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만원 들여 떡볶이집 낸 53세 男 '울컥'

2011. 12. 29. 09:30이슈 뉴스스크랩

1400만원 들여 떡볶이집 낸 53세 男 '울컥'
"대기업·프랜차이즈 어떻게 당해" 창업점포 절반 이상 3년 못버텨
기사입력 2011.12.27 18:07:39 | 최종수정 2011.12.27 18:08:38

◆ 위기의 자영업 (中) ◆

8년 전 1400만원을 들여 서울 상수동의 한 초등학교 맞은편에 떡볶이집을 창업한 전 모씨(53). 그는 최근 2년간 가게 주변에 우후죽순 생겨난 기업형 프랜차이즈 분식집 때문에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전씨는 "대기업 자본을 바탕으로 밀려 들어오는 경쟁점포들을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전씨의 점포 주변 상가 1층에 위치한 분식집도 치열한 경쟁 끝에 최근 1년 새 벌써 3번째 주인이 바뀌었다.

전씨의 점포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또 다른 자영업자 이 모씨도 "프랜차이즈 분식집들이 생긴 이후 동네 분식점들을 대상으로 납품하던 식재료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대기업까지 분식점, 빵집, SSM(기업형 슈퍼마켓) 등 동네상권을 침식해 나가는 등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영세 자영업자들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 국회예산처의 `자영업자 현황 및 정책방향`에 따르면 1~4명 규모인 국내 영세사업체는 272만개. 그중 절반 수준인 133만개가 도소매업과 숙박ㆍ음식업에 집중돼 있다.

그러지 않아도 좁고 과당경쟁 상태에 놓여 있는 시장에 대기업과 재벌들이 분식점부터 빵가게까지 확장에 나서면서 문을 닫는 자영업자가 늘어나고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5명 중 1명꼴인 21%가 사업체를 접은 이유에 대해 `과당 경쟁`을 꼽았다.

통계청이 2009년 발표한 `사업별 생명 분석`에 따르면 자영업자가 창업한 점포의 절반 이상이 3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영업자 창업 점포의 1년간 생존율은 70% 수준. 그러나 2년차, 3년차에 들어서면 생존율이 55%, 45%로 급격히 떨어진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구멍가게는 폐업하거나 매출 일부분을 가맹본부와 나누는 프랜차이즈 점포로 전환하는 등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막다른 길에 몰리기 일쑤다. 그러나 기업형 프랜차이즈 점포로 전환하더라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서울 잠원동에 프랜차이즈 점포를 오픈한 최미경 씨(가명ㆍ48). 그는 최근 가맹본부의 인테리어 교체 요구에 고심하고 있다. 최씨는 "가맹본부가 2년마다 멀쩡한 인테리어를 바꾸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3.3㎡(1평)당 200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충당해야 한다"며 "한 달 순수익은 200만원으로 옛날보다 절반 수준으로 줄었는데 어떻게 돈을 마련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생계를 위해 또는 퇴직금 전부를 털어서 점포를 연 자영업자들은 `품질 유지`를 명목으로 5배나 비싼 식자재를 사용하라고 강요하기도 한다.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점주는 "본부에서 사용하라고 정해준 식용유를 ℓ당 2300원에 매입하고 있다"며 "그러나 품질 차이가 거의 없는 다른 상표 식용유는 ℓ당 350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강선구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자영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라며 "임금피크제 등 고용계약 기간을 연장하는 방법으로 자영업으로 내몰리는 베이비부머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이호승 팀장 / 최승진 기자 / 차윤탁 기자]



◆밀가루·설탕·우유10% 가까이 올라 자영업자 `한숨`

원자재값 인상도 자영업자들을 힘들게 하는 원인 중 하나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8%가 "원재료 가격 인상으로 사업체를 접었다"고 대답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커피 프랜차이즈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최 모씨(47)는 최근 다른 점주들과 가맹본부를 상대로 단체행동에 나섰다. 최씨는 "우유, 커피 원두 등 터무니없는 원자재 납품가격을 견딜 수가 없어 다른 점주들과 함께 항의를 했다"며 "가맹본부가 원자재 가격을 낮췄지만 수익성은 여전히 나쁜 상태"라고 답했다.

식품업체들은 올해 밀가루 우유 설탕 가격을 약 10% 가까이 인상했다. 동아원은 지난 4월 밀가루 출고가를 8.6%, 삼양사대한제당은 설탕 출고가를 9.9%, 매일유업은 지난 10월 우유 값을 9.5% 올렸다.

서울 마포구에서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한 업주는 "어묵(25개들이)은 지난해 2500원에서 올해 4000원으로, 단무지도 2500원에서 4000원으로 뛰었다"며 "한 달 순수익이 지난해보다 20%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은 식품업체들이 일반 소비자용 원자재값 중 인상하지 못한 부분을 업소에 떠넘기려 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울우유는 지난 2월 커피전문점에서 주로 사용하는 1ℓ 팩 우유, 저지방 우유 가격을 각각 23.3%, 29.6% 올리는 인상안을 발표했다가 반발을 염려해 4시간 만에 철회하기도 했다. 당시 서울우유는 빵집 등 업소에서 주로 사용하는 18ℓ 관우유(시유대관) 값을 65.9% 인상하려고 했다.

