. 웬만한 것은 주말에 한다.

최 : 세대마다 다른 생각이 있는 것 같다. 팀장이 되기 전에 '저 위치가면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직원들이 일이 없으면 나보다 먼저 퇴근시키기도 한다. 옛날 분들의 구태의연한 생각들을 이제는 내가 바꿀 수 있는 위치여서 가능한 것 같다.

(사진=류승희 기자)- 40대가 생각하는 스스로의 모습은 어떤가?최 : 일희일비하지 않고 중용을 지키게 되는 나이인 것 같다. 16년 동안 직장 생활하다보니 모든 일이 내 뜻대로만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2,30대는 아직 그걸 몰라 의욕이 앞선다. 하지만 40대가 되고 보니 모든 일에 지나치게 실망하거나 괴로워하지 않게 된다. 과감하게 포기할 줄도 아는 나이가 되는 것 같다.

또 자연스럽게 연륜이 베었는지 경중을 따질 수 있다. 중요한 게 뭐고, 중요하지 않은 게 무엇인지 분별이 생겼다. 같은 시간에 일을 해도 생산적으로 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 팀장급이긴 하지만 최종 의사결정은 임원진이 한다. 중간에서 윗사람들의 생각과 마인드를 많이 알게 된다. 코드를 맞춘다고나 할까? 윗사람들의 생각이 읽히니 일을 할 때도 보다 수월하게 진행되겠구나 하는 감도 생긴다.

김 : 윗선에서 내려온 불합리한 지시에 팀장이 고민하는 게 많이 보인다. 직장에서 합리적인 지시가 있지만 불합리한 지시도 많다. 예전에는 윗분의 지시를 그대로 하달했다면 요즘 팀장은 윗선의 무리한 지시를 거르시는 것 같다. 밑에 직원들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할 텐데 어떻게 조율하나, 고민하는 모습이 보인다.

- 40대가 갖는 어려움도 있을 것 같다.

최 : 정상적으로 회사 출발했다면 40대는 차장 혹은 팀장급의 위치다. 가정에서 가장 역할 있듯이 팀장의 역할이 있다. 혼자일하는 게 아니라 함께 일하는 팀원들도 생각해야한다. 모두가 나처럼 생각하는 건 아니다. 세대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지만 팀장으로서 끌고 가야하는 부담감이 있는 것이다.

업무 면에서는 예전과 다르거나 생소한 업무가 많아진다. 새로 만들어나가야 하는 데 어떻게 잘해낼 수 있을까하는 고민도 많다. 승진에 대한 부담도 있다. 가능하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가서 내 역할 할 수 있는 기회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 가정에서 가장으로서 갖는 부담은 어떤가?

최 : 가정에서는 아무래도 아이들 교육을 가장 신경 쓰고 있다. 학교생활을 잘하게 하기 위해서 부모로서 어떤 역할을 해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결혼 생활을 10년 이상하니 아내를 대할 때도 처음 느꼈던 감정 없이 의무감으로 대할 때도 많다. 아내와 취미를 함께 하며 터놓고 공유할 필요가 있다. 40대가 되니 노후에 대한 걱정도 크다. 앞으로 10년 후면 직장을 떠나서 제2의역할 해야 한다. 어느 정도 노후 준비를 하고는 있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아이들 교육비, 생활비 등 우선순위에 밀리다보면 노후준비에 신경 많이 쓸 수 없다.

- 40대가 보는 20, 30대는 어떤가?

최 : 지금의 20, 30대는 자라온 환경이 많이 다르다. 디지털 세대로 문명의 이기는 접하며 살았지만 40대의 성장이 더 행복하지 않았나 싶다. 20대가 온라인에서의 소통을 좋아한다면 우리는 오프라인에 행복감을 느낀다. 친구들과 직접 만나고 부딪히는 그런 문화를 느끼면서 자랐다. 지금 20대는 경쟁 사회 속에서 취업의 문턱도 더욱 높아졌다. 우리 때는 그래도 취직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학력수준도 훨씬 높아졌지만 취업문은 좁다. 그런 압박감 스트레스가 클 것 같다.

그런 20대가 어렵게 자신의 꿈을 안고 회사에 들어 올 텐데 나 같은 사람들이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20, 30대를 생각할 수록 내 책임도 커진다.

< 맺음말 > 20, 30대인 부하직원이 40대 팀장의 얘기를 본인 앞에서 꺼내놓는 것이 어쩌면 일하는 것보다 더 고역일 수 있다. 그래서일까? 2시간여 진행된 좌담회가 끝나고 나니 이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20대 박근태 씨는 자리를 파하면서 "이런 자리로 40대 팀장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한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힘은 역시 소통에서 나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