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조직] 누가 썩은 사과인가

2011. 11. 27. 10:42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건강한 조직] 누가 썩은 사과인가
매일경제 기사입력 2011.11.25 15:05:40 | 최종수정 2011.11.25 16:51:51

 

썩은 사과 증후군

조직 내 한 사람으로 인해 전체의 임무수행 능력이 떨어지는 현상
우수인재 떠나고 조직에너지 고갈. 썩은 사과가 사라져도 쉽게 회복 못해

■ 파벌 세워 충성파만 고용하는 지사장 B씨

#1 국내 굴지의 제조업체 A사는 10여 년 전 미국에 지사를 설립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수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까지 마친 B씨가 지사장으로 선임됐다. 오너는 의욕적으로 투자를 했고 브랜드 파워가 있는 기업이어서 초기에는 성공적인 현지화가 이뤄지는 듯했다. 하지만 5~6년이 지나도 매출은 똑같았고 적자가 계속됐다. 지사장 B씨가 전형적인 `썩은 사과`였던 탓이다. B씨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들만 남기고 재무ㆍ회계 담당자도 자신의 측근으로 앉혔다. 분식회계까지 벌어졌다. 문제 파악을 위해 한국 본사에서 누군가 찾아오면 과한 접대를 한 뒤, 오너 겸 최고경영자(CEO)에게 이메일을 보내 "본사에서 온 감사책임자가 과도한 접대를 요구했다"고 모함했다. B지사장의 악행은 오직 CEO만 모르는 상태. 결국 용기 있는 한 사람이 나서 CEO에게 정확한 상황을 보고했다. CEO가 진실을 서서히 알게 됐고 결국 지사장을 3년의 시간을 들여 겨우 쫓아냈다.

■ 사소한 꼬투리로 비방 일삼는 본부장 D씨

#2 미국의 한 전문서비스 C사 한국 지사에는 `야망이 큰 썩은 사과`가 한 명 있었다. 지사 산하 한 본부의 본부장이었던 D씨는 본부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다른 이들을 깎아내리고 비방했다. 오전 11~12시에 느지막이 출근해 커피숍에 앉아서 하는 둥 마는 둥 업무를 하다가 미국 본사가 한참 근무할 시간에 이메일을 보내면서 밤새 업무를 보는 척했다. 특히 그는 남을 비방할 때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이를 모함하는 증거로 만들었다. `증거조작`을 통해 중상모략을 했고 거짓말을 했다. 미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오히려 D본부장을 의심하지 못했다. 본부는 완전히 두 파벌로 나뉘어 본부장에게 충성하는 편과 반대하는 편으로 나뉘었다. 업무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서비스를 받는 고객들까지 썩은 사과에 대해 알기 시작했고 한국지사 전체의 매출이 뒷걸음질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썩은 사과는 지역과 업종을 불문하고 어느 조직에나 존재할 수 있다. 이들은 단순히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조직 전체를 망가뜨린다. 하지만 썩은 사과들은 자신이 썩은 사과라는 것을 잘 인지하지도 못하고 자신이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따라서 썩은 사과는 조직적인 차원에서 골라내지 않으면 안 된다. 박광서 타워스왓슨 한국 대표는 "첫 번째 사례에서는 CEO가 미국 지사장이 썩은 사과라는 사실을 모른 채 본의 아니게 `썩은 사과의 보호자` 역할을 했고, 두 번째 사례에서는 썩은 사과가 형성한 파벌이 보호자가 되고 이를 미국 본사가 모르는 상황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썩은 사과가 조직에 최대의 해악을 끼치는 전형적인 과정을 밟았다"고 분석했다.

▶ 창피주기, 소극적 적대행위, 업무방해하기

미첼 쿠지와 엘리자베스 홀로웨이는 저서에서 썩은 사과의 특징적인 행동으로 창피주기, 소극적 적대행위, 업무방해를 꼽았다. 창피주기란 법에 저촉되지 않는 수준의 미묘한 학대와 적대적 언행으로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는 것이다. 앞선 두 사례를 보면, A사 B지사장은 전형적인 `창피주기` 행동으로 인재들이 미국 지사에서 나가도록 만들었고 자신에게 충성하는 인물로만 지사를 채워나갔다. C사 D본부장 역시 지속적인 창피주기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D본부장 충성파와 반대파로 본부가 양분되는 사태에 이른다. 여기에 소극적 적대 행위가 더해졌다. 우회적이라는 면에서 소극적이지만 반드시 누군가를 모함한다는 점에서 적대적인 행위를 일삼는 `썩은 사과의 소극적 적대행위`는 주로 상사에게 특정인을 험담하고 자신에게 부정적인 의견은 완강히 거부하면서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실제 B지사장은 이메일을 통해 CEO에게 미국 지사를 감사하러 온 사람들을 우회적으로 모함했고, 자신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제시할 경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D본부장은 아예 증거까지 조작해 자신에게 충성하지 않는 사람들을 모함하는 방식을 썼다. 마지막으로 업무방해란 조직구성원의 행동을 감시하듯 지켜보거나 협력작업에 쓸데없이 간섭하고 권력을 남용해 남에게 처벌을 내리는 행위다. D본부장이 반대파를 모함하기 위해 끝없이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타인을 감시하는 것이나, B지사장이 본사에서 문제 파악을 하려 할 때마다 "미국의 문화는 완전히 다르다"며 문을 닫아걸고 개혁이 불가능하게 만든 것 모두 전형적 업무방해에 해당한다.

▶ 썩은 사과 증후군과 조직 오염

`썩은 사과`의 저자들은 조직이 오염되는 것을 `썩은 사과 증후군(Bad apple syndrome)`이라고 표현한다. 조직 내에 정서가 불안정한 사람이 섞여 있을 때 전체의 임무수행 능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다. 실제 심리실험에서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2명과 안정적인 2명을 한 팀으로 묶고 관찰한 결과, 4명 모두가 불안 기질을 보이는 팀과 마찬가지로 임무수행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는 것이다. 정서불안을 겪는 구성원들이 다름 팀원들에게 부정적 에너지를 전파시키는 것이라고 `썩은 사과` 저자들은 설명한다. 우수 인력이 떠나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엄청난 손실이다.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썩은 사과는 일종의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로 볼 수 있다"며 "스트레스 상황에서 주변 사람을 괴롭히고 심리적 에너지를 탈진시켜 버리는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고 교수는 이어 "주변 사람들의 에너지 고갈은 곧 조직 전체의 에너지 고갈과 연결돼 조직이 썩은 사과가 떠나도 쉽게 회복될 수 없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박광서 대표는 "썩은 사과가 조직에 큰 해악을 끼친 경우 사람들이 심리적인 타격을 입고 트라우마에 빠질 뿐만 아니라 방어기제 작동으로 피해자들의 성격과 행동패턴도 변한다"며 "결국 조직이 완전히 복구되는 가장 쉬운 길은 썩은 사과도 피해자도 모두 해당 조직을 떠나는 것인데, 그렇게 될 때 회사의 손실은 계산조차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앞선 사례에서도 A사는 미국 지사를 정상화시키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렸고, CEO도 판단력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의심을 사는 등 큰 타격을 입었다. 많은 인재들이 모함 때문에, 현지 우수 인력들이 B지사장의 악행으로 회사를 떠난 것도 큰 손실이었다. C사의 한국 본부 역시 썩은 사과를 골라낸 뒤에도 한국 지사 자체가 오염돼 쉽게 회복되지 못했다. 파벌의 후유증까지 남아 있는 상태다.

[고승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