[기획취재팀=이호승 팀장 / 최승진 기자 / 차윤탁 기자]



장사 좀 된다싶으면 임차료 올리지…별로 남지도 않는데 수수료 떼가지

#1. 한 모씨(53)는 프랜차이즈 편의점 두 곳을 운영하다 최근 개인 슈퍼마켓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한씨가 가맹한 편의점 업체 본사가 가져가는 돈은 총 이익의 35%. 매출 비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점주가 돈을 모으긴 힘든 구조였다. 한씨는 "슈퍼마켓도 성공할지 불투명하지만 뼈 빠지게 일하는데 브랜드 인지도를 포기하더라도 이익을 내가 모두 가져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 서울 신촌에서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는 조 모씨(30). 조씨의 커피숍 매출 중 카드결제 비중은 70%에 달한다. 전체 매출에서 임대료를 빼면 별로 남는 것도 없는데 카드수수료로 나가는 돈이 아깝기만 하다. 조씨는 "아메리카노 한잔이 3500원인데 여기에 신용카드를 긁는 손님이 많아 남는 게 거의 없다"며 "카드수수료가 좀 더 합리적으로 정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금난, 높은 임차료와 권리금, 세금과 카드수수료, 좁은 시장에서 과당경쟁, 물가 상승으로 인한 원자재가 인상…. 자영업자들은 이들 `5중고(重苦)`의 압박 속에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매일경제가 리서치전문업체 엠브레인(www.embrain.com)에 의뢰해 자영업자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자영업자들은 `자영업자들이 다시 활력을 찾기 위한 대안`으로 `대기업과 자영업자 영역의 확실한 구분`을 꼽았다. 전체 응답자의 29%가 선택한 이 항목에 이어 2위는 내수 소비 활성화(25.6%), 3위는 물가안정(14.7%)이 꼽혔다.

이어 임차료 안정ㆍ권리금 제도의 개선(7.2%), 세제개편(6.8%), 카드수수료 등 불합리한 제도 개선(5.1%), 부채탕감(5.1%), 자영업자 구조조정(4.1%) 등 순으로 조사됐다.

◆ 소득은 찔끔 늘고 부채는 왕창 늘고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자영업자들의 가처분소득은 4069만원으로 1년 전에 비해 430만원이 늘었지만 부채는 가구당 8455만원으로 전년보다 1323만원이나 증가했다. 늘어난 소득보다 늘어난 부채가 더 많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대출이 쉬운 것도 아니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금융조사에 따르면 자영업자 부채의 61.9%가 담보대출이었다.

전체 부채의 23.4%가 임대보증금에 해당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담보 없이는 대출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금융권이 사업성과 리스크 등을 면밀히 따져보고 자영업자들을 돕기 위한 대출을 해주기보다는 손쉬운 담보대출로 이자 장사를 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그나마 일부인 자영업자 신용대출의 58.8%가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9.8%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았다. 자영업자들의 생계가 위험 수준에 다다른 것이다.

경기도 광주에서 화장품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박 모씨(49)는 "돈 들어갈 데는 많은데 돈을 구할 곳은 마땅치 않다"며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잡아 대출을 받아왔는데 앞으로는 더 이상 돈을 구할 곳이 없다. 신용대출은 금리가 너무 비싸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 허리 휘는 임차료ㆍ권리금

해마다 오르기만 하는 임차료나 부동산비도 문제다. 서울 성북동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이 모씨는 "장사가 조금만 잘된다 싶으면 어김없이 건물주가 임차료를 올려달라고 한다"며 "건물주들이 2년 단위로 계약하는 것을 꺼려 하는 것 역시 이 같은 맥락"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권리금을 둘러싼 분쟁 역시 흔한 일이다. 권리금을 내고 매장을 내더라도 다시 가게를 되팔 때 권리금 전액을 다시 받을 수 있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매장을 임차한 자영업자가 건물주 횡포로 권리금을 한 푼도 못챙기고 쫓겨나는 일도 적지 않다.

설문조사에서도 자영업자들은 권리금에 의해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음이 드러났다. 전체 응답자의 43.8%가 권리금을 잃어본 경험이 있었다.

또 4명 중 1명꼴인 26.6%는 자신이 내고 들어간 권리금 수준을 지키기 위해 빚을 낸 적이 있었다고 답했다.

◆ 10년 된 `구닥다리` 간이과세 대상

간이과세 대상이 되는 매출 기준도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소규모 영세사업자 부담을 줄이고자 마련한 이 제도는 연간 매출액 4800만원 이하를 대상으로 한다. 이들 자영업자에게는 세금계산서 발행 의무 등이 면제된다. 그중에서도 연간 매출액 2400만원 이하인 자영업자는 부가가치세 납부가 아예 면제된다.

하지만 이 같은 기준은 2000년 만들어진 뒤 바뀐 적이 없다.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자연스럽게 매출액은 상승했지만 이익은 점점 박해졌다. 남는 것도 없는데 내야 할 세금은 더 늘어나게 된 셈이다.

경기도 분당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이 모씨(53)는 "지난 10년간 물건값이 오르다 보니 매출도 자연스레 상승해 간이과세 대상에서 제외가 됐는데 세금에 치여 힘겨운 처지"라며 "기준 금액을 상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카드 매출이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 증가하는 카드수수료도 자영업자들의 목을 조이고 있다. 최근 자영업자들이 카드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며 집단행동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경기 광주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는 고 모씨는 "하루에 카드 매출이 55%, 현금 매출이 45% 정도 되는데 그중 카드수수료는 3.3%"라며 "가게에서 케이크가 가장 잘나가는데 원가와 임차료를 빼고 또 카드수수료를 3.3%나 가져가니 돈 모으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창양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경제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협상력인데 자영업자들이 비즈니스 파트너를 만드는 데 취약한 것"이라며 "카드수수료 문제 역시 협상력이 약해서 발생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강종구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경제사회연구실장은 "자영업자 대출이 문제인데 금리가 갑자기 오르거나 자영업자 간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자영업자들의 재정난이 심화되면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획취재팀=이호승 팀장 / 최승진 기자 / 차윤탁 기자]